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집 정규 앨범 [꿈의 거처]로 돌아온 이승윤. 그의 노래가 울려퍼질 때.

2023. 1.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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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열고 나온 그의 노래가 수많은 ‘꿈의 거처’에 내려앉을 때. 더 크게 울려 퍼질 이승윤이라는 이름의 세계.

Q : 곧 발매되는 정규 앨범 작업에 영혼을 쏟아부었다고요. 모든 걸 쏟아내 결과물을 완성한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A : 경기를 120%로 뛴 운동선수들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심정? 저 역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덤덤하고 담백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Q : 주로 혼자 음악을 만들어왔지만, 이번 앨범은 조희원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어요.

A : 작년 4월쯤 혼자 데모를 만들다 누군가의 시각이 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려놓은 방향성을 극대화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고, 제 음악의 결을 잘 이해해주는 조희원이라는 친구가 좋겠다고 생각했죠. 보통 95%를 만들고 나머지를 연주자분들께 맡기지만, 이번엔 70% 정도만 만들고 나머지를 희원이에게 부탁했어요. 덕분에 저도 몰랐던 노래의 다른 단면을 볼 수 있게 돼 재밌었고 고마웠던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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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다른 단면이라, 이를테면요?

A : ‘한 모금의 노래’를 만드는데, 혼자 오랫동안 고민하다 보니 곡에 대한 제 시야가 희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기타랑 드럼 리듬만 찍어 희원이에게 보냈어요. 이 노래를 바라보는 시선을 구간별로 담아줬는데, 그걸 듣고 ‘이 노래가 이렇게 된다고?’ 하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만든 게 그냥 가죽 재킷이라면, 희원이는 재킷의 디테일을 살려주는 친구예요.

Q : 2년 만에 발표하는 이번 정규 앨범의 시작점은 어디였나요?

A : 타이틀곡인 ‘꿈의 거처’였어요. 이 곡 덕분에 다른 곡들이 앨범에 실리게 됐고요. 앨범에 특별한 서사를 부여하는 건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캐릭터가 강한 친구들을 한 묶음으로 만든 앨범입니다.

Q : ‘꿈의 거처’를 먼저 들어봤어요. “어디쯤인지 대체 알 수가 없어 희한한 것은 걱정이 없어”라는 구절에서 문득 ‘무얼 훔치지’라는 곡이 생각났어요. 그때의 자조적인 화자에서 단단하게 변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달까요.

A : 인간의 발달 과업이나 단계 때문이라기보단 어떤 순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엄습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난 이 길을 갔을 거야, 불안감이 없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불안의 의미도 없다는 마음. 지금의 제 상태인 것 같아요.

Q : 불안이라는 감정에 초연해진 상태군요. 그러곤 이렇게 노래해요. “울음 끝엔 항상 네가 있다”고.

A : 세상엔 무언가를 할 때 얻어지는 보상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마지막 지점에 도달한 순간 남아 있는 본질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전 별거 아닌 단어라고 봐요. 들으시는 분들에게도 있을 거예요. 자신이 열심히 살아가는 방향성, 그리고 끝에 남을 단 하나의 원동력. 가령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이 우승하진 못해도 계속 축구를 하잖아요. 모두에게 그런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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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전 그게 또 다른 ‘이승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노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나’가 서 있는 장면이 떠올랐죠.

A : 맞아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 인간의 행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Q : 이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이 ‘영웅 수집가’인 것도 흥미로워요. 이승윤이라는 아티스트를 대표하는 곡을 상징적으로 1번 트랙에 두고자 한 의도였나요?

A : ‘영웅 수집가’는 아끼는 노래예요. 앨범을 기획할 때부터 무조건 1번 트랙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서두에 딱 박아두고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Q : 그래선지 ‘말로장생’, ‘누구누구누구’로 이어지는 곡은 하나의 결을 지니고 있어요. 제멋대로 영웅을 삼았다가 버리는 모습, 식어버린 말을 잃은 어른이 되겠다는 것 모두 말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죠.

A : 열심히 들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웃음) 맞아요. 전 캐치프레이즈가 주는 폭력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타입이에요. 물론 삶의 순간순간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그게 세상 전체를 지배하려고 할 때 한 번씩 저항하고 싶거든요. 그런 말들을 향한 저항과 반성의 의미를 담았어요.

Q : 경각심 없이 사용하는 건 경계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승윤 씨는 노래라는 매개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말이 가진 메시지라는 게 새삼 어렵다 싶어요.

A : 그래서 곡에 대한 정밀한 해석을 원할 때도 최대한 말을 아끼고 싶어요. 의미를 낱낱이 밝히는 순간 그게 누군가에게 지침이 될까 봐 무섭습니다.

Q : 어쩌죠. 승윤 씨가 청춘 페스티벌에서 했던 말은 제게 각인처럼 남아 있거든요.(웃음) ‘오히려 좋아’라는 유행어처럼 타기팅된 언어들을 잘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는데, 유행어와 밈이 남발하는 시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을 정확히 짚어주는 것 같았죠.

A : 아유, 그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진 않고요. 사이다 발언으로 뜬 사람은 사이다 발언으로 갑니다.(웃음) 전 약간 김빠진 사이다이고 싶어요. 사실 ‘오히려 좋아’라는 말도 즐기는 것 자체가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미디어들이 강요하는 방향성이 보일 때는 한 번쯤 벗어나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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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수많은 말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승윤은 어떤 태도를 지니나요?

