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쓰레기로 만든 거 맞아요? 이 사람의 손만 거치면... [제주 사름이 사는 법]

황의봉 2023. 1. 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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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름이 사는 법] 김지환 환경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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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고 문화예술의 향기가 풍성해졌는가 하면, 땅과 바다가 환경파괴로 신음한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4·3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한편으로는 새 공항 건설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천혜의 땅 제주도를 살기 좋은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주 사름(람)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기자말>

[황의봉 기자]

▲ 김지환 작가의 공방 바닷가에서 주워 온 쓰레기를 세척한 재료로 가득차 있다.
ⓒ 황의봉
 
바닷가의 온갖 쓰레기들이 이 사람 손을 거치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변신한다. 이 놀라운 솜씨의 주인공은 환경예술가 김지환 작가.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그의 공방에 들어서자 폐목재와 스티로폼, 부표, 쇳조각, 불에 탄 플라스틱 등 '쓰레기 재료'들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꽉 메우고 있다.

이 쓰레기들이 예술작품으로 태어나다니, 그리고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니! 제주의 바다건 뭍이건 날이 갈수록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는 이때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다.

김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업사이클링이라고 한다. 재활용을 의미하는 리사이클을 업그레이드하고 디자인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이다. 그의 이색적인 작업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업사이클링 체험 수업을 요청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바다쓰기'라는 사업자등록까지 했다. 바다 쓰레기로 뭔가를 만드는 일에 어울린다고 해서 만든 이름인데, 요즘은 브랜드명으로 자리 잡았다.

제주에 정착한 지 10년 차가 되는 김지환 작가가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게 된 계기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인천에서 미술교육과를 나오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하루 3시간이나 고달픈 출퇴근에 시달리다 보니 도시에서 벗어나 좀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멀리 제주로 가자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처음 한 인터넷 신문에서 6개월 정도 기자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방과 후 미술 수업을 맡게 됐습니다. 어느 날 한 초등학생이 '선생님도 화가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화가가 아니라고 했더니 '미술 가르치는 사람이 왜 화가가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바닷가에 떠밀려 온 쓰레기를 만나게 됐는데, 이런 것들로 뭘 그냥 뚝딱뚝딱 만들면 돈도 안 들고 재미있겠다 싶어 일주일에 하나 정도 작은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죠. 이걸로 돈을 벌겠다거나 먹고 살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한 공방에서 하는 플리마켓에 가지고 나갔는데, 어떤 분이 작품이 너무 좋다며 사고 싶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업사이클링 체험 교육
 
▲ 김지환 작가 바닷가의 온갖 쓰레기가 이 사람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예술작품이 된다.
ⓒ 황의봉
-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려면 재료인 바다 쓰레기를 잘 골라와야 할 것 같은데요. 주로 어떤 것들을 가져다 쓰고 있나요?

"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죠. 처음엔 바닷가에 떠밀려온 것들을 다 주우려고 했어요. 그물 부표 목재류 유리 조각 쇳덩어리 등등 다양한데, 지금은 수업에 필요한 쓰레기가 어느 바닷가에 있는지 대충 아니까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가져옵니다."

- 바다 쓰레기를 오랜 기간 주워 오셨는데, 현재 제주 바다의 쓰레기 상황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쓰레기양이 늘어나고 다양화하고 있는데,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의 증가가 눈에 띕니다. 바다마다 쓰레기 종류도 조금 차이가 나지요. 해양수산부에서 해양쓰레기를 조사할 때 제가 제주도 조사요원으로 수년간 활동을 하면서 제주 해안을 수십 바퀴 돌아봐서 웬만한 곳은 다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해안지형이 안쪽으로 깎여 있으면 그쪽으로 쓰레기가 몰립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작은 돌 알맹이가 많으면 마모된 유리 조각 같은 작은 쓰레기들이 많고, 거친 돌들이 많은 곳에는 유목이나 큼지막한 쓰레기들이 많이 보입니다. 주택가 부근 해안에는 플라스틱이나 일반 생활 쓰레기가 많지만, 배가 정박하는 항구나 포구에는 배에서 버린 폐타이어 같은 게 많습니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플라스틱 페트병이나 일회용 컵들이 많고요."

김 작가는 개인전은 물론 다양한 전시회에 열심히 출품을 해왔다. 이런 작품활동뿐 아니라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업사이클링 체험 교육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환경 관련 수업이나 진로 체험 수업의 하나로, 혹은 환경지도자 양성과정이나 공무원 교육과정의 프로그램에 초청돼 업사이클링을 알리고 있다.

업사이클링 체험 대상은 70%가 초등학생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바다 쓰레기로 작은 집과 사람 인형, 동물 인형, 캔들 받침, 시계나 조명 혹은 액자 등을 만드는데 제법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작품들을 이용해 그림책 작업도 했고, 출판까지 한 일도 있다고 한다. 바다 쓰레기가 어떻게 그림책 출판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 쓰레기가 그림책으로 변신하다 아이들이 만든 업사이클링 작품들을 촬영한 후 김 작가가 스토리를 입혀 출판한 그림책
ⓒ 김지환
 
"바다 쓰레기를 이용해서 저와 아이들이 캐릭터를 만듭니다. 그리고 제가 이 캐릭터 작품들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출판사에 편집을 의뢰하면 정식으로 책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책에 나오는 모든 그림은 어린이들이 업사이클링 작업으로 만든 캐릭터 작품이죠. 지금까지 3권의 그림책을 냈는데, 지금 준비 중인 책이 2권 더 있습니다.

