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 내 손에 새겨진 나의 ‘인생’

기고자/김태은 일산차병원 암 통합 힐링센터 교수(차의과학대 미술치료대학원) 2023. 1. 2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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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런 분들과 미술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 편안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는 '손'입니다.

"세 아이를 키웠고 자식들이 결혼해서 낳은 그 손주들까지 이 손으로 다 돌봤지.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려주면 모두들 잠을 잘 잤어요." "집에 있을 때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한 게 화분을 돌보는 거였습니다. 자식들은 이제 다 출가해서 내가 돌볼 수 없지만, 베란다에 놓인 화분들은 내가 이 손으로 물 줄 때를 기다리고 보살펴주기를 바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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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예술을 만나면>
그림을 그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런 분들과 미술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 편안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는 ‘손’입니다.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서, 손으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손을 한참 바라보며 떠올려봅니다. “이 손으로 운전도 하고 어려운 장비도 잘 다뤘지요. 내가 기술이 참 좋았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하루에 도시락을 세 개씩 준비했어요. 형편이 어려운 탓에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도시락 싸주는 것 밖에는 없었어요. 그 도시락 먹고 자식들이 다 착하게 잘 자랐답니다.”

그 다음엔 손으로 나누었던 관계에 대해서도 탐색합니다. 손으로 누구를 돌보았는지, 누구에게 사랑을 표현했는지 말입니다. “세 아이를 키웠고 자식들이 결혼해서 낳은 그 손주들까지 이 손으로 다 돌봤지.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려주면 모두들 잠을 잘 잤어요.” “집에 있을 때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한 게 화분을 돌보는 거였습니다. 자식들은 이제 다 출가해서 내가 돌볼 수 없지만, 베란다에 놓인 화분들은 내가 이 손으로 물 줄 때를 기다리고 보살펴주기를 바란답니다.”

극심한 통증을 겪으셨던 60대 간암 환자 한 분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미술치료를 하는 시간만큼은 통증을 잊을 정도로 깊이 몰입하셨습니다. 멋진 풍경을 그리고 그 옆에 시를 적어 고상한 시화를 완성하기도 했고, 아내와 연애 시절을 떠올리며 달콤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작업 내내 이 분은 항상 왼손을 등 뒤로 숨기고 계셨는데요. 10대 때 다니던 첫 직장에서 손가락 두 개를 잃는 큰 사고를 당했노라며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70세를 바라보는 지금도 사고당한 손가락을 보면 부끄럽고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환자분에게 “10대에 그런 사고를 겪고도 결국 탄탄한 사업체의 대표가 됐고,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자녀들을 낳았고, 이제는 손자들에게 존경받는 할아버지로 살고 계시지 않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사고를 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은 맞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요. 자신의 손을 바라보시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고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손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는 “이 손이 내 삶의 트로피다”라고 하셨습니다.

손에는 우리 삶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암 치료를 받는 지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고 자신이 한 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손을 바라보세요. 그 손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나요? 또 그 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나요? 손에 쌓인 그 모든 추억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자신에게 감사를 표현해보면 좋겠습니다.

손톱이 지저분해도 괜찮습니다. 링거를 맞아 손등이 부었어도 괜찮습니다. 손에 잡힌 굳은살도 내 것입니다. 양 손을 잠시 모아서 손바닥을 느껴보고, 손바닥으로 다른 손의 손등을 쓰다듬어 보세요. 내 손의 감촉, 내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감사함을 느껴보세요. 오른 손을 왼쪽 어깨에 올리고, 왼손을 오른쪽 어깨에 올려 스스로를 몸을 안아주세요.

저는 오늘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손을 그려보았습니다. 따스한 온기를 손에 가득 담아 여러분께 전합니다. 제 손에 깃든 온기를 여러분께 드리니, 그 온기가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닿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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