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TV야, 작품이야…삼성·LG ‘아트 플랫폼’ 띄운다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는 프라이빗 이벤트를 기획한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일단 해당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과 계약해 작품을 일정 기간 대여한다. 작품을 배송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운송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작품이라면 항공 운반도 필요하다. 식당 벽에 걸 때는 온·습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며 관람 중 작품이 훼손될 수 있으니 특수한 유리벽 등의 장치도 필요하다. 도난 방지를 위해서 보안요원도 고용해야 한다.
디지털 아트를 통해 이 같은 번거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 디지털 액자처럼 생긴 TV 한 대만 있다면 대체불가토큰(NFT)로 어떤 명화도 빌리는 세상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고흐의 밤, 다른 하루는 피카소의 밤처럼 언제든 다양한 테마의 이벤트도 가능해진다. 김상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장은 “앞으로 무조건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며 “이를 대비해 삼성은 아트 플랫폼 등 발판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TV 시장이 판매 부진을 겪는 가운데 가전 업체들이 아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TV 시장의 매출은 47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해 12.5% 감소했다. 코로나19 기간 중 펜트업(보복) 소비가 사라지면서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가전 업체들은 콘텐트의 힘으로 타개하려는데, 그중에서도 아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가전 업계의 이러한 분위기는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3’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기업들은 TV를 활용해 갤러리처럼 전시장을 꾸몄다. 삼성전자는 메인 전시장과 별도로 따로 차린 프라이빗 부스에 자사의 라이프스타일 TV ‘더 프레임’을 여러 대 전시했다. 빛 반사를 최소화한 매트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진짜 액자에 걸린 그림처럼 표현하는 기술도 뽐냈다. 유화 그림에서 붓 터치가 주는 질감까지 매트 디스플레이에 그대로 표현됐다. 사과 정물화를 본 관람객들은 그림인지 TV인지 착각해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액자 같은 금빛 프레임부터 메탈, 우드 소재에 다양한 컬러까지 20여 종의 프레임도 전시했다.
LG전자 역시 부스 한쪽을 갤러리처럼 꾸며 놨다. ‘아트 오브제 디자인’을 적용해 예술 작품이 놓인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차별화한 공간을 연출했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TV도 볼 수 있다. 중국 기업인 하이센스·TCL도 삼성전자, LG전자 제품과 비슷한 액자형 TV를 전시해놓고 예술작품을 띄워놓았다.
디지털 아트 시장이 주목을 받는 데에는 예술가들의 인식과 환경 변화가 한몫했다. 과거에는 디지털 아트가 예술가의 수익으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오히려 작품의 복사가 쉽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고 무단으로 복제할 수 없도록 만든 NFT의 등장으로 디지털 예술 작품의 진위 판별이 가능해지고 수익으로 연결도 쉬워졌다.
삼성전자 더 프레임 TV의 구독 플랫폼인 아트스토어에는 700명 넘는 아티스트들이 협업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영국 테이트 모던 등 전 세계 50여 개 미술관과 박물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총 작품 수는 2000여 점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117개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가입자 수가 매년 평균 150% 이상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도 지난해 9월 ‘LG 아트랩’을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미국은 세계 예술품의 50% 이상이 거래되는 가장 큰 시장이다. LG 아트랩은 NFT 예술 작품을 감상부터 거래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거래 플랫폼이다. 지난 2020년 이후 출시된 LG 스마트 TV(웹OS 5.0 이상)와 PC, 스마트폰 등에서 이용할 수 있다. 구매한 NFT 예술 작품들은 집 안 TV로 감상하거나 LG 아트랩 내 마켓플레이스에 등록해 판매도 가능하다. LG 아트랩은 올해 CES 혁신상을 받았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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