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 개장 전 7시, 매일 50m 천장서 연 날리는 男 정체
오전 7시. 롯데월드 개장 두 시간을 앞둔 시각.
롯데월드 35년차 직원 문동수(65)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해도 여유는 없다. 문씨의 업무 대부분이 개장 전에 마무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업무는 청소다. 지금은 계열사 소속이지만, 롯데월드에 입사한 1988년부터 이 일을 해왔다. 1988년이면 롯데월드가 정식 개장하기 한 해 전이다.
문씨가 긴 걸레 자루를 들고 풍선비행 앞에 섰다. 풍선비행. 실내 시설인 롯데월드 어드벤처 내부를 열기구처럼 한 바퀴 도는 놀이기구다. 1989년 롯데월드가 오픈할 때도 있었던 클래식 시설이다. 문씨가 탄 사다리차가 얼추 10m 높이까지 올라갔다. 풍선비행과 얼추 눈을 맞추자 문씨가 마대자루 두 개를 이어붙인 걸레로 풍선 상단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걸레 자루가 길어 힘이 꽤 들 텐데, 그의 동작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사다리차에서 내려온 문씨가 이번에는 회전목마로 향했다. 전 세계 놀이공원의 심장과 같은 시설. 놀이공원 하면 회전목마라지만, 세상 어딘가에 회전목마를 청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시 사다리차에 올라탄 문씨가 긴 걸레 자루 휘둘러 회전목마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숙련된 노동은 거침이 없었다.
마지막 아침 작업이 남았다. 50m 높이 천장에 걸린 헬륨 풍선을 처리하는 일이다. 테마파크에 입장하는 아이들 손에는 저마다 풍선이 들려있다. 저 풍선이 종종 말썽을 일으킨다. 아이들이 딴눈 팔다 풍선을 놓치면 실내시설인 어드벤처의 천장까지 올라가 걸린다. 헬륨을 가득 채운 풍선이어서 쉬 떨어지지도 않는다. 정기적으로 치우지 않으면 햇빛 들어오는 돔 지붕이 풍선으로 덮일 수 있어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이 풍선 청소의 달인이 문씨다. 문씨도 이 작업만큼은 자신을 따라올 자가 없다며 으쓱했다. 저 까마득한 풍선을 어떻게 치울까 궁금했었는데, 그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연 날릴 때 쓰는 얼레를 꺼내 보였다. 천장에 매달린 풍선을 치우기 위해 자체 개발한 장비라고 했다.
“맨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이런 게 없었어요. 최대한 지붕 가까이 올라가서 긴 자루 휘저어 풍선을 치웠어요.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어렸을 적 고향에서 날렸던 방패연을 떠올렸어요. 양면테이프 붙인 풍선을 띄워 천장에 매달린 풍선에 붙이면 끌고 내려올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한번 해봤더니 되더라고요. 그 뒤로 30년 넘게 이 방법으로 풍선을 치우고 있어요. 요즘엔 맨날 작업하진 않지만, 옛날엔 하루에 59개 치운 날도 있어요.”
볼수록 신기했다. 그는 풍선 연을 올리는 족족 천장에 매달린 풍선을 끌고 내려왔다. 50m 높이의 풍선을 조종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문씨는 “기술이 있다”며 다시 으쓱했다.
“줄을 당겼다가 탁 풀면 저 위에 있는 풍선이 움직여요. 그때 적절히 방향을 조정해서 천장에 걸린 풍선 쪽으로 옮겨야 돼요. 말은 쉬운데…. 후배 직원에게 알려줘도 잘 못 하더라고요.”
다음 달 말이면 문씨는 65세 정년을 채운다. 원래는 물러날 생각도 했었으나, 현재 회사와 1년 계약직 근무를 놓고 협의 중이다. 설 연휴가 지나면 결정이 난다고 한다. 그는 65년 인생에서 35년을 롯데월드에서 살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홀로 쓸고 닦고 치우며 자신만의 꿈과 희망의 나라를 만들어왔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그는 매일 오전 5시 20분 출발하는 첫 지하철을 탄다고 했다. 안산으로 이사한 지 20년이 넘었으니까, 그 긴 세월을 이른바 ‘첫차 인생’으로 살았다. 그 긴 세월, 지치고 버거웠던 날이 왜 없었을까.
“저는 진짜 이 일을 재미있게 했어요. 먹고 살려고 왔는데 마음을 비우고 해야지 힘들다고 생각하면 일을 못 하지요. 뭐든지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그렇지 않나요?”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학 동기에 유사 강간당해” 고소한 여성…무고 잡은 결정적 단서 | 중앙일보
- 3주간 아무도 찾지 않았나…욕조 속 노모가 남긴 의문점 | 중앙일보
- “내 남편의 바람을 고백합니다” 이래야 아옳이가 돈을 번다 | 중앙일보
- '61억 횡령' 박수홍 친형 "가족 악마화했다"…검찰 "2차 가해" | 중앙일보
- "전화한다고 손해냐" MB가 잡은 男, 14년뒤 尹에 37조 쐈다 | 중앙일보
- "이정근 '훈남 오빠, 몇천만 더 줘요'…빨대 꽂듯 돈 요구했다" | 중앙일보
- 엘리트·천재·서민 70년 추적…이런 사람들 노후 불행했다 | 중앙일보
- 내복 차림으로 30분 달렸다, 늙음 마주한 ‘악몽의 그날’ | 중앙일보
- '아버님 댁에 보일러…' 이 광고 만든 CF 전설 윤석태 감독 별세 | 중앙일보
- 말죽거리 소고기국밥 제쳤다…이영자도 탐낼 '휴게소 음식 리스트'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