[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항일영화, 흥행실패의 이유

데스크 2023. 1. 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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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령’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활동을 그린 항일영화는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 이해영 감독은 영화 ‘유령’에서 알려지지 않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재현해냈다. 항일투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도 있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진 투사들도 많다. 작전을 수행하려면 자신을 감춘 채 유령처럼 비밀리에 행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 항일 조직 흑색단의 스파이인 유령은 비밀리에 활약하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 분)는 흑색단의 총독 암살 시도를 막기 위해 조선총독부 내에 덫을 친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쥰지(설경구 분), 암호문 기록 담당 차경(이하늬 분), 정무총감 비서 유리코(박소담 분),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서현우 분), 통신과 진원 백호(김동희 분)는 유령으로 의심받고 벼랑 끝 외딴 호텔에 갇히게 된다. 총독 암살 작전을 성공시켜야 하는 유령과 무사히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들 사이의 의심과 경계는 점점 짙어진다.


이야기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영화에서는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눈길을 끈다. 호텔, 다방, 극장 등 주요 공간 구현에 상당한 공이 들어갔다. 벽지 무늬부터 영화 티켓, 포스터까지 소품 하나하나에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의상도 스타일과 컬러를 통해 인물의 캐릭터를 표현한다. 조명 또한 한 몫을 한다. 강렬하고 뜨거운 주황에서 차가운 청록빛까지 암울한 현실에서도 꺼지지 않던 조선 독립의 열망과 일제의 만행이 색감을 통해 말해준다. 그러나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스타일이 지나치게 과잉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허점을 스타일과 미장센으로 메우려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중요한 데 아쉬움이 남는다.


여성 독립투사들의 항일 운동을 보여준다. 영화 ‘유령’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던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나라를 구하려고 애쓰는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이 주된 이야기다. 특히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여성의 모습, 연대하는 모습을 통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영화는 이를 워맨스로 표현해냈고 여성들이 보여주는 총격신과 맨몸 격투는 남성 못지않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두 여성이 마주한 공간, 호텔을 탈출하는 과정에서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개연성이 부족해 액션이 주는 통쾌함이 반감된다.


영화 ‘유령’은 중국영화 ‘바람의 소리’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바람의 소리’는 원작소설 ‘풍성’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작은 중국의 반일을 다루며 5명을 별장에 가둬 유령을 색출하는 내용으로 재미와 메시지를 담았다. 중국의 항일을 한국의 항일로 각색한 ‘유령’은 항일 조직이 왜 중요한지, 무엇을 했는지 5명을 왜 의심하는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일제 강점기가 단지 소모적으로 사용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각색 과정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유튜브와 SNS 이용이 늘어나면서 영화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새로운 소재, 재미있는 이야기와 볼거리가 아니면 관객은 쉽게 극장을 찾지 않는다. 극장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 공개되는 작품들의 타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일제 강점기 안중근 의사의 활약을 그린 윤제균 감독의 영화 “영웅”은 350만 관객이 손익분기점이지만 300만 관객을 넘지 못했으며, ‘유령’ 역시 설날 특수에도 불구하고 50만 관객을 채우지 못했다. 영화 ‘유령’은 비록 대중이 좋아하는 소재인 항일운동이라도 개연성 있는 전개, 흥미로운 이야기,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관객이 외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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