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에게 환희와 아픔 선물한 WBC, 이번에는?
세계 야구 최강을 가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돌아왔다. WBC는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하는 유일한 대회다. 3월 8일 미국, 일본, 대만에서 열리는 1라운드를 시작으로 3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WBC는 2000년대 초반 추락하던 KBO리그 인기를 살린 대회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두 나서 국제 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경쟁력을 뽐냈다. 그러나 최근 두 번의 대회에선 실망스러운 결과를 냈다. 한국 야구에게 환희와 실망을 모두 선물한 네 번의 대회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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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이승엽, 이종범이 함께 일군 4강
WBC는 MLB 사무국과 MLB 선수노조가 주도해 만든 대회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월드컵과 달리 IBAF(국제야구연맹,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의 전신)가 여는 야구 월드컵에는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되자 MLB는 야구 인기를 위해 WBC를 창설한다.
눈에 띄게 야구 인기가 떨어지고 있던 한국은 WBC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김재박, 선동열, 류중일, 조범현, 유지현 등 프로 팀 감독과 코치들이 스태프로 참여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소속이었던 박찬호를 비롯해 김병현, 서재응, 봉중근, 김선우, 최희섭, 구대성 등 메이저리거만 7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국민타자' 이승엽이 합류했다. 국내파도 이종범, 김동주, 이병규, 손민한, 정대현 등 최정예로 꾸렸다.
1라운드에서 박찬호를 마무리로 기용한 김인식호는 대만과 중국, 일본을 차례로 연파했다. 특히 일본과 최종전에선 '국민 우익수' 이진영의 호수비가 나온 데 이어 1-2로 뒤진 8회 초 이승엽이 역전 투런포를 터트려 역전승했다. 나중엔 다소 왜곡된 것이 밝혀졌지만 '30년 발언'을 했던 스즈키 이치로를 박찬호가 잡아내는 장면도 일품이었다.
한국은 2라운드에서 승승장구했다. 선발 서재응의 호투로 멕시코를 꺾은데 이어 미국까지 제압했다. 야구 종주국 미국은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 치퍼 존스, 켄 그리피 주니어 등 올스타 라인업을 꾸렸지만 고개를 숙였다. 3차전에선 8회 이종범의 2타점 적시타가 터지면서 다시 일본을 2-1로 이겼다.
그러나 일본과 세 번째 대결에선 웃지 못했다. 준결승에서 5회까지 0-0으로 팽팽하게 맞섰으나 6회에 대량실점하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일본은 한국에게 두 번이나 지고도 결승까지 올라가 초대 우승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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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돔 마운드에 꽂은 태극기 신화
한국 야구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다. 이대호, 김태균, 정근우, 오승환 등 2001년 세계청소년 우승 멤버(에드먼턴 키즈)가 주축이 됐다. 여기에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김현수 등 젊은 피가 가세해 일궈낸 성과였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2009 WBC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최강 팀들과 대결에 나섰다. 김인식 감독은 다시 한 번 대표팀을 이끌었다.
2회 WBC에 나선 대표팀은 베이징올림픽 멤버들이 거의 그대로 나섰다. 여기에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허락을 받은 추신수가 지명타자로 합류했다. 박찬호, 이승엽, 이종범이 빠졌지만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히 높았다.
WBC는 2회 대회에서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과 1위 결정전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1라운드에서 같은 조에 배정된 팀은 다섯 번까지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일전이 다섯 번이나 성사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다.
1라운드 첫 대결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2-14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선발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꽁꽁 묶였다. 그러나 1, 2위 결정전에선 봉중근의 호투를 앞세워 1-0으로 이기면서 설욕했다. 2라운드 승자전에서 두 나라는 다시 만났다. 봉중근은 이번에도 일본 타선을 제압해 한국이 4강에 선착했다. 한국 선수뜰은 일본 야구의 상징인 도쿄돔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1위 결정전에서는 숨을 고른 대표팀은 2-6으로 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열린 준결승에선 베네수엘라를 10-2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선발 윤석민이 호투를 펼쳤고, 추신수와 김태균이 홈런을 터트렸다.
