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설날과 고향

2023. 1. 2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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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설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인 어제 제주에는 거센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쳤다. 산지에 많은 눈이 쌓이고 종일 한파가 이어졌다. 배편과 항공편이 모두 끊겼다. 한랭 기단과 강풍과 대설 속에 있었다. 설을 쇠러 육지에 나갔다 그나마 하루 일찍 제주로 다시 돌아온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돌아와서 육지 고향에서 보낸 사흘을 생각하니 두고 온 고향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살얼음이 끼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빈 들판이 자꾸 떠올랐다. 고향집도 어제는 한파와 강풍 속에 있었을 것이다.

작년 늦봄엔가 집 주변에 있는 작은 밭을 일구면서 쓴 ‘흙 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라는 졸시가 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묵혀 있던, 집터에 딸린 밭을 일구던 때의 생각을 쓴 시였다. 돌이 많은 밭이었지만, 풀이 돋고 지는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된 탓에 흙 속에는 많은 지렁이가 살고 있었다. 그 지렁이들을 땅 밑에 묻어 살던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면서 느닷없게도 고향 생각이 난 적이 있었다.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 명절 쇠러 찾아간 내 살던 고향집
잔칫날에 묵고 가던 고모 생각나
마음속 고향의 세계 더 넓혔으면

‘오래 묵은 이곳에서는 흙을 들출 때마다 지렁이가 나왔다 문 열고 나오듯이 나와 굼틀거렸다 나는 돌 아래 살던 지렁이는 돌 아래로 돌려보냈다 모란꽃 아래 살던 지렁이는 모란꽃 아래에 묻어주었다 감나무 아래 살던 지렁이는 감나무 뿌리 쪽에 흙으로 덮어주었다 호우가 쏟아지고 내가 돌려보냈던 지렁이들이 다시 흙 위로 나왔을 때에도 이런 곳 저런 곳에, 살던 곳으로 되돌려보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두고 온 내 고향이 눈에 선했다 집터와 화단의 채송화, 우물, 저녁 부엌과 둥근 상, 초와 성냥, 산등성이와 소쩍새가 흙 속에 있었다 어질고 마음씨 고운 고모들도 흙 속에 살고 있었다 솟아오르려는 빛이 잠겨 있는 수돗물처럼 괴어 있었다 흙 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 있었다.’

살던 고향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이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는 1970년대 후반에 산 밑에 자리를 잡은 집터와 밝은 색감이 있던 화단, 당시에 마흔 살쯤 되셨을 아버지께서 아주 여러 날에 걸쳐 혼자 팠던 우물터, 밥 짓느라 매캐한 연기가 피어나던 부엌,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던 식구들, 마을을 빙 둘러싸던 산의 등줄기, 그리고 고모들 생각이 났다. 물론 훨씬 더 많은 존재와 애틋한 이야기들이 고향이라는 흙 속에 살고 있지만.

설날에 뵈었더니 아버지께서는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시골 고향집으로 친척들이 일찌감치 찾아와서 여러 날을 자고 가던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화령에 살던 고모가 오셔서 주무시고 가셨던 그 기억은 내게도 꽤 생생했다. 언젠가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화령 고모네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길은 멀고 먼 길이었다. 시외버스를 두어 번 갈아탔고, 징검돌이 띄엄띄엄 놓여 있는 개울을 건너가며 한참을 걸었다. 목화밭에 목화송이들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화령 고모는 보자기에 뭔가를 잔뜩 싸서 우리집까지 그렇게 먼 길을 오신 것이었다. 잔칫날을 하루 이틀 앞두고 오셔선 잔칫날이 하루 이틀 지난 후에 다시 화령으로 가셨다. 고모는 아버지와 밤에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시곤 다시 새벽에 일어나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낮은 목소리로 나누셨다. 고모와 아버지는 나이 터울이 꽤 있어서 아버지는 늘 고모에게 깍듯하셨다. 자애롭고 선한 고모였다.

시골 고향집에서 잠을 잘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만 아버지께서는 잠을 자고 있는 내 방에 새벽이면 한 차례 들렀다 가신다. 방에 들러서 이불을 내 발끝까지 덮어주곤 나가신다. 방바닥도 뜨끈뜨끈한지 손바닥으로 쓸어보곤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러한 일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셨다. 설날 새벽에도 중년이 된 아들의 몸에 이불을 끌어 덮어놓곤 조용히 나가셨다.

설날이면 마을에서 하던 합동 세배는 올해에도 치르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듣고, 술과 명절 음식을 함께 나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마을의 이 오랜 전통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만 늙는 것이 아니라 고향도 늙는다는 생각이다. 고향집 집터에 붙어있는 산에 새 둥지가 있는 것을 보았다. 참나무 꼭대기에 지어 놓은 둥지였다. 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그 둥지를 올려보는 동안에는 새를 볼 수 없었다. 빈집 같았다. 고향집 같았다. 어제 제주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동안 그 새의 둥지가 자꾸 눈에 보였다. 고향이 외롭지 않게 해야겠다는, 고향이 더 큰 세계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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