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엄친아] 고1까지 ‘수포자’ 그녀가 연대 간 힘
엄마 친구 아들(혹은 아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누가 봐도 잘 자란 주변의 자식을 일컫는 말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잘 자란 엄친아도 참 많습니다. [교회엄친아]에서는 그런 신앙인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마냥 부러워하자고 그들을 섭외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완벽해 보이는 그들도 그분 앞에서 한없이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만을 붙들고 지금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더군요. ‘왜 공부를 해야 하지’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당신 혹은 그런 자녀를 두신 학부모에게 교회 속 엄친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분의 선한 계획이 있기에….
재밌는 이야기에 반달눈에 되도록 크게 웃는 안민정(23)씨. 환한 모습에 ‘고생이란 건 모르고 살았겠다’고 속단했다. 하지만 안씨가 녹록지 않았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걸 알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민정씨를 크게 쓰시려고 그랬나봐요”라는 어쭙잖은 위로를 건넸다. 그도 한때는 하나님을 원망했었다고 했다. 신이 자신의 인생을 저주했다고까지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며 눈을 찡긋하며 활짝 웃었다.
안씨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전과목 A+를 받은 일화를 공유하며 학생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대뜸 말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기 전까지는 안씨는 말 그대로 독하게 공부했다. 어떨 때는 도가 지나쳤다. 시험 기간 카페인이 잔뜩 든 에너지 음료 여러 병을 연거푸 마신 것은 모자라 커피까지 들이부었다. 쓰러질 만큼 몸 상태가 안 좋았던 때 누군가 ‘링거 맞자’며 병원에 끌고 갈 때도 문제집을 들고 갔다. 성적은 정체성의 뿌리였고, 자신의 가치를 유일하게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그러니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휴학 후 첫 학기인 지난해 평소 하던 공부의 반만 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을 받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안씨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공부의 은사’를 주인의 기쁨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니 더는 공부로 집착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남과 다르게 했던 필기 방법이 시험에서 유리하게 작용했고, 기도로 얻은 아이디어 덕분에 주관식 평가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안씨는 꽤 고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2년 정도를 미국에서 홀로 생활해야 했다. ‘금수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돌볼 수 없는 사정이 생겼고, 어린 아이는 이역만리 지인 집으로 보내졌다. 그때 기억이 좋을 리 없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제대로 말 못 했던 기억, 그때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아직도 머리에 박혀있다. 돌아와서도 얼마 못 가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안씨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반드시 가야 했다. 미국에 다녀온 덕인지 영어시험을 잘 봤고, 명덕외국어고등학교에 덜컥 입학했다. 외고가 그렇게 학업적으로 힘든 곳인지 몰랐던 안씨는 입학 후 첫 시험에서 꼴등 하며 처절하게 현실을 깨달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어영부영 놓쳤다. 그야말로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자신이 문과 입시에서 수학을 전문 분야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계기는 단순했다. 안씨는 기독교 기반 입시 캠프인 올라아카데미에서 수학, 영어 분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안씨는 “나는 수학을 못 한다. 재능이 없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그 편견이 한번 깨지는 순간이 있었다”며 “다른 과목에 비해 기본기가 없어도 점수를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게 과학이었는데 그 과목에서 점수를 잘 받게 됐고, 한번 점수가 나오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과학을 잘하면 수학도 잘한다는데…’ 하는 치기 어린 생각에 수학을 뒤늦게 시작했다. 안 했던 것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안씨는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양이 필요한데 제 경우 그걸 채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며 5~7 등급 구간 모의고사 수학 성적을 1등급으로 끌어올렸다. 맘 놓고 학원 다니고 과외받고 할 형편이 되지 않았던 터라 인강(인터넷강의)을 많이 봤다고 했다. 어떤 날은 하루 인강 8여개를 파면서 3~4일 만에 한 커리큘럼을 끝내기도 했다. 안씨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하게 된다. 안 하면 못하게 돼 있다. 이 굴레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씨는 자신과 같은 중·하위권 고등학생에게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수학 용어조차 몰랐고, 답지를 봐도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도 해냈다며 그들을 격려했다. 안씨는 “늦었다고 생각해 하나씩 다시 할 수 없었다”며 “처음부터 돌아가지 말고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집요하게 되짚어가는 방식을 택하라”고 조언했다. 자신은 학교 분위기 탓에 그러지 못했지만, 어떤 단원의 어떤 개념을 적용할지 몰라서 헤맬 때 등 기초적인 부분에 부딪힐 땐 친구나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과론적으로 남들과 비슷한 준비 과정 없이 외고에 합격했던 경험이 있으니 영어 공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어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 안씨는 좋은 지문을 여러 차례 읽으며 영어의 감을 올리는 것을 추천했다. 언어적 센스나 문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해석하는 능력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단어 외우기에 대해서는 “고등학생의 경우 모의고사에 나오는 단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단어 외우기도 병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안씨는 “영어는 수능을 잘 봤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며 경영학도인 자신이 요즘 수십 쪽에 달하는 경영 보고서를 영어로 읽고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며 진을 뺀 이야기를 전했다.
스무 해 조금 넘는 인생을 살면서 공부도 못해봤고, 신앙도 잃어봤다. 그런 가운데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준 믿음의 지인이 여럿 있었다. 기독 동아리를 운영했던 크리스천 선생님이 고3 시절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얘기, 방탕했던 대학 1학년 내내 기도로 마음을 부어준 기독 동아리 선배 언니를 말할 때 안씨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는 “어떤 계기로든 하나님이 알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며 “그런 관심이 생길 때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안씨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캠퍼스 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신입생 대상 신앙OT의 기획단장을 올해 맡았다. 안씨는 “돌멩이와 자갈, 모래와 물 순으로 비커에 넣어야 속을 꽉채울 수 있는 것처럼 공부도 인생도 우선순위가 있다”며 “크리스천 학생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입시를 앞둔 후배들에게 한마디 써달라는 부탁엔 “내가 꿈을 이루면, 누군가의 꿈이 된다”라고 적었다. 힘든 시절을 버텨낸 그녀 만이 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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