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교단 선 이철우 경북지사…'칠곡할매글꼴' 할매들과 특별한 수업
“차렷! 선생님께 경례!”
25일 오전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1층 미래창고. 평소 직원들이 책을 읽으며 쉬는 장소로 활용되는 곳에 커다란 칠판이 세워졌다. 칠판 앞에는 옛날 모습을 간직한 책·걸상도 마련됐다. 천장에 태극기와 교훈까지 내걸린 풍경이 ‘그때 그 시절’ 교실을 옮겨온 듯했다.
이윽고 할머니 네 명이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교실로 들어섰다. 일흔이 넘어 깨친 한글로 디지털 글씨체 ‘칠곡할매글꼴’을 만들어 관심을 끈 주인공들이었다.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한 이종희(91) 할머니를 제외한 추유을(89)·이원순(86)·권안자(79)·김영분(77) 할머니는 명찰을 달고 자리에 앉았다. 이날 수업은 건강과 개인 사정으로 더는 한글 수업에 참석할 수 없는 이종희·이원순·김영분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수업’이 될 터였다.
일흔 넘어 한글 깨우치고 글씨체 만든 할매들
칠곡할매글꼴은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운 다섯 명의 칠곡 할머니가 넉 달 동안 종이 2000장에 수없이 연습한 끝에 2020년 12월 만든 글씨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각계 원로와 주요 인사 등에게 보낸 신년 연하장은 물론 한글과컴퓨터, MS오피스 프로그램에 사용되고 국립한글박물관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수업은 한 명 한 명 출석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할머니들은 이 지사가 이름을 부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어 이 지사가 ‘경상도’와 ‘충청도’ ‘전라도’ 지명 유래를 설명하자 고개를 끄떡였다.
‘수학교사 출신’ 도지사가 마지막 수업 나서
돌발 퀴즈도 있었다. 이 지사가 반장을 맡은 김영분 할머니에게 “경북 경주 인구가 더 많을까요, 대구시 인구가 더 많을까요”라고 묻자 김 할머니는 “경주가 대구보다 더 크니까 암만캐도(아무래도) 경주에 사람이 더 마이 안 있겠는교(많지 않겠느냐)”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자 김 할머니는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공부를 좀 해올 걸 그랬다”고 멋쩍어하기도 했다.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한 할머니들은 졸업장을 받고 학사모를 썼다. ‘위 학생은 행복대학 수업에서 위와 같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라고 적힌 상장도 받았다. 상장과 졸업장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학사복을 입은 채 덩실덩실 춤을 췄다.
상장·졸업장 받아든 할매들 덩실덩실 어깨춤
이 지사는 “할머니들이 살던 시대는 글을 배우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문맹률이 70%에 달했지만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글을 아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됐다”며 “오랜만에 교사가 돼 수업해 보람있었고 할머니들도 즐거웠을 것”이라고 했다.
안동=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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