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구급차 끼어들자 끽!…서울과 세종 자율주행버스 타보니
서울특별시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지난달 자율주행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22일 청와대 주변 경복궁 순환 노선에 투입한 청와대 A01번 버스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정규 도심 버스노선에 투입한 자율주행버스다. 세종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충북 오송역을 오가는 A2·A3 등 노선버스 역시 전국 최초로 간선도로를 운행 중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11일과 17일 서울·세종에서 각각 자율주행버스에 탑승했다.
청와대 A01번 버스 외관은 서울 도심을 주행하는 다른 버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운전석에도 운전기사가 타고 있었다. 하지만 교통카드를 찍고 실내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왼쪽 맨 앞 좌석에 설치한 모니터를 전담 직원이 응시하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복잡한 기계장치와 컴퓨터·공유기·키보드 등이 보였다.
모니터 통해 남은 거리·도착시간 확인
세종~충북을 오가는 자율주행버스에도 운전자·안전요원이 동승했다. 안전요원 서인표(26)씨는 버스 출발 전부터 도착까지 모니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승객이 버스에 타고 내리는 것도 지켜봤다. 모니터에서는 버스가 지나는 구간과 다음 정류장까지 거리·속도 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전요원은 물론 맨 뒤에 앉은 승객도 볼 수 있는 큰 모니터였다.
자율주행버스지만 운전기사가 탑승한 건 버스를 가끔 수동으로 조작할 필요가 있어서다. 지난 17일 오후 2시 버스에서 “자율주행 시작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운전자 윤준혁(27)씨가 핸들에서 손을 뗐다. 잠시 뒤 다음 정류장 입구에 들어서자 버스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정류장 출입구에 정확하게 정차한 버스는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손님을 태운 뒤 다시 출발했다.
이와 달리 청와대 A01 버스는 버스 정류장에 진입하거나 출발할 때마다 운전기사가 수동으로 조작했다. 동승한 안전요원 장동혁 에스유엠 모빌리티사업부 자율주행운영팀 매니저는 “버스 운행 구간 일부 정류장이 자전거전용도로에 설치됐기 때문”이라며 “갑작스럽게 자전거가 튀어나올 경우를 대비해 서울시가 정류장 승차 전·후는 수동 조작을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세종버스 탑승객 "일반버스보다 부드러운 주행"
자율주행버스 승차감은 대체로 안락한 편이었다. 세종시 해밀동에서 탑승한 김은주(69·여)씨는 “자율주행버스가 운행하고 나서 몇 번이나 타봤는데 일반 버스와 다르지 않고 안심도 된다”며 “운전기사가 있는 다른 버스처럼 주행이 안정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세종버스는 도심 구간을 시속 50㎞ 이하로 주행하면서 지하차도는 물론 고가도로와 곡선구간까지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도심구간 7개 정류장을 들른 버스는 왕복 6차로 시외구간으로 접어들자 속도를 70㎞까지 높였다. 운전자가 손을 떼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주행이 안정적이었다. 오송역을 앞두고 버스가 교차로에 접근하자 운전자인 윤준혁씨가 다시 핸들을 잡았다. 다른 방향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진입하는 차와 충돌 사고 등을 우려해서다. 오후 2시 세종에서 출발한 버스는 40분 만에 오송역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오후 3시 오송역을 출발하는 버스에는 승객 4명이 탑승했다. 평소 BRT로 세종 도담동에서 오송역 구간을 자주 오간다는 윤소희(31·여)씨는 “오늘 처음 자율주행버스를 탔는데 기존 버스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뉴스에서 자율주행버스가 운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직접 타보니 신기하고 안정감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자율주행버스, 주변 상황 따라 급정거
이에 비해 서울 버스는 2.6㎞ 거리의 주행 구간에서 최고 35㎞ 이내로만 주행했다. 규정상 해당 도로 최고 속도는 40㎞다. 앞뒤에 장애물이 없고 옆 차선에 차량이 없어도 이 속도를 넘지 않았다. 다만 주변 자동차 상황에 따라 승객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급정거하는 상황이 가끔 발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옆길에서 1차선을 주행하던 제네시스의 대형 세단 G90이 버스가 주행 중인 2차선을 밟고 위험하게 주행하자 갑자기 덜컹하고 차가 멈췄다. 광화문 앞에서 사설 구급차가 차선을 변경해 버스 진로를 침범했을 때도 차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급정거했다.
자율주행 기술력의 진가를 발휘한 장소는 경복궁사거리에서 광화문삼거리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11m에 달하는 버스 길이를 고려해 차선 왼쪽으로 붙었다가 넓게 반원을 그리며 안전하게 우회전했다. 해당 구간은 평소 안국동사거리에서 광화문삼거리 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이 많은데, 45도 방향에서 직진하는 차가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전하게 삼청로에서 사직로로 진입했다.
광화문 삼거리 일대에 진입한 이후에도 자율주행에 그리 녹록한 여건이 아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광화문 앞 월대(궁궐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라서다. 이 때문에 일단 차도가 직선이 아닌 곡선인 데다, 공사 구간과 접한 맨 끝엔 펜스를 설치해 차선이 보이지 않는다. 자율주행차가 차도라고 인식할만한 가이드라인이 하나가 없다는 뜻이다.
승객들 주행 중 환호, 운전자 "뿌듯해"
이 때문인지 해당 구간에선 버스가 왼쪽 차선을 밟고 달리거나, 옆 차선을 침범해서 주행하곤 했다. 장동혁 매니저는 “자율주행버스가 주행을 시작한 이후에도 수차례 펜스 위치가 달라지면서 지형이 바뀌다 보니 데이터 수집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구간은 되도록 수동으로 운행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청와대 A01번 버스를 운전한 고경우씨는 “주행 중 두 손을 번쩍 들고 손을 흔들면 승객이 즐거워하고 때론 환호를 보내기도 한다”며 “전국 최초로 서울시가 시도한 정규노선 자율주행버스를 내 손으로 운전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세종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운행을 시작한 자율주행버스는 지난 17일까지 승객 500여 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탑승한 신청한 시민도 1000여 명에 달한다. 버스는 월요일~금요일 정오부터 오후 4시 사이 왕복 6회 운행한다. 기존 BRT 노선 8개 정류장에 정차하며 배차 간격은 40분이다. 세종시·충북도 누리집, BRT 정류장 포스터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사전 체험신청을 하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무료 서비스 기간은 오는 5월 23일까지다.
세종시, 상반기 중 대전 반석역까지 연장
세종시 관계자는 “시범운행을 마친 뒤 상반기 중 운행구간을 대전 반석역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며 “내년부터 세종시 원도심인 조치원읍을 비해 청주공항과 공주·천안·아산 등 충청권 주요 지역으로 구간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진호·문희철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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