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길어지는 부진, 슬럼프 아닌 에이징 커브인가
[이준목 기자]
▲ 손흥민 마스크 벗고 풀타임… 토트넘, 아스널전서 완패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프리미어리그(EPL) 20라운드 아스널전에서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31·오른쪽)의 슈팅을 아스널의 골키퍼 에런 램스데일이 막아내고 있다. 이날 손흥민은 선발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아스널에 0-2로 패하며 리그 5위에 머물렀다. |
ⓒ AFP=연합뉴스 |
'한국축구의 자존심' 손흥민의 부진이 길어지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제는 일시적인 슬럼프를 넘어서 에이징커브(쇠퇴기)에 접어든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자아낸다.
불과 반 년 전인 지난 2021~2022시즌만 해도 EPL에서 35경기 동안 23골을 터뜨리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득점왕'을 차지해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손흥민이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총 25경기에서 6골 2도움, 리그로만 국한하면 18경기에서 4골에 그치고 있다. 지금같은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부상없이 남은 시즌을 완주한다고 해도 두 자릿수 득점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10년간 EPL에서 역대 득점왕을 차지한 선수들을 살펴봐도 손흥민보다 하락폭이 큰 선수는 없다. 정확히 10년 전인 2012-2013시즌 로빈 반 페르시(맨유)가 전 시즌 26골로 득점왕을 차지했으나 해당 시즌에는 부상이 겹쳐 12골로 골수가 반토막 이상 났던 게 가장 나빴던 기록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의 올시즌 경기당 득점지표는 반 페르시보다도 더 최악이다.
득점왕에 올랐다는 자체가 보통 해당 선수의 커리어 평균을 훨씬 넘은 경우가 많기에, 다음 시즌 어느 정도 득점 하락은 감수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팀 동료 해리 케인(2015-2016시즌 29골, 2016-2017시즌 30골)이나 오바메양(당시 아스널, 2018-2019시즌. 2019-2020시즌 22골)처럼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거나 더 많은 골을 넣은 사례도 있다. 지난 시즌 23골로 손흥민과 공동 득점왕에 올랐던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역시 올시즌 득점이 크게 하락했지만, 7골(공동 9위)로 손흥민보다는 낫다.
단순한 득점수치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기복이다. 손흥민이 올시즌 득점을 기록한 경기는 총 3경기(리그 2경기)에 불과하다. 레스터시티와 리그전 해트트릭과 프랑크푸르트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전 멀티골로 5골을 몰아쳤고, 나머지 경기에서는 팰리스전에서 기록한 1골이 전부였다. 몇몇 경기에서는 몰아치기로 클래스를 증명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상승세를 꾸준히 이어가지 못하고 다시 골침묵이 길어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손흥민 개인의 부진보다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전술 문제와 팀동료들의 지원 부족에 초점을 맞춘 시각이 우세했다. 콘테 감독의 수비적이고 경직된 전술 운용, 손흥민에 공격 외에도 수비가담-플레이메이킹 등 많은 체력적 부담을 요구한다는 것. 콘테의 애제자이자 손흥민과 왼쪽 측면 라인에서 공존해야 하는 윙백 이반 페리시치와의 부조화 문제 등이 지적받았다.
여기에 지난해 경기 중 안와골절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발생하며 수술대에 오른 이후 플레이스타일이 크게 위축되었고, 연말에는 국가대표팀에서 카타르월드컵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오며 체력적 부담도 컸다.
하지만 최근 해외 언론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감안해도 손흥민의 활약이 예전같지 않다며 기량 하락에 대한 의구심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손흥민은 올시즌 득점력 외에도 경기에 영향력을 미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 가장 최근 경기이자 토트넘이 충격적인 2-4 역전패를 당했던 맨체스터 시티전은 손흥민의 현 주소를 명확하게 보여준 경기였다는 평가다.
그동안 맨시티를 상대로 여러번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손흥민이지만, 이날은 에메르송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한 장면 말고는 위협적인 장면이 전무했다. 키패스나 돌파 성공률도 0회였다. 장기인 역습 상황에서는 부정확한 볼컨트롤으로 상대의 한 발 빠른 태클에 저지당했다.
문제는 최근 이런 장면이 맨시티전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상대 뒷공간이 열렸을 때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로 침투하여 마무리하는 게 손흥민의 주특기인데 이를 간파한 상대팀들은 이제 손흥민이 침투하기 전에 공을 연결하는 토트넘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손흥민도 부상 이후 적극적인 몸싸움이나 볼경합을 기피하는 성향이 더 심해졌고 조급함과 자신감 하락까지 겹쳐 볼컨트롤에서 부적절한 실수가 늘어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CBS스포츠'는 지난 20일 토트넘-맨시티전을 분석하여 손흥민의 부진이 신체 노쇠화로 인해 기량 쇠퇴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전반 24분 역습상황에서 손흥민이 맨시티 잭 그릴리시에게 볼을 빼앗긴 장면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손흥민이 더 이상 스피드로 적진을 휘젓는 민첩합이 사라지고, 볼터치와 패스 등에서 정교하지 못한 실수가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손흥민이 연결동작에서 최근 생각이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며 심리적인 문제도 거론했다. CBS스포츠는 콘테 감독 체제에서 부동의 주전 측면 공격수였던 손흥민의 존재가 지금은 오히려 팀에 방해가 되고 있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손흥민도 어느덧 만 30세를 훌쩍 넘겼다. 손흥민의 주포지션인 윙어는 다른 포지션에 비하여 스피드와 운동능력의 비중이 더 높다. 세계적인 윙어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신체능력의 쇠퇴로 빠르게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축구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호날두나 메시도 커리어 초반에는 윙어로서 활약했으나 나이를 먹어가며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변했다. 포지션상 측면이나 2선에 위치하더라도 실질적인 플레이는 중앙 지향적으로 움직이며 체력소모를 줄이고 최전방에서의 마무리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서, 3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세계적인 공격수로 장수할 수 있었다.
손흥민에게도 큰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선수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선수를 활용하는 감독의 전술과 선수관리, 동료들의 지원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손흥민은 설연휴 막바지인 24일 풀럼전에서 다시 한번 골사냥에 도전한다. 나란히 침체에 빠진 손흥민과 토트넘이 어떤 해법을 찾아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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