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공주 '스캔들 PTSD' 앓자…왕실 유례없던 SNS 개설 나선다

하수영 2023. 1. 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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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2월 아키히토 전 일왕의 생일날 마코 전 공주. 당시 19세. AFP=연합뉴스

공식 홈페이지 외에 별도의 소통 채널을 두지 않았던 일본 왕실이 헌정 사상 최초로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개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한편 왕족을 둘러싼 미디어 보도나 '가짜 뉴스'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재팬 타임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왕실의 예산을 관리하는 궁내청은 홍보실 신설 및 직원 증원 등의 내용이 포함된 2023년 예산안을 지난해 내각으로부터 승인받았다. 궁내청은 지난해 말 이런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왕실 SNS'는 신설 예정인 홍보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홍보실 신설은 4월, SNS 개설은 8월로 계획 중이다. 다만 아사히신문은 궁내청 간부들을 인용해 여느 나라 왕족들처럼 개인별로 SNS 계정을 활용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했다.

지난 2017년 약혼을 발표하고 있는 마코 전 공주(오른쪽)와 남편 고무로 게이. AP=연합뉴스

일본 왕실이 SNS 개설을 검토하는 배경엔 2021년 마코 전 공주와 남편 고무로 게이의 ‘결혼 스캔들’이 있다. 재팬 타임스는 “당시 의사소통의 부족이 왕실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왕실 스스로 스캔들에 미흡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해 SNS 개설 등 소통 채널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코 전 공주의 남편인 고무로 게이는 결혼 전부터 모친의 금전 문제 등으로 논란이 많았다. 이 때문에 결혼 반대 여론도 높았고 결혼이 미뤄지기도 했는데, 당시 왕실은 이런 논란에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설령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더라도, 하나를 반박하면 다른 하나는 사실로 보이게 되니 반박하지 않는다'는 게 왕실의 일반적인 기조였다고 한다.

일본 왕실은 평소 구성원들의 일상을 공개하는 등의 소통을 하지 않는 편이다. 왕실 가족의 생일이나 새해 등 특별한 날에만 궁내청을 통해 제한적으로 사진·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소통의 전부다.

하지만 결혼 스캔들로 홍역을 치르면서 마코 전 공주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는 상황에까지 이르자 왕실의 태도가 변했다. 당시 부친인 후미히토 왕세제가 “왕실이 가짜뉴스를 반박하는 기준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SNS 개설 검토는 이런 인식 변화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중론이다.

지난 2018년 루이 왕자 출산 때 윌리엄 당시 왕세손(현 왕세자)과 부인 케이트 미들턴 당시 왕세손빈(현 왕세자빈)이 런던의 세인트매리병원 앞에서 축하하는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英왕실처럼 SNS 소통으로 위기극복”


일본 내부에선 일본 왕실이 영국 왕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왕실은 공식 홈페이지 외에도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통 채널을 여러 개 운영한다. 각각 10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 왕실의 SNS들은 왕실 가족의 근황이 담긴 사진·영상은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찰스 3세 국왕 등 왕실 가족의 생각을 알리는 게시물을 거의 매일 올리고 있다.

영국 왕실도 한때 일본 왕실과 비슷한 고민을 한 적 있다. 1997년 다이애나비 사망 이후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을 때다. 그러나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이젠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다. 일본 학계에선 영국 왕실이 SNS 등 소통 전략으로 이미지 개선에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기미즈카 나오타카 가쿠인대 교수는 “다이애나비 사망 이후 25년간 영국 왕실은 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이런 노력은 최근 해리 왕자가 부인 메건 마클과 함께 왕실에 대한 인종차별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데도 왕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고 분석했다.

일본 왕실도 SNS를 통한 소통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미즈카 교수는 “이미 대중들과 거리도 먼 데다 왕족 수도 줄어들고 있는 왕실이 SNS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지 못하면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일본 내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왕실의 SNS 개설 등에 반대 입장이다. 재팬 타임스에 따르면 이들은 “왕은 신과 같은 존재이므로 국민과 너무 가까워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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