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제재’ 본격화… 관치 논란에도 CEO 압박 명분 [스토리텔링 경제]

임송수 2023. 1. 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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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회장 사퇴 압박 명분 작용
금융당국, 2월 중 사모펀드 제재 안건 심의 재개
금융위원회. 조진수 기자


금융당국이 9개월 만에 ‘사모펀드 제재’라는 칼을 다시 빼 들었다. 여론도 호의적이란 점에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압박하기 위한 최고의 명분이다. 최근 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 관치 논란이 불거졌지만 당국은 사모펀드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경우 물러나는 게 옳다는 인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외풍 논란 휩싸인 금융지주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연임이 유력하던 금융지주 CEO들의 용퇴가 이어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두 달에 걸친 장고 끝에 지난 18일 임기 연장을 포기했다.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내정했다. 손병환 전 회장은 취임 첫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연임이 유력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12월 8일 차기 회장 후보 대상의 최종 면접 자리에서 돌연 용퇴 의사를 밝혔다.

최근 금융지주 회장들의 사퇴 과정에선 유독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당초 조 회장은 3연임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룹 내 부회장직 신설 등 조직 개편을 추진할 정도로 연임 의지는 강했다. 그러나 면접 당일 조 회장의 요청으로 발표 순서가 가장 마지막으로 조정됐고 이 자리에서 그는 용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사외이사들을 포함해 조 회장과 함께 면접을 봤던 진옥동 당시 신한은행장, 임영진 당시 신한카드 사장도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우리금융의 경우 손 회장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열리기 직전에 이사회에 연임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 임추위 전까지 내놨던 손 회장의 메시지는 연임 포기로 보기 어려웠다. 또 손 회장이 1차 후보군인 10명 안팎의 ‘롱리스트’에 포함될 경우 연임 강행이라는 뜻이 된다는 점에서 그가 사퇴를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이틀 전까진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임추위 전날인 17일까지도 이 같은 움직임은 없었다.

이 때문에 당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이어졌다. 아름다운 퇴장을 꿈꾸는 CEO가 굳이 ‘버티기’ 스탠스를 유지하며 선임 과정에 발을 담갔다가 갑작스럽게 사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징계에 불복해 당국과 소송전을 벌인 손 회장의 연임을 두고 금융당국은 노골적으로 사퇴를 압박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얘기 없이 소송 이야기만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편하게 느낀다”면서 손 회장을 향한 사퇴 신호를 거듭 던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3연임을 포기한 조 회장을 거론하며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스럽다”고 치켜세우며 손 회장을 압박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의 압박 카드 된 사모펀드 사태
일련의 사태를 두고 금융당국의 관치 논란이 일고 있지만 내세울 명분은 있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의 최종 책임자들이 CEO 자리를 유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손 회장과 조 회장 모두 펀드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

공교롭게도 CEO 용퇴 시기와 맞물려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부실판매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제재 절차가 속도를 내고 있다. 손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지난 18일 금융위는 사모펀드 부실판매 관련해 그간 잠정 보류했던 제재 안건들의 심의를 다음 달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심의 중단이 결정된 지 약 9개월 만이다.

지난해 12월 손 회장 소송 관련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며 금융당국이 내부통제기준에 대한 기본적인 법리를 확립할 수 있게 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2021년 8월 손 회장이 제기한 DLF 관련 징계 취소 소송에서 재판부는 현행 지배구조법 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는 규정돼있지만 ‘준수의무’는 없어 제재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에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중징계를 받은 펀드 판매사 CEO에 대한 제재 절차도 지난해 3월 이후 중단됐다. 이후 지난해 7월 항소심과 12월 최종심에서도 손 회장이 승소하면서 당국의 제재 확정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DLF 사태 관련 징계취소소송을 제기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3월 1심에서 패소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차이점을 만든 건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이다. 함 회장 소송에서 재판부는 금융사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했더라도 실효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소송 결과가 갈렸지만 금융당국으로선 비로소 ‘사모펀드 제재’를 압박 카드로 쓸 수 있게 됐다. 금융위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내부통제기준이 법규가 의도한 핵심적인 목적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따라 법정사항의 흠결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재제 대상에 오른 금융사 CEO들은 자리에서 물러난 선례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앞서 금감원은 2020년 11월 라임펀드 사태 관련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와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현 부회장)에 대한 문책 경고 제재 조치안을 결정했다. 이듬해 3월엔 옵티머스 펀드 판매 관련해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문책 경고’ 중징계를 내렸다. 만약 향후 회의에서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확정되면 이들은 관련법에 따라 3~5년 동안 금융회사에 취업을 할 수 없다.

일각에선 사모펀드 사태를 앞세워 금융권 CEO를 압박하는 행보가 윤정부 출범 때부터 예견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부활을 예고했고 이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이 원장도 검찰 출신 원장으로 사모펀드 감시체계를 정비해 옵티머스와 라임펀드 사태와 같은 피해를 막겠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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