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만에 끊겨" KT의 통일TV 송출 중단은 시대착오적

박도 2023. 1. 26. 11:2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1월 20일은 음력으론 12월 29일, 한 해의 거의 끝날이었다.

이날, 지난 1971년 서울 용산구 보광동 오산중학교 1학년 12반에서 만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사제의 돈독한 정을 이어 온 통일 TV 진천규 대표로부터 문자가 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KT 측은 해지 이유로 통일TV가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1990년대 어느 하루 한 신문을 보는데 '사진 촬영 진천규 기자'라는 걸 보고, 해당 신문사로 전화해 그를 만났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96화_통일 바라는 동포들 가슴에 찬 물을 끼얹어선 안 된다

[박도 기자]

 통일TV 홈페이지 첫화면 갈무리. 오른쪽 진천규 대표
ⓒ 통일TV
  
지난 1월 20일은 음력으론 12월 29일, 한 해의 거의 끝날이었다. 이날, 지난 1971년 서울 용산구 보광동 오산중학교 1학년 12반에서 만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사제의 돈독한 정을 이어 온 통일 TV 진천규 대표로부터 문자가 왔다.
 
"제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를 보내고 들어왔습니다. 지난 5년 남짓 시간과 적지 않은 자금을 들여서 합법적으로 5개월째 하고 있는 방송을, 엊그제 1월 18일 오후 5시 서면 통지 뒤 단 2시간만인 7시에 송출이 끊겼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체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단 2시간만에, 복잡하지 않게 손 쓸 틈 없이 송출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30년 케이블방송 역사상 초유의 경우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지루한 법정다툼으로 들어갑니다."
 
<통일 TV> 진천규 올림

그의 문자를 받고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KT가 지난 18일 통일TV의 채널 송출을 중단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KT 측은 해지 이유로 통일TV가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남북문제를 다루는 통일TV는 2021년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방송채널 사용 사업자 인가를 받은 뒤, 지난해 7월 KT의 IPTV 서비스인 지니TV와 계약을 맺었고 8월부터 방송을 내보내왔다. 

역사란 앞으로 발전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뒷걸음질로 퇴보할 때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강대국의 땅 따먹기로 생긴 이 분단 치욕의 역사는 언젠가는 '민족'이라는 용광로에 흔적도 없이 용해될 것이라 믿는다.

이즈음 산골 서생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늙다리 훈장인 내가 그에게 문자로 답장한 말이다.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네. 위기를 슬기롭게 잘 넘기시기를…."

통일 TV 진천규 대표와의 인연 

1971년 나는 군에서 제대한 다음 해 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오산중학교에 신임교사로 부임했다. 그 첫해에 중1 신입생을 담임으로 맡았다. 내가 가장 신참 교사라 끝 반인 12반이었다. 입학식 날, 직원회를 마치고 운동장에 나가자 많은 신입생들이 반 표지 팻말 앞에 두 줄로 정렬하고 있었다.

1학년 12반 팻말 앞에 다가서자 신입생 녀석들이 고개를 뽑아 새 담임인 나를 호기심 어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녀석들이 어린 토끼같이 귀여워 앞줄부터 그들의 복장을 매만져 주고 볼을 쓰다듬으면서 맨 뒤 줄의 학생까지 훑어갔다. 그해 나는 좀 극성스럽게 담임을 했다. 학급신문도 만들고, 신입생 축하 축구대회 때는 감독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의 학생들은 1번부터 끝번까지 이름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뚜렷하다.
 
 미국 LA 공항에서 오른쪽부터 권중희, 진천규 박도
ⓒ 박도
 
KT의 송출 결정은 반역사적인 작태 

1990년대 어느 하루 한 신문을 보는데 '사진 촬영 진천규 기자'라는 걸 보고, 해당 신문사로 전화해 그를 만났다.

"나는 자네가 공과대학으로 진학한 걸로 아는데 왜 사진기자인가?"
"선생님 때문입니다. 저희 담임 때 소풍이나 운동회 때 사진 찍어주시는 모습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부모님에게 졸라 카메라를 구입하여 취미 생활을 한 게 평생 직업이 됐습니다."

그는 2000년 6.15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김정일 양 정상이 손을 치켜든 사진은 자기가 연출한 바라고 자랑했다. 그 이후 LA 한국일보 기자 때는, 나와 권중희 선생 미국 방문시 길 안내 역도 맡아주었다.

그는 미국 영주권을 소유한 재외국민의 신분으로 지난 2017년부터 북한을 오가면서 찍은 장면들을 SBS '뉴스스토리'와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여과 없이 보여줘 남쪽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긴장 속에서도 평온한 북녘 동포들의 일상을 전하며, 남녘 사람들의 전쟁 공포와 불안감을 씻어주기도 했다.

앞선 독일 통일, 당시 나뉘어 있던 동독과 서독의 통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중 하나는 텔레비전 방송 교류였다고 한다. KT가 모처럼 이어진 방송 채널을 끊어버리는, 통일 염원을 바라는 동포들의 가슴에 찬 물을 끼얹는 반민족적이며, 반역사적인 작태를 중단하기를 한 동포로서 호소하는 바다.

다음은 통일 TV 임직원 측이 방송 송출 폐쇄조치에 대해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김대중과 김정일, 2000년 6.15 공동선언문 뒤 양 정상이 잡은 손을 치켜드는 모습
ⓒ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2022년 7월 22일 우리 정부는 '로동신문' 및 '조선중앙텔레비죤' 등 북 언론에 대한 국내 공개 허용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지구촌의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있는 국민들에게 북 관련 정보만 통제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비정상적 상황이 분명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일반 국민의 북 사이트 및 방송 접속을 허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분명합니다. 

사실 인터넷 시대 정보통제는 불가능한 법입니다.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하고 가공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입니다. 

이런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감안할 때 KT의 결정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태도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방송국에 대한 제재를 할 때는 그 절차가 투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출석요구, 소명의 기회조차 단 한 번 없이 송출부터 중단한 것은 그 어떤 외부적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합니다. 

방송을 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각종 기자재 설비를 갖추는데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고 기획, 촬영, 편집 등 다수의 제작종사자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 <통일TV>임직원 일동은 KT의 일방적 방송 송출 중단조치는 <통일TV>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결정으로 규탄하며 하루빨리 다시 송출 정상화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