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댄스홀서 총기난사한 美72세…"춤추다 툭하면 버럭했다"
미국 내에서 총기 소유에 가장 엄격한 지역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州)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미국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비극에 비극이 더해졌다”며 비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해안 도시인 하프문베이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앞서 지난 21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에서 총격 사건으로 11명이 희생된 지 이틀만에 벌어진 대형 참사다.
72세 노인, 단골 댄스홀서 무차별 총격
음력 설 전날인 21일의 총기 난사는 LA 인근 몬터레이 파크의 댄스홀인 ‘스타 볼룸 댄스 스튜디오’에서 벌어졌다. 이로 인해 1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다. 지난해 5월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 사건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총격 사건이다.
당시 이곳에선 음력 설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NYT는 목격자를 인용해, 용의자 휴 캔 트랜(72)이 댄스홀에 난입해 일부 사람들을 조준해 총을 쐈고 나머지는 무차별 난사했다고 전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중국계로 추정된다. LA 주재 중국 총 영사관은 24일 “중국 국민이 불행히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중국 국적 사망자가 최소 1명”이라고 전했다. 몬터레이 파크는 중국·대만·베트남 등에서 온 이민자 집단이 정착해 미국 본토에서 처음으로 아시아계가 과반을 차지한 도시다.
트랜은 총격을 벌인 지 20분 뒤, 3㎞ 떨어진 도시 알햄브라의 또 다른 댄스 교습소에서 2차 범행을 시도하다 현장에 있던 시민에게 총을 뺏겼다. 차량을 몰고 달아난 트랜은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범행에 사용한 것과 다른 권총을 사용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NYT는 이민 서류를 분석해, 용의자 트랜이 베트남에서 태어나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해 1990년 경 귀화한 베트남계 미국인이라고 밝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트랜의 전처가 CNN에 공개한 결혼 증명서를 토대로 “베트남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귀화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범행을 저지른 댄스홀은 트랜이 오래 전부터 드나들며 신입 회원들에게 무료로 춤을 가르쳐 주고 친목을 쌓았던 장소다. 전처와도 이곳에서 만나 춤을 가르쳐주다 2001년 결혼했다. 4년 뒤인 2005년 이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춤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을 불신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인 애덤 후드는 “댄스홀 강사들이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한다고 자주 불평했다”며 “사교적이라기보단 외톨이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트랜의 전처는 그에 대해 “폭력적이진 않았지만, 화를 잘 냈다”며 “춤을 추다가 스텝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버럭 화를 냈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은 트랜의 범행 동기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로버트 루나 LA카운티 보안관은 “트랜이 무려 42발을 난사했다”면서 “무엇이 이 사람에게 이런 미친 짓을 하게 만들었는지 반드시 알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67세 중국계 노동자, 농장 동료에 난사
이틀 뒤인 23일 또 캘리포니아주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2시20분경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8㎞ 떨어진 92번 고속도로와 하프문베이 경계에 위치한 버섯 농장 두 곳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크리스티나 코커스 보안관은 “이날은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몇몇 아이들이 총격 사건을 목격했다”며 “참담함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농장 한 곳에서 4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어 인근 스탠퍼드메디컬센터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1.6㎞ 떨어진 다른 농장에선 3명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용의자가 차량으로 두 장소를 오가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데비 러덕 하프문베이 시의원은 “희생자들은 중국인 농장 노동자”라고 NBC에 전했다.
용의자인 67세 자오춘리는 중국계로 알려졌다. 범행 2시간 뒤인 4시40분 경 하프문베이 경찰 지구대의 변전소 주차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피해 농장 중 한곳에서 수십년간 일했으며 피해자 모두와 동료라고 ABC7 뉴스는 전했다. 범행 동기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경찰은 용의자가 범행 당시 사용한 반자동 권총 1정을 압류했으며, 단독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카린 장 피에르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23일 트위터를 통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하프문베이 사건을 전해 들었으며 ‘연방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지원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몬터레이 사건 이후 애도를 표하고 미국 내 모든 공공 건물에 조기 게양을 지시한 바 있다.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 커져
NYT는 “이번 두 사건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이달 16일 캘리포니아주 툴레어 카운티에서 갱단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괴한 여러 명이 총기를 난사해 10개월 아기를 포함해 6명을 살해한 사건을 전했다. CNN은 23일 미국 내 총격 사건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총기폭력 아카이브’ 자료를 인용해, 올 들어 현재까지 총기 난사 사건(총격범을 제외하고 죽거나 다친 피해자가 4명 이상)이 총 38번 발생했다고 전했다. CNN은 “이는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고치”라고 지적했다.
뉴섬 주지사는 트위터에 “이렇게 지속적인 총기 폭력으로 공포를 겪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면서 “전국적인 수준에서 진정한 총기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썼다. 데이비드 파인 샌머테이오카운티 감독위원회 의장도 성명을 통해 “몬터레이 파크의 희생자들을 애도할 시간조차 없이 또다시 사건이 발생했다”며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총기 규제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아간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스코트 위너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도 트위터에 “(이번 사건은) 우리를 질식시키는 총기 폭력이란 해일의 일부”라며 “이제 (총기 규제에 대해) 말할 때가 됐다”고 적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에서 집단 총격 사건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레퍼토리”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에선 총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졌지만, 총기 소지를 ‘타협할 수 없는 헌법적 권리’라 주장하는 공화당과 총기업계 로비 앞에 번번이 좌절됐다. 지난해 미국은 유밸디 초등학교 참사 이후 총기 소지자의 신원 조회 강화 등 일부 규제를 강화했지만, 돌격소총(반자동소총)과 대용량 탄창을 금지하는 안은 빠졌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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