사실 지금 하는 이 작업을 나이가 많이 들어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게 육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쓰레기 재료 수거하고 다듬고 목공 작업도 하려면 힘들어서 평생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도 했는데, 제가 찾은 방법이 그림책 작가입니다. 얼마 전 바다쓰기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등록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업사이클링 아트 체험으로 바다쓰기가 성장해왔다면 앞으로는 만들어진 작품을 그림책으로 한 단계 더 진전시키고 싶습니다."

- 어린이들이 업사이클링 체험 수업을 하고 나면 반응은 어떻습니까?

"너무나 좋아하죠. 왜냐면 저는 똑같은 재료를 준비하지 않아요. 똑같은 재료, 똑같은 색상, 똑같은 모양으로 작업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서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한번 체험을 시작하면 아이들이 무척 흥미를 갖고 참여합니다. 관심도도 높고 만족도도 높아서 계속 연락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업사이클링 수업을 통해 예술에 대한 깨달음까지는 몰라도 쓸모없다고 버리는 것들도 어쩌면 또 다른 뭔가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아티스트와 환경교육자 사이에서
 
▲ 고래와 바닷속 친구들 제주관광대 부속 어린이집 아이들이 업사이클링 체험 수업을 통해 만든 작품
ⓒ 김지환
- 바다에서 구한 각종 재료로 키트를 만들어 출시하기도 했는데, 이걸 구입해서 스스로 업사이클링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이것 역시 바다에서 얻은 것들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규격화한 것입니다. 현재 팸플릿에 소개하고 있는 키트 종류가 다육식물 나무 화분(폐목재, 다육식물 활용), 벽걸이 화병 받침(폐목재, 유리병 등), 플라스틱 꽃(페트병, 빨대, 종이 철사), 액자형 단순 조명(폐목재, 조명전기재료) 등 46종인데, 사실 무궁무진하게 키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페트병만 가지고도 100가지 키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키트엔 만드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설명서에 QR코드로 심어줍니다. 가격은 대개가 1~2만 원 안팎이고요. 교육기관이나 환경 관련 단체 등에서 구입문의가 오고 있고, 특히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활발해지면서, 이 키트 상품이 새로운 업사이클링 교육콘텐츠로 떠오른 것이지요."

- 어린이들 체험 수업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업사이클링 작업을 할 수 있으면 환경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례를 들어볼까요?

"업사이클링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면 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거죠. 음료를 마시고 버리는 페트병을 활용하면 칫솔걸이나 연필꽂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왜 디아이와이(DIY)라는 말 있잖습니까. 가구 같은 제품의 재료들을 사서 스스로 조립해 만드는 것인데, 저는 이 말을 디아이업(DIUP)이라는 단어로 만들어 여기저기 전파하고 다닙니다. DIY는 그냥 멀쩡한 재료들을 사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만, DIUP은 버려지는 재료들을 이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겁니다."

김지환 작가는 안타깝지만, 자신이 전업 작가는 아니라고 한다. 창작만 해서 먹고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에너지 가운데 창작에 쏟아붓는 비중은 10% 정도밖에 안 되고 교육에 더 치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요즘 바다 쓰레기를 줍는 행위, 즉 비치코밍(beach combing) 그 자체를 수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가 환경교육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엿보게 한다. 아티스트와 환경교육자 사이에서 그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전시를 30회 정도는 한 것 같아요. 2016년에는 일본에서 초대전을 하기도 했고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업사이클링으로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에요. 대부분 업사이클링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제품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로 시스템이 굴러가지만 저는 그보다는 교육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티스트로서 환경문제를 좀 더 다르게, 창의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교육에 관심이 크고, 업사이클링 전시 의뢰가 들어오면 1년에 몇 번씩이라도 거부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환경문제를 좀 더 창의적으로
 
▲ 작은 돌덩이에 달라붙은 파이로 플라스틱 작품들 파이로 플라스틱은 해안가의 불법 소각과정에서 발생한다. 고온에 녹아 흘러내린 플라스틱은 바위에 달라붙고 다시 떨어져 미세플라스틱의 원인이 되고 있다.
ⓒ 김지환
- 2017년에 해양문화교육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하셨는데, 이 단체 역시 환경문제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만든 것인가요?

"해양문화나 해양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 5명이 뜻을 모아 만든 협동조합입니다. 해양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좀 더 높이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보자 해서 만들었죠. 그린피스 항해사, 무인도 탐험가, 세계의 섬 200여 군데를 다니는 섬 전문가, 잠수 전문가 그리고 해양쓰레기로 환경예술 하는 저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제주도 한림 앞바다에 있는 비양도에 들어가서 업사이클링 교육을 하는 것이었는데, 제주도의 지원을 받아서 해양쓰레기를 이용한 체험 수업, 환경정화 활동, 영화제 등을 한 3년 정도 했습니다."

- 앞으로의 구상이랄까,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주도의 관광지 중에는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제주답지 않은 곳들이 많아요. 이런 곳보다는 좀 더 친환경적이고 제주다운 그런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찾아오게끔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업사이클링 체험도 하고, 작품 판매도 하고 공연도 할 수 있는, 나아가 숙박까지 할 수 있는 융복합시설이 들어서면 어떨까 합니다. 이런 건물마저도 버려진 재료들을 이용해 지을 수 있다면 더욱 매력적이겠지요.

이게 한 두 사람의 뜻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여럿이 뜻을 모으고 기관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죠. 이런 곳에서 환경교육을 좀 더 재미있게 특별나게 해보고 싶습니다. 그 첫 시도로 감귤작목반 건물이었던 이 공방을 임대해 업사이클링 체험 공간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제주도민이나 여행객 누구나 환경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김지환 작가는 환경교육을 중시하면서도 자신을 환경운동가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환경문제를 좀 더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의 업사이클링 아트가 제주에서 화려하게 꽃 피우길 기대해본다.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이 환경 위기에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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