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부캐] 트위드 재킷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최혜선 2023. 1. 2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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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못다 한 일이 있다면...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최혜선 기자]

트위드 재킷을 만들었다.

2022년 초에 연재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연말에는 라운드네크 트위드 재킷을 만들어 입으리라 결심했었다. 내가 상상한 룩의 트위드 재킷에는 블랙 팬츠가 찰떡 궁합이고 그 블랙 팬츠를 맵시 있게 소화하려면 납작배가 필요하니 1년 간 열심히 운동을 해서 몸매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보리라 생각하면서.

트위드는 굵직굵직한 실을 직조하여 만든 천이라 짜임이 성글어서 잘라낸 자리의 실이 잘 풀려버린다. 그래서 재단을 해 놓은 후 얼른 만들지 않고 두면 시접 부분의 실이 풀려버려서 낭패를 보게 된다. 그러니 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시들기 전에 먹어야 하듯이 재단 후에는 올이 풀릴 새라 얼른 옷으로 완성해야 한다(올이 풀려버릴 경우를 대비해서 재단 시에 시접도 넉넉히 두어야 한다).

2022년에 못다 한 작업
 
 트위드재킷
ⓒ 최혜선
 
2022년에는 바느질이라는 취미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어깨와 목이 아파서 치료하느라 한동안 바느질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거북목이 유발한 통증 때문에 바느질을 하려고 생각만 해도 목이 뻣뻣해질 것만 같아서 7월부터 10월까지 단 하나의 옷도 만들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해를 마감할 때가 오자 연초의 결심이 떠올랐다.

'정성을 듬뿍 들인 트위드 재킷을 만들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원래는 안감을 넣는 버전의 트위드 재킷을 만들려고 했는데 패턴을 찾지 못했다. 패턴 정리, 쌓인 원단산맥 정리는 바느질의 즐거움이라는 빛에 따라다니는 숙명과도 같은 그림자다.

난감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결심한 것처럼 1년 내내 잘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마무리는 잘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만 둘까? 잠깐 고민도 했다.

곧 마음을 바꿔먹었다. 순도 100% 완벽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안감을 넣는 패턴 대신 트위드 천으로 좀 더 캐주얼하게 입을 수 있는 패턴을 꺼내들었다. 패턴을 판매하는 분이 입은 모습이 예뻐서 사뒀던 오래된 패턴이다.

보통 패턴을 사면 만드는 방법도 설명되어 있다. 예전에는 설명대로 만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만들고 싶은 방식대로 선택해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시접이 풀리지 않도록 바이어스로 마감을 하기로 정했다.

초크나 수성펜의 자국이 눈에 띄지 않아 바느질을 위한 완성선을 표시하기도 쉽지 않은 트위드의 특성상 완성선은 실표뜨기로 표시했다. 실표뜨기란 말 그대로 실로 떠서 완성선이 어디인지 천 위에 표시를 남기는 방법이다.
 
 실표뜨기엉뚱한 곳을 박아서 뜯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 최혜선
 
자를 대고 쭉 그어서 표시하는 것과는 달리 천을 바닥에 놓은 채로 정확하게 완성선을 따라 홈질을 한다. 전체 완성선에 홈질을 한 후에는 겹쳐진 두 장의 천에 각각 실표가 남도록 천을 벌려가며 가운데를 잘라줘야 한다. 그렇게 표시를 남겨가는 과정에서 한쪽 실이 쑥 뽑혀버리면 완성선이 어디인지 표시했던 흔적도 함께 사라지니 조심조심 그야말로 한땀 한땀 해나가야 하는 작업이다.

재단이 끝난 후에는 시접을 감쌀 바이어스를 재단해야 한다. 옷의 안감으로 쓰이는 얇은 천을 사선 방향 4센치 너비로 잘라서 세로 방향의 모든 시접마다 바이어스를 감싸주어야 하니 그 바이어스를 자르고 잇는 것도 한나절이 걸렸다.

보통의 재킷이 앞판 둘, 뒤판 하나, 소매 두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 재킷은 입었을 때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프린세스 라인에 절개가 있다. 그러다보니 앞판만 해도 네 조각, 뒤판도 네 조각, 소매도 두 장 소매라 양쪽을 합하면 네 조각이다. 재킷의 앞섶과 목둘레를 연결하는 부분을 마무리하기 위한 안단도 바이어스 마감을 할 때 손이 많이 간다. 곡선이기 때문이다.
 
 트위드재킷의 바이어스 시접
ⓒ 최혜선
 
연말 연휴기간 동안 천천히 옷을 완성해갔다. 시접을 감싼 바이어스 천은 얇아서 재단을 하기도 어렵고 다림질을 한다고 납작하게 드러눕지 않아서 바느질을 한 후 바이어스를 잘 싸기도 까다롭다.

그래도 하늘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웅얼웅얼 입으로 읊으며 박아나갔다. 이때 함께 할 드라마는 너무 재미가 있어서 바느질을 멈추게 만들지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 적당하다.(그런 드라마 고르느라 또 고민을 한다는 게 함정.)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

명품 브랜드의 수백만원짜리 트위드 재킷처럼 소름 끼치도록 모든 절개선의 무늬가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옷이 무사히 완성되었다. 옷을 걸어놓고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패턴을 사던 몇 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절개선이 너무 많다고 두려워서 재단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러던 내가 손은 많이 가도 만들기가 어렵지는 않다며 너끈히 만들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 뿌듯했다.

이 재킷은 따뜻한 봄이 오고 이 옷에 잘 맞는 하의를 만들어야 비로소 입을 수 있을 테다. 만들어서 바로 입는 보람도 좋지만 이번 겨울에는 이 옷에 어울릴 하의로 무엇이 좋을까 행복한 궁리하며 보내기로 했다. 뱃살을 없앨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살을 빼지 않아도 코디를 완성해 줄 하의 디자인을 찾는게 먼저일지 정직하고 고통스럽게 몸을 만드는 게 정답일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모르겠을 땐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는 거라고 배웠다.

작년에 결심했다가 결실을 보지 못하고 내버려둔 목표가 있다면 이제라도 코스 중간에서 출발하는 어드밴티지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멈춘 자리에서 툭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해보는 거다. 어차피 작년에도 올해도 그걸 하는 사람은 나니까.

작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나를 구박하지 말고 오히려 작년에 이만큼이라도 해서 올해는 몇 걸음 더 나아간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구나 칭찬해 주자.

《 group 》 워킹맘의 부캐 : http://omn.kr/group/mom_devel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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