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부서진 사체가 곳곳에…새 788만마리 비명횡사한 무덤
전익진 2023. 1. 21. 15:01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 왕복 4차선 도로변에선 머리가 부서진 작은 새 한 마리의 사체가 금세 눈에 띄었다. 20여m 떨어진 곳 나뭇가지에도 작은 새 한 마리의 사체가 걸려 있었다. 모두 이 도로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비명횡사한 새들이다. 야산과 주택이 드문드문 들어선 밭 사이를 지나는 이 도로 위엔 1m 정도 높이의 콘크리트 가드레일 위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이 약 2㎞에 걸쳐 이어져 있다.
현장을 안내한 연천 생태연구자 손은기씨는 “길가 편 야트막한 산기슭 숲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새들이 먹이터인 도로 건너편 논밭과 하천으로 비행해 내려오면서 유리로 된 방음벽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부딪히면서 변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손씨는 “인적이 드물고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민통선 주변 접경지역은 희귀 조류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며 “연천 접경지역 도로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 아래에서 지난 4년간 수십여건의 조류 출동사고를 관찰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명 방음벽이 ‘새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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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매·큰소쩍새 등 천연기념물도 희생
현장을 함께 방문한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대표는 “이곳 외에도 투명 방음벽이 설치된 37번 국도 군남∼장남 구간 등지의 연천지역 도로변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희생된 새들 가운데는 새매(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천연기념물 제323-4호), 참매(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천연기념물 제323-1호), 큰소쩍새(천연기념물 제324-7호) 등 천연기념물과 청호반새(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등 희귀조류도 많이 포함돼 있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환경부 의뢰로 국립생태원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연간 약 788만 마리의 새가 인공구조물에 부딪혀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도로 주변 투명 방음벽뿐 아니라 도심 속 빌딩이나 건물 유리창에도 조류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류는 빛 반사가 심한 오후 시간에 유리창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부딪쳐 뇌진탕 등 상처를 입어 죽거나 다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새들이 높이 5㎝, 너비 10㎝의 좁은 공간을 통과해서 날아가지 않는 점을 고려해 점이나 선 모양으로 된 ‘충돌 방지용 스티커’ 부착 등 대책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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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는 “생태계의 보고인 연천군의 자연생태 보전과 야생생물 복지를 위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며 “연천군에서도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조례 제정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천군 관계자는 “도로변 투명 방음벽 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도로별 건설 주체가 맡고 있다”며 “투명 방음벽 현황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윤무부 교수 “조례 제정 등 지자체 적극적 대책 필요”
윤무부(조류학 박사) 경희대 명예교수는 “생태계의 보고인 연천군의 자연생태 보전과 야생생물 복지를 위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며 “연천군에서도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조례 제정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천군 관계자는 “도로변 투명 방음벽 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도로별 건설 주체가 맡고 있다”며 “투명 방음벽 현황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이런 문제 해소를 위해 지난 2021년 7월 14일 ‘경기도 야생조류 충돌 예방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조례 제정 후 수원, 고양, 하남, 양주 등 4개 시 5곳 투명 방음벽과 도심 건축물 유리창을 대상으로 스티커 부착 등 조류 충돌 예방대책을 시범적으로 실시한 결과 효과가 있다고 분석됐다”며 “이에 따라 올해 도내 전체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한 뒤 내년부터 관련 예산 확보 후 대책 시행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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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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