A : 나도, 당신도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특별함을 꿈꾸면서 산다. 그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그 과정에서 어떤 문장들에 영양분을 받고 비축하면서 내 고유한 캐릭터를 가지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결국 ‘나’를 잃지 않은 카멜레온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Q : ‘말로장생’에서 식어버린 말을 잃겠다고 노래하는 것처럼요. 반대로 잃고 싶지 않은 말도 있나요?

A : “팬케이크는 맛있다”라는 명제.(웃음) 단것을 나이 들어서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뚫린 귀. 뚫린 입보다는 뚫린 귀를 잃지 않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모습이에요. 누군가가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듣는 것. 반절만 듣고 반박하기보다는요.

Q : 이번 앨범에서 이승윤표 말맛의 정점을 찍는 곡이 ‘누구누구누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세한 스포를 할 순 없지만, 구절구절 감탄하며 들었어요.

A : “척도가 이렇게나 다른데, 이해하는 척도 너무나도 다르지.” 이 구절에서 시작된 노래였고요. 단어들을 거꾸로 해서 가사를 썼어요. 혹은 같은 발음이더라도 다른 뜻을 가진 단어들을 사용해 타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삶은 이런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래야만 해”라고 말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Q : 이승윤의 재치 가득한 말맛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A : 이것은 바야흐로 2003년부터 시작된 제 언어유희에서….(웃음) 요즘 말론 ‘아재 개그’로 통칭되는데, 아재 개그라는 단어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에 요즘은 어휘력이 많이 떨어졌다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집에서 혼자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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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혼자만 하기엔 아까워요. 분노로 노래를 만든다는 사람치고 이렇게 위트가 넘치는데 말이죠.

A : 맞아요. 24시간 내내 분노하면 살아갈 수가 없고요.(웃음) 고요가 3할, 5할이 헛소리와 농담 따먹기, 나머지 2할이 분노? 보통의 순간에는 즐거움이 더 많죠.

Q : 나머지 2할로 노래를 더 많이 만들고 있는 셈이네요?

A : 영감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저는 영감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정확히 설명해드릴 수 있는 게 분노의 영역인 것 같아 그렇게 말해왔는데, 그게 고착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행복해서 만든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웃음) ‘꿈의 거처’라는 곡도 분노로 만든 노래는 아닙니다. ‘웃어주었어’, ‘한 모금의 노래’도 5할에서 비롯된 곡이고요.

Q : 그런 점에서 마지막 트랙 ‘애칭’의 가사가 좋았어요. 관계를 애칭에 빗대 표현한 노랫말에서 여러 빛깔의 감정이 느껴졌거든요.

A : 그런 가사를 처음 써봤는데, 재미있었어요. 고등학교 동창이자 작가인 양주안이라는 친구는 저를 지금도 ‘습선생’이라고 불러요. 그날 수업에 온난 다습에 대한 내용이 나왔는데, 그게 이유입니다. 만약 그 친구와 만나지 않는다면 누구도 저를 ‘습선생’이라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전 30호로 불리기도 했고요. 이 노래를 만들 때 그런 수식어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 한편 ‘비싼 숙취’는 음악인으로서 그간의 소회가 느껴지는 곡이었어요.

A : 제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만든 곡입니다. 기쁜 만큼 기쁘고, 실망한 만큼 실망하고, 욕망하는 만큼 욕망하고 싶은데, 폭발적인 미디어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더더더’ 세계관에 진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더 기뻐해야 하고, 더 욕망해야 하고, 더 바라야 해” 하고 강요받는 것 같죠.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며 천천히 해나가고 싶은데 참 어렵죠. 오늘처럼 저에게 쏟아지는 조명이 꺼지는 순간, 가장 아쉬워하고 그리워할 사람이 저라는 것도 잘 알아요. 그걸 알고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포지션을 찾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Q : 영원을 약속하기보다 순간을 드리는 존재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도 그것을 체득한 덕분일까요?

A : 그렇죠. 팬분들께 영원을 약속하는 순간 그분들의 시간을 인질 삼는 느낌이 들어요. 그저 최선을 다해 팬분들께 최대한 즐거운 순간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 순간을 그리워할 최후의 사람인 제게도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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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2월에 열리는 두 번째 단독 공연도 팬분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 되겠네요.

A : 연장에 가면 느껴지는 팬들과의 시너지가 있는데, 그게 참 감사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지난해 첫 단독 콘서트와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면서 저 역시 오롯이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만끽해보겠습니다.

Q : 객석에 뛰어들기도 하고, 오열하는 모습도 보여줬다고요. 이번에도 기대해도 되나요?(웃음)

A : 아니요. 이제 한 살 더 먹었기 때문에 눈물은 반절로 줄이도록 할 거고요.(웃음) 이번 앨범 노래를 최대한 많이 부를 생각이에요. 사실 그동안 선공개된 곡들을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일부러 안 하고 있습니다. 콘서트 때 처음 부르려고 아끼고 있거든요. 그때 개봉 박두하겠습니다.

Q : 방구석에서 태어난 이승윤의 음악은 수많은 이들의 방을 찾으며 또 다른 여정을 떠나요. 이승윤이 꿈꾸는 종착지는 어딘가요?

A : 제 꿈의 종착지는 지금 여기일 것 같습니다. 잘 돌아오는 게 결국 제 인생의 궤적이라 생각해요.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이 행복하게 즐기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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