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띄운 '총리 국회추천제'…선거제도 개편과의 궁합은 [불붙은 게임의 룰 ③]
개헌안을 3월까지 제출하겠다며
개헌안에 담길 내용 중 하나로
'국무총리의 국회추천제' 언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자체 개헌안을 오는 3월까지 제출하겠다며, 개헌안에 담길 내용 중 하나로 '총리 국회추천제'를 언급했다. 총리 국회추천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가는 열쇠로 여겨지고 있어, 제안의 의도를 놓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2일 국회 사랑재에서 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미 수명을 다한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정치의 실현과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며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연합정치와 정책연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무총리 국회추천제와 감사원 국회 이관처럼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조치도 해야할 일"이라며 "민주당은 올해 3월을 목표로 자체 개헌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자체 개헌안을 3월까지 제출하겠다면서 담겨야할 내용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감사원의 국회 이관을 거론했다.
개헌안은 헌법 제128조 1항에 따라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으로 발의할 수 있다. 원내 169석 민주당은 단독으로 개헌안 발의가 가능하다. 이른바 '87년 체제' 성립 이후 지난 2018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이래로 두 번째 개헌안 발의이자 국회 발의로는 최초의 개헌안 발의가 이뤄질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대중의 이목은 4년 중임제에 쏠리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과 학계의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총리의 국회추천제다.
총리의 국회추천제는 과거 대통령제를 취했던 핀란드가 지난 1999년 개헌을 통해 도입한 것이다. 핀란드 헌법 제61조는 "의회가 총리를 추천하기에 앞서 원내교섭단체들은 내각 구성에 대한 협상을 진행한다. 협상 결과에 따라 대통령은 국회의장과 원내교섭단체의 의견을 청취한 뒤, 총리 후보자를 국회에 지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헌으로 '총리 국회추천제' 채택한
핀란드는 내각제 국가 된 걸로 분류
백혜련 "총리추천제는 이원집정제"
최인호 "사실상 내각제 하자는 것"
이러한 헌법 조문에 따라 국회 다수 의석이 추천한 총리에 대해 대통령은 임명을 사실상 거부할 수 없게 되면서 핀란드는 이원집정부제로 들어선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2011년 후속 개헌을 통해 헌법 제66조에 "총리는 유럽연합에서 핀란드를 대표한다"는 규정이 들어가면서, 외교에 해당하는 권한도 총리에게 이양돼 핀란드는 이제 서유럽의 다른 선진국들과 같이 의원내각제 국가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 의원들도 총리의 국회추천제는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를 사실상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로 개혁하는 성격이 있다는 점에 공감한 바 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과거 평화방송라디오에 출연해 "총리추천제는 말만 바꾼 것이지, 실제로는 이원집정부제와 다를 바가 없다"며 "대통령제를 실질적으로는 의원내각제에 가까운 형태의 정부 형태로 변경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최인호 민주당 의원도 CBS라디오에서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자는 것은 사실상 내각제를 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내각제를 채택하는 국가들은 국회에서 다수당의 인사를 총리로 추천하고 그 총리가 행정수반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총리추천제는 실제 핀란드의 사례를 봤을 때 사실상 다수당이 추천하는 인사가 총리로 되고 그 총리가 실질적인 행정수반의 역할을 한다"며 "표현만 다를 뿐이지 정치적 결과에 있어서는 총리의 추천제는 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의 정부 형태를 띄게 된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대통령 4년 중임제 △대선 결선투표제 △국회의 총리추천제가 모두 하나의 헌법에 담길 경우, 결선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4년 중임의 대통령은 핀란드의 대통령과 같이 상징적 국가원수로 역할이 재정립될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의 대통령도 헌법 제54조 "동일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은 2회 이하에 한한다"는 규정에 따라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같은 조문에서 "과반 득표를 한 후보자가 없는 경우, 최다 득표자 2명을 대상으로 재선거를 실시한다"고 규정해 결선투표도 채택하고 있다. 이 대표의 개헌안과 다른 점은 임기가 6년이라는 점 뿐이다.
李, 선거제도 질의응답에서는 '딴소리'
"중대선거구제엔 회의적…내각제와
친한 제도 아니냐" 반문해 의구심 낳아
권력구조·선거제 이해하고 제안했나
제1야당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가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염두에 두고 개헌을 제안한 것이라면 그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그동안 선진국형 모델인 권력 분산 개헌이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는 임기초에는 대통령이 개헌론에 자신의 국정 동력을 소모하기 꺼려하고, 임기말에는 차기 대권주자들이 '대통령병'에 걸려 권력 분산 개헌론을 기피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 임기초에 야당 대권주자로부터 권력 분산 개헌 제안이 나온다면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문제는 이재명 대표가 총리의 국회추천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개헌안을 제안했는가 하는 점이다. 총리의 국회추천제가 실제 헌정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 제도를 채택한 핀란드의 권력구조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신년 기자회견 모두발언 이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인터뷰에서 제안한 중대선거구제에 회의감을 표하면서 "대통령제는 소선거구제와 친하고 중대선거구제는 내각제와 친한 제도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의 앞선 발언을 인용했다며 웃었지만, 이 대표의 답변에는 중대선거구제는 의원내각제와 친한 제도라서 자신이 제안한 개헌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제안한 총리의 국회추천제를 도입한 핀란드의 권력구조는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분류된다. 이 대표 자신이 제안한 개헌안과 선거제도에 대한 답변이 서로 모순되는 셈이다.
그에 더해 이 대표는 "중대선거구제만이 유일한 방안이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같은 다른 방법도 많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권역별 비례대표제야말로 선거제도 중에서는 의원내각제와 가장 친화적인 선거제도로 분류되고 있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관한 이 대표의 이해 수준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회 정개특위에 속해있는 의원실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 모두발언과 질의응답에서 개헌과 선거제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관심을 가지고 일독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모순점이 보인다"며 "내각제에 가까운 '총리의 국회추천제'를 거론한 뒤, 중대선거구제는 대통령제와 친한 제도가 아니라고 회의적이라고 말하고, 다시 내각제와 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해 논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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