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종갓집 맏며느리’ 전략 짜는 나경원…연휴 뒤 출전하나?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3·8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잠행 중이던 나경원 전 의원은 20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지난 1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서 해임된 게 “윤석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대통령의 결정이 맞다”는 직격탄을 맞은 지 사흘 만이다.
나 전 의원은 이날 배포한 입장문에서 “최근 저의 발언, 특히 저에 대한 해임 결정이 대통령님 본의가 아닐 것이라 말씀드린 것은 제 불찰”이라며 “논란으로 대통령님께 누(累)가 된 점, 윤석열 대통령님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당원 여러분께도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성공적인 윤석열 정부와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민의힘이 되는 그 길을, 당원동지 여러분과 늘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날 밤 자택 앞에서 만난 취재진에겐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께서 많이 걱정하신 부분이 있어서 입장을 냈다”며 입장문과 같은 내용의 사과 표명을 거듭했다. 출마 여부에 대해선 “충분히 더 숙고하고 말씀드리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전날 취재진을 만났을 때도 출마 여부에 관한 질문에 “며칠간 제 지난 정치 여정에 관해 생각해보고 뒤돌아보고 있다”고만 답했다.
설 연휴 직전에 나온 나 전 의원의 사과는 ‘부채 탕감’ 저출산 아이디어 논란으로 시작된 대통령실과의 갈등을 풀어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친윤계가 덧씌운 반윤(反尹) 프레임이 좀처럼 깨지지 않자 설 연휴 동안 지지층의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나 전 의원은 설 연휴가 끝나는 24일까지 공개 행보를 자제하기로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연휴 전에 출마를 확정짓고 본격 행보에 나서는 게 유리하지만, 여권 핵심부와 충돌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전당대회 행보를 서두를 때가 아니라고 판한 것이다. 나 전 의원도 20일 취재진에게 “특별히 (공개 일정) 계획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있다”며 “대부분 비공개 일정이 있다”고 했다.
신중한 나 전 의원 본인과 달리 주변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나 전 의원을 돕고 있는 박종희 전 의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 전 의원이) 여전히 전의에 불타 있다”며 “설 연휴를 조용히 지내고, 보수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전당대회) 출정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나 전 의원 측 관계자도 “친윤계의 집중포화 대상이 된 만큼 숨고를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연휴 동안 나 전 의원은 머리를 식히며 선거 전략을 짤 것”이라고 말했다.
실무진을 중심으로 선거 전략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오가고 있다. 나 전 의원 측은 “나 전 의원의 보수 정당 활동 이력과 문재인 정부에 맞서 싸운 투쟁력을 강조할 것”이라며 “‘종갓집 맏며느리’ 또는 ‘보수의 여전사’ 이미지를 앞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한순간에 반윤으로 몰리는 건 너무 억울하다”며 “20년 넘게 보수 진영을 지키며 진보 진영과 싸운 나 전 의원의 진심을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도 지난 16일 “저는 한 번도 당을 떠나본 적 없는 보수의 원류”라고 강조했다. 판사 출신인 그는 2002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특보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21년째 보수 진영에서 활동하고 있다. 4선 국회의원을 거치며 대변인·최고위원 등 핵심 당직을 지냈고, 2011년 보수 진영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경험이 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조국 사태’와 ‘패스트트랙 충돌 국면’에서 당을 이끌었다. 2019년 3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빗댄 외신 기사를 인용했다가 더불어민주당과 충돌하기도 했다.
친윤계로부터 강력한 비토를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 전 의원 측은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서도 당의 화합 도모를 위해 네거티브는 지양하겠다”는 입장이다. 캠프 사무실 역시 차리지 않기로 했다. 한 관계자는 “나 전 의원의 출마로 당내 갈등이 빚어지는 모습은 없었으면 한다”며 “국민과 당원에 실질적인 메시지와 비전을 발표하는 정책 선거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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