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니 킹’처럼…美 흑인 운전자, 경찰들에 맞아 숨져
뒤쫓아 체포하던 경찰, 심하게 구타…사흘 뒤 숨져
현지 매체 ”‘로드니 킹’ 사건 연상” 지적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흑인 운전자가 교통단속 경찰관들에게 구타당해 심장마비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운전자는 경찰관의 체포 요구에 불응하고 도주하다 붙잡히는 과정에서 심한 구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23일(현지시간) CNN 등 복수 외신을 종합하면 멤피스의 교통단속 경찰관들은 지난 7일 타이어 니컬스(29)가 모는 자동차를 난폭운전 혐의로 정지시켰다. 니컬스는 차에서 내린 뒤 뛰어 달아났고, 경찰관 5명은 니컬스를 뒤쫓아 체포하면서 심하게 구타했다.
니컬스는 체포된 후 호흡곤란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고, 사흘만인 지난 10일 신부전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희소병인 ‘크론병’을 앓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 어느 부위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 질환으로 난치성으로 분류된다.
니컬스는 택배회사 ‘페덱스’의 배달원으로 일하면서 4살 난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체포되기 직전에 근처 공원에서 일몰 사진을 찍은 뒤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지 매체는 니컬스의 사망 사건을 보도하며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촉발했던 ‘로드니 킹’ 사건을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로드니 킹 사건은 흑인 노동자 로드니 킹이 1991년 3월 3일 과속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관 4명이 집단 구타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학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대표된다.
다만 니컬스 사망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 5명 모두 흑인이라는 점에서 로드니 킹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니컬스의 유족과 이들을 대리하는 변호인들은 사건 영상을 23일 열람한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록된 영상에는 경찰관들이 니컬스에게 최루가스를 분사하고 3분여간 마구 때리고 발로 차는 모습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니컬스가 ‘인간 피냐타’처럼 맞았다고 언급했다. 피냐타는 안에 과자나 장난감 등 선물을 넣고 종이나 천으로 감싸 만든 인형이다. 멕시코 등 중남미와 미국에서는 생일을 맞은 어린이나 축제 참가자들이 피냐타 인형을 막대기로 두들겨서 터트리고, 그 안에 든 선물을 꺼내는 풍습이 있다.
니컬스의 어머니 로본 웰스는 “그날 저녁에 하려던 닭 요리를 아들이 먹고 싶어했다. 내 아들은 그저 집에 오려고 했을 뿐”이라며 오열했다. 그는 ‘경찰관들이 살해했다’고 언급하며 “아들이 살해당한 장소는 집에서 고작 70m 떨어진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아들은 마약을 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다. 또 남들과 다툼을 벌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니컬스의 의붓아버지인 로드니 웰스는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이 1급 살인죄로 기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니컬스가 당시 달아난 이유가 경찰관들로부터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며 “영상을 보면 왜 아들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다만 니컬스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와 관련해서는 “시위를 한다면 계속 평화적으로 해 달라. 폭력은 타이어가 원했던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타이어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당부했다.
구타 영상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만일 공개된다면 대규모 시위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분석이다. 로드니 킹 사건 당시에도 구타 영상이 공개되면서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일다 대규모 시위와 폭동으로 확전됐다.
유족 측 변호사인 벤 크럼프는 영상 공개를 1∼2주 미뤄 달라는 수사 당국의 요청을 유족이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셸비 카운티 지방검사장(DA) 스티브 멀로이는 수사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어 이 같은 요청을 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앞서 멤피스 경찰국장인 세럴린 데이비스는 지난 20일 당시 니컬스를 체포한 경찰관 5명에 대해 “지나친 물리력을 사용하고, 이를 말리지 않았다는 감찰 결과에 따라 전원 면직됐다”고 밝혔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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