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 어린이와 놀이공간] 공교육 의제로 떠오른 ‘놀이’

문정임 2023. 1. 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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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육계에 부는 변화
지난 2015년 5월 4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어린이 놀이헌장 선포 후 참석한 어린이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공


“모든 어린이는 놀면서 자라고 꿈꿀 때 행복하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는 어린이의 놀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어린이에게 놀 터와 놀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어야 한다.”(‘어린이 놀이헌장’ 중에서)

2015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어린이 놀이헌장을 선포하고, 시도교육청이 추진할 10대 정책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놀이헌장이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의 추진 하에 제정된 것이다. 선포식은 어린이들의 놀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하고, 어린이가 놀이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교육공동체의 약속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현대에 들어 어린이가 충분히 놀며 성장해야 한다는 의제가 권리로서 처음 명시된 건 1989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다. 협약은 18세 미만의 아동이 차별 받지 않고 생존과 발달을 위해 다양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총 54개항으로 구성됐다. 이 중 하나가 31조에 명시된 놀 권리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다. 하지만 입시 경쟁이 치열한 현실 속에 아이들의 놀 권리는 오랫동안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못했다.

공교육의 수장인 교육감들이 놀이헌장을 만들어 선포한 것은 놀이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며 자란 어린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데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반성이자 성찰이기도 했다.

곧 작은 변화들이 시작됐다. 각 교육청은 매일 아이들에게 일정 놀이시간을 보장하도록 일선 학교에 권고했다. 학교 운동장을 아이들이 더 잘 놀 수 있는 환경으로 재구성하고, 다양한 놀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놀이 재료를 대여하거나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교사 직무연수에 놀이 특강을 개설하고, 놀이 동아리나 연구회를 지원하는 교육청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북 등 일부 교육청에선 학부모를 놀이교육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확보하기 위해 교육을 통해 학부모 놀이 자원활동가를 육성했다.

제주도교육청도 제주 어린이들에게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2014년 24개교에 머물렀던 중간놀이 시간 운영 학교가 전국시도교육감의 어린이 놀이헌장 발표가 있던 해 53개교로 두 배 늘었다. 지금은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교사 연수에 놀이 특강을 처음 포함했다.

서귀포 도순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어린이들이 유치원 바깥놀이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순초 병설유치원은 2020년 신설과 함께 제주도교육청의 놀이환경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외부 놀이공간에 흙 언덕과 바구니 그네, 장수풍뎅이 모양의 조합놀이대, 흙놀이장을 설치했다. 사진 도순초 제공


2020년에는 유치원 바깥놀이장 설비 기준을 개정했다. 필수 설치 대상을 ‘조합놀이기구 1조’에서 ‘조합놀이대 또는 개별 설비 3종 이상’으로 변경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기구 위주의 놀이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교육청이 지침을 정비한 것은 전국에서 제주가 처음이다.

물이나 모래 흙 등 자연 재료를 충분히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희망 유치원엔 놀이공간 개선을 위한 컨설팅과 예산을 지원했다. 2022년까지 3년간 110여개 유치원(중복 포함)의 실외 놀이공간이 달라졌다.

조합놀이대가 덩그러니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던 곳에 거대한 흙언덕이 들어섰다. 나무가 많은 학교에선 밧줄을 연결해 흔들다리와 해먹, 그네를 만들었다. 모래장에 수도를 끌어오고 탁자를 두는 곳이 늘었다. 아이들이 놀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그늘막과 평상 등 쉼터를 갖추고, 흙놀이장을 설치하는 유치원들도 생겨났다.

서귀포 도순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설치된 흙 언덕 위를 아이들이 지나고 있다. 도순초 제공


지자체가 시민 행복을 끌어올리기 위한 관점에서 아동친화정책을 추진한다면, 교육청은 아이들이 사회의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적 토대로서 놀이환경 개선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는 평범한 진리를 넘어 공교육이 ‘놀이’를 교육 본연의 활동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자기주도적인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교육적 철학을 토대로 2019 개정 누리과정을 유아·놀이 중심으로 개편했다. 2024년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도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미래 인재상으로 제시하면서, 초등 저학년의 경우 실외 활동 등 놀이활동 전반을 강화도록 요구하고 있다.

제주교육청은 앞서 개정한 유치원 바깥놀이장 설비 기준을 더 완화하는 방안을 올해 추진하고 있다. 개별 유치원이 각각의 여건과 철학에 맞춰 더 자유롭게 놀이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우리 교육청이 놀이 여건 개선에 예산과 행정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는 것은 아이들이 놀면서 체득하는 것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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