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돈대로 쓰고…25일 출근 못해 미안합니다" 4만명 한숨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오전 제주 국제공항 3층 출발 대합실. 폭설과 강풍으로 항공편 233편(출발기준)이 모두 결항되면서 공항은 북새통을 이뤘다. 국내선 출발 상황판엔 빨간 글씨로 ‘결항’ ‘결항’ ‘결항’이 쭉 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만여명이 제주에 발이 묶였다. 상당수 항공사가 남는 좌석을 선착순으로 배정하다 보니 귀경·관광객들은 이날 새벽부터 대체 항공권을 구하려 각 항공사 카운터에 수십미터씩 길게 줄을 섰다. 하지만 당장 돌아갈 항공편 구하기는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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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더 쓰게 돼” 울상
예정에 없던 일정변경에 부담은 커졌다. 가족들과 함께 제주를 방문했다는 이모(65·서울시)씨는 “가장 빠른 대체 (항공) 편이 27일 자 비행기라는 항공사의 답변을 들었다”며 “가족 6명의 추가 숙박비만 해도 큰 부담이라 막막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대한한공 등 상대적으로 여유 편(특별기) 동원에 수월한 대형 항공사 이용객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결항 편 운항시간 순서에 맞춰 탑승에 우선권을 주고 있다. 귀경객 이모(54·서울시)씨는 “새벽 5시에 공항에 왔는데 다행히 내일(25일) 출발하는 항공편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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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창엔 ‘허’ ‘호’ 번호판 단 차 가득
공항 주변 식당과 카페 주차장엔 ‘허’나 ‘호’로 시작하는 렌터카가 주차면을 가득 채웠다. 식당의 이른 브레이크 타임(재료준비 위해 쉬는 시간)에 헛걸음하는 관광객이나 아예 결항상황에 체념하고 이호테우해변 등 관광지를 찾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결항에 입도객도 끊기다 보니 제주도 내 숙박시설은 부족하진 않았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갑작스러운 결항에 숙박앱 검색 등 서둘러 머물 곳을 구해야 했다.
이날 오후 찾은 제주시 노형동의 한 호텔 프런트 주변엔 여행용 캐리어 수십 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하루 이상을 더 제주에서 보내게 된 관광객들이 맡겨놓은 짐이다. 로비엔 체크인을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 호텔은 350실 규모다. 기존 예약현황대로라면, 이날 150객실가량이 체크아웃돼야 하나 절반가량인 70여 객실이 추가 숙박을 신청했다. 호텔 직원들은 체크인 시간을 당겨주려 방 정리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SNS엔 "심란하다"
제주공항 현장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도 ‘제주도에 갇혀 버렸다’, ‘집에 가야 하는데 비행기 결항이라고 한다’ 등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제주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항공권은 대체 편이 편성됐지만, 숙소는 동일한 방이 연장이 안 돼 다른 방으로 예약했다”며 “놀러 와서 하는 것도 없이 돈은 돈대로 더 쓰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참 심란하다”고 토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4일 오전 10시 기준 제주 산지 지역엔 대설·한파 경보가, 산지 외 지역에는 대설·한파 주의보가 각각 발효 중이라고 밝혔다. 제주 육지 전역엔 강풍, 전 해상엔 풍랑 경보가 내려졌다. 24~25일 제주 한라산엔 최대 70㎝가량 눈이 쌓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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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도 한파·대설피해 이어져
제주뿐 아니다. 대설주의보와 한파경보가 내려진 호남지역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다. 이날 광주와 여수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은 모두 결항됐다. 또 전남 나주 왕곡면 한 도로에서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져 운전자 1명이 경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보성군 벌교읍엔 강풍에 구조물이 날아와 지붕이 파손됐고, 여수시 신월동 넘너리 선착장에선 정박 어선 8척이 줄이 끊겨 표류했다. 이밖에 귀경길 고속도로 사고도 이어졌다. 인구가 밀집한 서울과 인천, 경기 등에선 수도계량기 등이 동파(凍破)된 사례가 14건으로 집계됐지만, 한랭 질환 등 인명피해는 없었다.
한파는 25일 오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중대본은 “25일 오후부터 기온이 오르면서 26일쯤부터 평년 기온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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