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속수무책 '깡통 전차'…2차대전 뒤 잘못된 진화, 참담한 대가 [뉴스원샷]

이철재 2023. 1.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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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외교안보부장의 픽 : 지상전의 제왕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온라인 연설에서 “서방의 전차는 러시아의 다음 침공보다 빨리 우크라이나에 도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의 연설은 서방권이 주력 전차(MBT)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나왔다. 영국이 자국산 전차인 챌린저2 14대를 우크라이나에 보낸다고 발표했다. 폴란드와 핀란드는 독일산 레오파르트2 전차 지원 의사를 밝혔다.

에스토니아 타파 기지에서 영국군 장병이 챌린저2 전차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전차는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무기 중 하나다. AP=연합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은 재블린이나 NLAW와 같은 대전차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지만, 전차는 지원 목록에서 빠졌다. 전차는 대표적인 공격용 무기라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우크라이나가 성공적으로 반격하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우크라이나가 몇 차례 공세에서 승리를 거두면 유리한 방향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이 나왔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은 지난달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적(러시아)을 물리치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전차 300대, 보병전투차 600~700대, 자주포 500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 전차라고 얘기는 안 했지만, 서방권에 내민 청구서이기 때문에 서방권 전차를 뜻한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부터 미국의 M1 에이브럼스와 독일의 레오파르트2를 콕 집어 요청했다.

왜 서방권 전차일까. 주(駐)유럽 미국 육군 사령관을 지낸 벤 호지는 우크라이나가 기갑 전력을 앞세워 전선을 돌파하려고 할 것인데, 서방권 전차와 보병전투차가 “돌파의 충격을 더 하는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군사전문 매체인 브레이킹디펜스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러시아)에선 전차가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서방에 비해 작고 가볍다. 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권의 전차는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비싸지는 추세를 보였다. 우크라이나는 서방권 전차를 선봉으로 내세워 러시아 방어방에 구멍을 뚫으려는 속셈이다.

이처럼 전차는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다시 주인공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전쟁 초기 러시아 전차가 우크라이나의 무인기와 대전차 무기에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이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여지면서 한때 전차 무용론(無用論)이 나왔다. 특히 폭발로 차체에서 떨어져 멀리 날아간 러시아 전차 포탑의 사진은 영정(影幀)과도 같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동부 하리키우와 남부 헤르손을 러시아로부터 수복할 때 전차를 앞세웠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릭 레이놀즈는 “전차만이 방어력ㆍ기동력ㆍ화력을 갖춰 충분한 전력의 적과 접촉하더라도 공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차병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중대급 보병에 1~2대의 전차를 편성한 보전(步戰) 부대를 만들어 서로 협력해 전투를 치렀다. 러시아의 경우 포탄 1발만 맞아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도 전차병이 해치를 열고 도망갔다고 한다.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예비역 육군 소장)은 “전차가 쓸모가 없어진 게 아니라, 러시아가 전차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차는 당분간 지상전의 제왕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세상이 배운 교훈 중 하나다.

이철재 외교안보부장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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