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생 길자씨' 전시 보다가 떠오른 부모님...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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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정 기자]
▲ <예소아카이브> 무인 전시관 |
ⓒ 김준정 |
'예소아카이브'는 충남 서천에 있는 아담한 무인 전시관이다. 이 곳을 내가 찾았을 때는 <1943년생 길자의 시계꽃>이 전시 중이었다. 말 그대로 1943년생 길자 님의 첫 아이 배냇저고리부터 성장하는 아이 모습, 그리고 점차 나이 들어가는 길자 님이 담긴 사진, 손주들의 편지가 그곳에 있었다.
▲ <1943년생 길자의 시계꽃> |
ⓒ 김준정 |
길자 님은 전시기간 중 영면하셨고, 생전에 친구들과 이 곳을 관람하며 기뻐하셨다고 관장님이 말해주었다. 한 사람의 생을 옮겨오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겠지만, 그 과정이 가족과 당사자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많은 이의 삶이 섞여 있다. 가족 저마다 추억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길자 님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타인의 삶을 보다가 떠오른 나의 부모님
관람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부모님이 생각났다. 나의 아빠의 삶을 전시로 기록한다면 어떤 것이 채워질까. 쇳덩이, 기계, 공장, 기름때 묻은 장갑부터 머릿 속에 그려졌다. 아빠는 거래처 공장에서 소주병 크기의 쇳덩이를 박스에 담아와 양쪽에 구멍을 내는 드릴 가공을 오래 해왔다. 지난 추석, 어쩌면 나는 나를 이제껏 먹이고 키운 것이 이 쇳덩이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 어머니는 타고난 성정이 천진한 면이 있어서 생각하면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얼굴부터 떠오르지만, 아빠는 가끔은 예민하고 불안도가 큰 분이라 좋은 일 앞에서도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에 하나 있을 위험을 기어코 찾아내는 사람, 이게 바로 내가 아빠를 떠올리면 자꾸 눈물이 나는 이유다.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빡빡하고 힘겹게 살았던 사람이자, 그 와중에도 감수성이 풍부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다. 기타를 배우고 가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 맵시 좋은 옷을 입고 춤추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아빠는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기타를 자식에게 배우게 했고, 테니스를 치게 했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자식이 대신하게 했던 사람. 그렇게 하니 행복했느냐고, 언젠가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아빠는 행복하다고 답하지는 않았다. 대신 후회는 없다고, 다시 산다 해도 똑같이 했을 거라고 말했다.
든든한 아버지가 되는 걸 신념으로 살았던 사람은 그 일을 해냈지만, 나는 아빠를 바라보면서 '산다는 게 뭘까, 행복은 뭘까, 사랑은 뭘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나한테 아빠는 많은 걸 묻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다. 힘들어도 계속 가는 산처럼. 내게 아빠는 넘어가고 부대끼면서 어떻게든 이해해야만 하는 존재다.
전시회를 보다가 시작된 생각이니, 전시가 나한테 '열쇠'를 준 것도 같다. 그 열쇠로 나는 아빠의 방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너무 깊어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희미한 빛을 따라가 결국 아빠가 찾으려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그토록 무참히 스스로를 괴롭히며 얻으려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작은 앨범을 샀다. 그 안에 아빠의 일상을 담을 생각이다. 그리고 물어보려고 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 앞으로 먹어보고 싶은 음식, 계속하고 싶은 일과 해보고 싶은 일. 내가 찍은 사진과 적은 글을 아빠가 가끔 펼쳐봤으면 좋겠다.
▲ 앨범에 넣을 부모님 사진 |
ⓒ 김준정 |
'살면서 처음 해본 일'과 '엄마의 장점' 적기를 하자고 아빠에게 말해볼 생각이다. 공익 방송과 다른 현실판 가족에게 이 계획이 결코 순조롭지는 않겠지만, 나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임할 생각이다. 아빠 자신도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고, 아빠 또한 자신에게 좋은 것을 하는 게 얼마나 기쁜지 알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빠의 삶을 전시하는 날이 온다면, 나 또한 '김길수 전시관'을 지키며 심심한 농담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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