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시간 감금 끝 나왔더니…울릉도 주차장 '하얀 파도' 정체 [르포]
울릉도는 지금 백색 세상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리는 지역. 해서 ‘겨울 여행의 끝판왕’으로 통하는 곳. 이 섬에서 75㎝가 넘게 내린 눈에 갇혔다.
설국(雪國) 울릉도를 담기 위해 설 연휴를 반납하고 섬에 들어갔다. 22일 밤 11시 50분 경북 포항을 떠난 ‘울릉크루즈’가 7시간 만에 울릉도 사동항에 닿았다. 송곳봉(430m) 자락 절벽에 들어앉은 리조트에 짐을 풀 때만 해도 하늘은 투명했다.
‘올겨울 최강 한파’라는 뉴스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24일. 울릉도 전역에 기다리던 눈이 쏟아졌다. 아침 녘 거센 바람이 창문은 때려 눈을 떠보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창문 밖에 떡하니 서 있던 송곳봉도 시야가 흐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발이 약해지면 나가자’고 생각했었으나 이내 포기해야 했다. 점심 무렵 50㎝까지 눈이 쌓였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눈은 25일 아침까지 그치지 않았다.
울릉도 전역은 이미 24일 오전 비상 모드에 들어간 상태였다. 대설·강풍·풍랑 경보 및 한파주의보가 떨어졌고, 울릉군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월동장비 미구비 차량 운행 자제, 갓길 주차 금지, 외출 자제 등 안전관리에 주의하라’는 방침을 알렸다. 포항~울릉도 출항 예정이었던 울릉크루즈는 물론 모든 여객·화물선의 출항이 취소됐고, 버스도 운행하지 않았다. 태하모노레일, 도동케이블카, 해안산책로, 관음도 출렁다리, 해중전망대, 남서모노레일 등 울릉도 관광 시설 대부분이 폐쇄됐다.
눈이 많이 내릴 줄은 알았지만, 아니 이 눈을 기대하고 울릉도에 들어왔지만, 이 정도까지 내릴 줄은 몰랐다. 리조트는 물론이고 인근 송곳봉과 코끼리 바위 등 북면 일대가 눈 속에 파묻혔고,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울릉도 곳곳의 겨울 풍경을 담아보자던 야심 찬 취재 계획도 전면 중단됐다.
25일 오전 드디어 눈발이 순해졌다. 한데 쌓인 눈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25일 오전 6시 기준 적설량이 75.1㎝에 달했다. 제설차가 제설칼날과 바닷물을 싣고 섬 곳곳을 돌며 눈을 치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산간 지역이나 마을 골목길은 예외였다. 오전 10시 비보가 날아왔다. 리조트와 이어진 비탈길이 26일이나 돼야 제설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믿을 두 발뿐. 결국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었다. 영하 9도 강추위에 바닷바람까지 더해져 한 발 한 발 떼기도 쉽지 않았다. 비탈을 내려오자 오전 11시. 대략 40시간 만에 리조트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스파이크 타이어를 장착한 사륜구동 차량을 어렵게 섭외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로 사정은 여전히 여의치 않았다. 낮은 기온과 강풍으로 도로 곳곳이 살얼음판 같았다. 그나마 순탄한 일주도로는 계속된 제설 작업으로 눈이 꽤 치워진 상태였지만, 골목 안쪽까지는 아니었다.
눈 덮인 울릉도의 모습은 이래저래 낯설었다. 상가가 몰린 저동리는 주민이 몰려나와 곳곳에서 눈을 퍼내고 있었다. 저동항을 가득 메운 오징어배도 눈을 퍼내는 어부들의 손길로 분주했다. 밤사이 눈을 맞은 자동차는 이글루처럼 두툼한 눈옷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차량이 줄줄이 늘어선 사동항 주차장은 아예 백색의 거대한 파도 같았다. “설 쇠러 육지로 나간 주민들 차가 죄 묻혔나 보다”고 한 주민이 일러줬다.
길에서 만난 주민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파도가 세고 눈이 거셀 때를 대비하며 사는 게 섬사람이지.” “겨울에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야.” 체념인지, 달관인지 모를 말투였다.
25일 저녁이 되자 눈발이 순해졌다. 포항~울릉도를 잇는 크루즈 운항이 재개됐다는 소식이 들렸고, 버스도 다시 다니고 있다. 26일 오전부터는 나리분지로 들어가는 비탈길을 비롯해 섬 구석구석으로 제설차가 진입할 예정이다.
울릉도=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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