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하는가

문광용 2023. 1. 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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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시> ... 고 윤정희 배우를 추모하며

[문광용 기자]

▲ 영화 <시> 포스터
ⓒ 파인하우스필름
 
시는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올 때 더욱 시 다울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김용택 시인이 언급한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이 내면적인 작업은 역설적으로 외부적 관찰의 섬세한 시선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인연도 없어 보이는 여학생의 죽음이라는 뉴스와 떨어진 살구 하나에도 의미를 찾아가는 문학소녀의 심성이 없었더라면 이제 막 치매의 초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미자 할머니에게는 말년의 삶이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낙엽과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외면하고 싶은 현실과 마주하는 삶은 그 자체로 희노애락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 현실에서 이쁜 것만 추출할 지, 괴로운 것도 마주할 지, 마음에도 없는 미사여구를 늘어놓을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구절을 읊을 수 있을지는 시를 쓰고 싶은 당사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긴 세월동안 온갖 말로도 다할 수 없는 풍파를 견뎌냈을 미자 할머니는 삶으로부터 출발했으나 삶의 현실에 묶이지 않은 작품을 기어코 뽑아 냅니다. 이 시가 많은 이들에게 공명을 남기는 것은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시로 인해 미자 할머니는 스스로 문학적인 구원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영화라는 소재의 특성상 연출, 연기, 촬영, 편집, 음악, 미술, 각본 등등 많은 요소들은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를 조금 보는 척 하는 비교분석가들은 <시>에서 이 없어보이는 장치들에 시큰둥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지요. 이창동 감독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그런 경향을 보이긴 했지만 <시>를 통해서 기교를 부리지 않는 기교의 방식으로, 우리네 삶과 다름없는, 어쩌면 다큐 <인간극장>보다 더 작위성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이 방식은 영화가 먼저 웃거나 울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관객에게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는 주체적인 수용의 시간을 마련해 줍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말이지요.

<시> 이전에, 60년대의 화제작이었던 <안개>로부터, 15년 전의 명작이었던 <만무방>이후로 다시 은막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 시절에서 윤정희 배우는 자신의 삶과 영화를 절대적으로 분리하기 힘든 작품을 남기고 영화처럼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백편을 찍었던 이전의 관습과 버릇과 선입견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들 <시>는 영화소녀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윤정희 배우와 그녀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던 이창동 감독의 합작품입니다.

시인은 시로 세상과 만납니다. 영화감독이 영화로 세상과 만나듯이 말이지요. 이때의 시나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어눌하고 말하기 힘들 때라도, 그들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이자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있는 사다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술의 진정한 출발은 그 작품이 얼마나 알려지는지, 얼마나 팔리는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얼마나 충족이 되는지를 살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 겁니다. 내 작품의 최초 애독자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먼저 될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작품으로서의 자격이 이미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개나 소나'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책을 쓴다는 비교우위의 지식인 척 하는 세간의 비아냥에 흔들리지 않고 공명을 넓혀갈 때가 올 겁니다. 사후에 위대한 화가로 남았지만 생전에 작품 하나 팔기 힘들었던 빈센트 반 고흐조차 그 시작은 소박한 스케치로 출발했습니다. 

시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영화이든 작품 하나만 남겨도 어떤가요. 그 작품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이 태반인데. 그 작품이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어떤가요. 행여라도 내 영혼이 그 바람을 강하게 지닌다면 한 육신에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언젠가는 이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 이번 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것은 없어지지 않고 영혼의 진화를 위해 남아 있을 겁니다. 뒤에 이어서 올 육신을 위해. 
▲ 배우 윤정희 스틸 컷
ⓒ 파인하우스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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