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 묻은 헛간 속 '유화'…37억 작품

세상 떠난 前 소유주 20년전 75만원에 구입
반 다이크 작품…내주 뉴욕 소더비 경매 출품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미국의 헛간에서 새똥이 묻은 채 발견된 유화가 알고 보니 17세기 화가 반 다이크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이 작품은 다음 주 뉴욕 소더비 경매에 출품될 예정이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2002년 공무원이자 수집가였던 고(故) 앨버트 로버츠는 이 작품을 네덜란드의 빈티지 작품일 것으로 보고 600달러(약 75만원)에 구입했다. 발견 당시 이 작품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미국 뉴욕주에 조성한 작은 마을인 킨더훅의 헛간에서 새똥이 묻은 채 방치돼 있었다.

오는 26일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 오르는 반 다이크의 '성 히에로니무스를 위한 습작'. 뒷면에는 새똥 자국이 보인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로버츠는 그림을 오랫동안 그의 자택에 걸어두었는데 이후 본격적으로 이 작품의 유래를 추적하면서 17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1599∼1641)가 1618∼1620년 그린 '성 히에로니무스와 천사'를 위한 습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반 다이크 전문가인 미술사학자 수전 반스는 이 그림을 감정한 뒤 드물게 현존하는 반 다이크의 실물 습작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로버츠는 2021년 세상을 떠났으며 이 작품은 로버츠의 유산 중 하나로 오는 26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 오른다. 경매소에서는 이 작품의 낙찰 추정가를 200만∼300만 달러(약 25억~37억원)로 추정했다.

이 그림은 하얀 수염을 가슴께까지 늘어뜨린 노인의 나신을 담은 가로 58.5cm, 세로 95㎝ 크기의 작품이다. 작품에는 '성 히에로니무스를 위한 습작'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성 히에로니무스(347년~420년 9월 30일)는 기독교의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성 예로니모라고도 불린다. 라틴어 번역 성경인 불가타 성경의 번역자로 알려진 그는 미술 작품 속에서 책을 읽거나 쓰는 모습 등으로 많이 그려졌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반 다이크의 '성 히에로니무스'. 이번에 경매에 오른 작품은 이 작품의 습작으로 추정된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소더비의 고(古)유화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어파슬은 반 다이크가 10대 후반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의 안트베르펜(앤트워프)에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작업실에서 일하던 시절 이 습작을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루벤스는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로 손꼽혔던 화가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졌던 반 다이크는 19살 때 이미 마스터 자리에 올랐으며, 이후 자신보다 22살 많은 루벤스의 작업을 도왔다. 어파슬은 "반다이크는 거의 처음부터 당대의 대가로 떠올랐다"며 "루벤스 같은 화가는 거장의 위치에 오르려 부단히 노력해야 했지만, 반다이크는 천재로 태어난 모차르트 같았다"고 말했다.

이 그림이 어떻게 해서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처럼 명화가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되는 일은 종종 있다.

2014년에는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다락에서 이탈리아 거장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1607년 작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가 발견됐다. 2019년 추정가 1억7000만 달러(약 2100억원)로 경매에 오른 이 작품은 공개되지 않은 가격에 새 주인을 만났다.

또 201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열린 이스테이트 세일(사망자의 소유물 처분 판매)에서 한 남성이 30달러(약 3만7000원)를 주고 구입한 낡은 스케치가 수년이 지난 다음 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진품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추정가는 약 5000만 달러(약 615억원)에 달한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