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앞둔 20일 고속도로...벤츠 차주 기죽게 한 제네시스 정체
설 연휴를 앞둔 20일 오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한 회색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이 버스전용차로를 달려나가자, 2차선에 있던 흰 제네시스 차량이 앞을 막아섰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제네시스 차량 뒷유리에 빨강·파란색 경광등이 켜졌다. 차량 뒤 전광판에 ‘암행’ ‘경찰’ 문구가 떴다. 경기남부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제1지구대가 운용하는 암행순찰차였다.
암행차를 운전하던 정상민(41) 경장이 창문을 내리고 왼팔을 밖으로 내밀어 아래위로 흔들었다. ‘따라오라’는 수신호였다. 암행차와 벤츠 차량은 고속도로 졸음 쉼터에 멈춰섰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암행팀장 이강구(58) 경감이 차에서 내렸다. 경찰 형광 파카를 입은 채였다.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 중입니다. 다음부터 그러지 마시고 안전히 가세요.” 면허증을 받아든 이 팀장의 말에 벤츠 차량 운전자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이렌 안 울려도…과속 차량 ‘찰칵’
약 30분 뒤, 평택~화성 고속도로를 달리던 암행차 앞으로 한 흰색 르노코리아 SM3 차량이 시속 122㎞로 질주했다. 제한속도는 시속 100㎞였다. 정 경장이 이번엔 사이렌을 울리지도, 경광등을 켜지도 않았다. 해당 차량이 암행차를 지나가는 순간, ‘찰칵’ ‘띠링’ 소리와 함께 대시보드 위에 설치된 탑재형 과속단속 장비가 자동으로 해당 차량을 촬영했다. 그 아래 놓인 태블릿엔 위반 시각과 위반 속도, 위도와 경도, 위반 차량 번호, 단속 차량 이미지 6개가 바로 표시됐다. 과속 단속 장비가 순식간에 6번 촬영을 한 거였다. 이 팀장은 “(경광등은) 차량을 안전지대로 유도할 때나, 전용차로로 갈 때 주로 켠다”며 “단속 자료는 무인단속실에 보내 영상 판독을 해 (해당) 운전자에게 보낸다”고 설명했다.
시범도입 당시 경찰이 암행차로 선택한 차종은 경찰청에서 경호용으로 쓰던 검은색 현대 YF 쏘나타였다. 하지만 이후 “검은색 쏘나타만 피하면 된다”는 소문이 운전자들 사이에서 퍼지자, 경찰은 그랜저·스팅어 등 다양한 차종을 암행차로 도입하고 흰색, 파란색 등 여러 색을 암행차에 입혀 왔다. 최근엔 암행차를 목격한 운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암행차 차량 번호를 공유하기도 해, 주기적으로 차량 번호를 바꾸기도 한다.
빨라지는 암행차…‘제로백 5초대’ 제네시스도 투입
암행차는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일례로 시범도입 당시 쓰였던 YF 쏘나타의 배기량은 1999cc에 불과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기까지 10초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기자가 이날 탑승해 본 암행차인 제네시스 G70 3.3T는 3.3리터짜리 V형 6기통 엔진이 탑재돼 배기량이 3342cc에 달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엔 채 5초가 걸리지 않았다. 차량 성능이 대체로 좋아진 데다가, 수입 스포츠카 등의 과속 사례가 늘면서 더 빠른 차들이 암행차로 채택돼 왔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순찰대에서 14년을 근무한 이강구 팀장은 “현재 암행차는 주로 고속 주행이 가능한 3000cc 이상의 고배기량 차량이 주종”이라고 말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별도의 개조는 하지 않는다.
경찰은 암행차에 설치한 탑재형 과속 단속 장비 개선 작업을 이어가는 한편, 추후 고성능 전기차를 암행순찰차로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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