결승 상대는 일본. 2승2패를 거두고 가장 높은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은 다시 봉중근이 선발로 나섰고, 일본은 이와쿠마 히사시가 출격했다. 한국은 선제점을 내줬지만, 이후 등판한 정현욱과 류현진이 잘 던져 승부를 끌고 갔다. 1-3으로 뒤진 8회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로 따라붙은 한국은 9회 2사 1, 2루에서 이범호의 동점타로 마침내 균형을 맞췄다.
연장 10회 초 믿었던 임창용이 이치로에게 2타점 2루타를 내주면서 결국 우승컵은 일본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한국 야구가 보여준 저력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베이징올림픽과 WBC의 선전을 통해 새로운 팬들이 유입됐고, '베이징 키즈'로 불리는 유망주들이 배트와 글러브를 잡았다. 야구 인기 상승은 9구단 NC 다이노스, 10구단 KT 위즈 창단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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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 참사와 고척 참사, 위기의 한국 야구
2013년 열린 3회 대회에 나선 대표팀에는 물음표가 달렸다. 프로팀 감독이 팀을 맡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현장에서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감독이 맡았으나 시작부터 잡음이 일었다. 전력도 이전 대회에 비해 떨어졌다.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빠졌고, 김광현도 건강 문제로 이탈했다. 김진우와 추신수도 막판에 합류가 불발됐다.
그럼에도 1라운드 통과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일본과 다른 조에 편성됐고, 네덜란드와 호주, 개최국 대만 모두 해볼만한 상대라는 평가였다. 한국 선수들은 대만 타이중에서 모여 대회를 준비했다.
첫 경기부터 기대가 무너졌다. 마이너리그 특급 유망주들이 대거 참여한 네덜란드에게 0-5로 졌다. 카리브해 네덜란드령 섬인 퀴라소 출신 선수들의 활약에 한국은 맥없이 무너졌다. 호주를 6-0으로 꺽은 한국은 대만에게 0-2로 끌려가 힘겹게 3-2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네덜란드, 대만, 한국이 2승1패 동률을 기록했고, TQB(총 득점/총 이닝-총 실점/총 이닝) 계산에서 밀려 조 3위로 탈락했다.
한국은 4년 뒤 열린 4회 대회를 별렀다. 사상 처음으로 1라운드 대회를 유치했다. 고척돔이 만들어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력은 이번에도 탄탄하지 않았다. 해외파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오승환이 유일했다.
이번에도 한국은 첫 경기에서 패배했다. 마이너리거들로 구성된 이스라엘에게 고전했고, 연장전 끝에 1-2로 패했다. 2차전 역시 0-5로 졌다. MLB 주전 유격수만 4명 포함된 네덜란드는 4년 전보다 더 강했다. 삼성 출신 투수 릭 밴덴헐크 공략도 실패했다. 대만에게 11-8로 이겨 전패는 모면했지만, 자존심을 구겼다. 해설위원으로 나선 박찬호는 "이게 한국 야구의 실력이자 수준"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6년 만에 명예 회복, 가능할까
이번 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2017년 제4회 대회 이후 6년 만에 열린다. 출전 선수 명단은 화려하다. 마이크 트라우트, 클레이턴 커쇼(이상 미국), 오타니 쇼헤이(일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매니 마차도(이상 도미니카공화국) 등 스타급 선수들이 참가를 예고했다.
한국은 2021년 KT 위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강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가운데 30명의 명단(교체 가능)을 발표했다. 김하성, 최지만, 김광현, 양현종 등 7명의 전현직 빅리거와 지난해 MVP 이정후 등 정예 멤버를 꾸렸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혼혈 선수인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선발했다. 한국의 목표는 14년 만의 4강 진출이다.
20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4개 조로 나뉘어 1라운드 풀리그를 치른 뒤 상위 2개 팀이 2라운드에 진출한다. B조에 속한 한국은 호주(9일), 일본(10일), 체코(12일), 중국(13일)과 맞붙는다. 2위 이내에 들면 A조 팀(대만, 네덜란드, 쿠바, 이탈리아, 파나마)과 단판 2라운드를 치른다. 여기서 승리하면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준결승에 진출한다. 결승 역시 같은 곳에서 치러진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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