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美, 도시 내 개발만 허용… 獨, 도시 주변 녹지 엄격한 관리

심희정 2023. 1. 2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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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그린벨트] ④ 원칙 지키는 해외 사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제도는 대도시가 있는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대도시 주변에 그린벨트를 설정해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녹지를 보존하자는 취지에서다. 다만 주택 부족에 따른 개발 욕구는 전 세계 대부분 도시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다. 일부 도시들은 그린벨트를 조금씩 풀거나, 개발이 가능한 경계 지역을 설정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일시적으로 그린벨트 해제 면적을 늘리거나 수시로 해제를 결정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 확장 막은 영국, 주택 부지는 숙제

24일 국토연구원 등에 따르면, 그린벨트 제도의 원조국가 격인 영국은 대도시 주변일수록 그린벨트 면적이 크다. 대도시 권역의 4대 그린벨트가 전체 그린벨트 면적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한다. 2019년 기준 영국 그린벨트 면적은 1만6158㎢로 전체 토지의 12.4% 수준이다. 영국은 지난 20년간 그린벨트 총면적이 2.2%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그린벨트 지정 당시인 1971년에 비해 현재 그린벨트 총면적이 63.5%만 남은 한국과 비교하면 보존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

런던 주변의 그린벨트는 도시 확장을 막고 도시 내 개발을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대부분 통근이 런던 내부에서 이뤄졌고, 출근을 위해 길고 먼 이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한국 수도권이 확장되면서 수도권 거주 시민들의 통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는 영국의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결정이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영향이 크다. 그린벨트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컨설팅과 검토, 최종 채택 과정이 필요한데 여기에만 드는 시간이 약 3년 안팎이다. 그린벨트 조정에 이의가 있으면 절차마다 의견을 제시하거나 중앙 도시계획기구의 개입을 요청할 수 있다. 그린벨트 조정과 같은 도시계획을 결정할 때는 당국과 전문가,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고 이를 지역 주민과 공유한다.

다만 영국도 최근 주택 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7년 영국 정부는 대도시권 주택 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공급 확대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린벨트 부지에 36만 가구의 주택이 공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단체들은 그린벨트 완화에 반발했고, 여전히 정부 당국과의 갈등은 진행 중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마주한 美 포틀랜드

미국 포틀랜드시는 도시성장한계선(UGB) 제도를 통해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일정 기간에 특정 도시권 내부에서만 개발을 허용한다. 도시성장한계선 내부는 처음 제도가 생긴 1979년에 비해 60% 넘게 인구가 증가하면서 무분별한 도시 확장을 억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도심부의 재개발로 땅값이 오르고,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문제로 꼽힌다. 외곽 지역일수록 지역 주민의 소득 감소 추세가 뚜렷한데, 중심지의 주거비 상승으로 기존 거주지를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직주 불균형으로 인한 통근 비율도 높게 나타난다. 도시권 내에 충분한 주거 공간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생기는 문제다.

그럼에도 도시성장한계선은 도시의 압축적인 개발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틀랜드의 땅값 상승은 단순히 도시성장한계선 설정으로 인한 토지공급 제한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더 살기 좋은 도시환경이 조성돼 주택과 토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김중은 국토연 연구위원은 “토지와 자원을 지금 세대에서 모두 소진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둔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며 “지금 세대가 치르고 있는 비용이 미래 세대가 치러야 하는 대가의 상당 부분을 상쇄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민 생업엔 그린벨트 풀어주는 獨

독일은 ‘외부 지역’이라는 개념으로 도시 주변 녹지를 관리하고 있다.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계획 지역, 계획 없이도 개발이 가능한 내부지역, 이밖에 지역을 외부지역으로 칭한다. 외부지역은 그린벨트처럼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땅으로 여겨지고, 이 지역에 건축이나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규제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조건에는 농업, 임업, 수산업, 축산업 등 종사자가 생업을 위해 개발을 필요로 할 때 건축 금지 원칙을 해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정 구역이나 면적을 정해 일률적으로 개발을 제한하지 않고, 지역 주민 편의와 생활을 우선한다는 평가다.

오스트리아 빈도 독일과 비슷하게 그린벨트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 주민의 건강이나 농업, 임업 목적을 위한 건축 외에는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빈은 도시의 절반가량이 그린벨트로 보존되고 있고, 공원이나 열린 공간 등을 연결해 통합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시의 녹지를 연결해 도심 속 허파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필요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해 ‘뜀뛰기식 개발’을 해 온 국내 상황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주택이나 산업단지 용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 녹지 보존 효과는 떨어졌고, 남은 그린벨트는 버려진 땅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해외 사례를 본보기 삼아 지역 주민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면서 개발해야 할 땅과 남겨둬야 할 땅을 원칙 있게 구분 짓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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