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머스크도 제친 '명품 제국'의 황제 [후후월드]

박소영 2023. 1.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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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사전 > 후후월드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항상 1등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피아노도, 테니스도 1등을 못했죠. 우리 회사를 1등으로 만드는 게 바로 내가 원하는 성공입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74) 회장이 지난 2019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LVMH는 루이비통·크리스천 디올·펜디·불가리·티파니앤코 등 80여개에 달하는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 회장이 지난해 2월 22일 프랑스 방돔에서 열린 아틀리에 루이 비통 준공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제친 세계 1위 부자


아르노 회장의 LVMH는 유럽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4000억 유로(약 535조원)를 넘어 세계 12위에 올랐다고 로이터통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위는 미국의 애플(2조1412억 달러, 약 2641조원)이다.

이에 힘입어 아르노 회장은 세계 부자 1위 자리를 확실히 꿰찼다. 미국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의 순 자산은 1880억 달러(약 233조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1360억 달러(약 168조원)를 멀찌감치 따돌린 명실상부한 1위다.

아르노 회장은 지난 2019년 처음으로 1위 부자에 오른 바 있다. 당시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머스크 CEO 등과 순위 다툼을 하며 아슬아슬한 1위였다. 하지만 이번엔 지난달 중순 1위를 꿰찬 뒤, 한 달 넘게 수성 중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로나19 '보복 소비'로 수혜


LVMH는 전 세계 80여 개국에 매장 5500여 개를 갖고 있다. 전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수는 17만5000명이 넘는다.

아르노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명품 시장은 코로나19 초기였던 지난 2020년 잠깐 위축됐다 이듬해부터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식·여행 분야 소비가 막히자, 소비자들이 고가 사치품을 구매하며 억눌린 스트레스를 푸는 '보복 소비'가 늘었고 회사 매출이 수직상승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가 큰폭으로 늘었다.

실제로 LVMH는 2020년 매출액이 447억 유로(약 60조원)로 전년 대비 약 17% 줄었다. 하지만 2021년 매출액이 642억 유로(약 86조원)로 급격히 반등했다. 지난해는 1~9월 매출액만 565억 유로(약 76조원)를 기록해 연간 최대 매출액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인수합병으로 만든 ‘명품 제국’


아르노 회장은 1949년 프랑스 북부 소도시 루베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MIT’로 불리는 명문 공대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1971년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들어가 경영 수업을 받았다.

패션사업에 뛰어든 건 35세 때인 1984년이다. 당시 미국 뉴욕에 머물던 아르노 회장은 택시를 타고 가다 기사에게 "'프랑스' 하면 딱 떠오르는 게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 게 계기가 됐다. 당시 택시 기사가 “크리스천 디올”이라 답하자, 아르노 회장은 명품 산업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당시 경영난에 빠진 크리스천 디올을 인수한 뒤, 약 8000명을 감원하는 등 구조조정을 감행해 2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놨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왼쪽)이 아내 엘렌 메르시에 아르노와 지난해 12월 1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국빈만찬을 하러 입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후 아르노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명품 제국을 일궜다. 1989년 M&A로 우여곡절 끝에 LVMH를 차지해 기업의 뼈대를 만들었고, 이후 유명 브랜드를 차곡차곡 사들여 몸집을 불렸다.

아르노 회장은 '역사와 전통은 있으나 위기에 빠진 브랜드'를 집요하게 사들였다. 늘 깔끔한 고급 정장 차림에 미소 띤 얼굴이지만, 눈여겨 보던 기업을 인수할 때는 치밀하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라는 그의 별명도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기업 운영 방식은 관대하고 전문 인력을 각별히 존중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각 자회사나 계열사 경영은 적임자에게 맡기며 중앙집권 방식을 버렸다. 패션사업의 생명인 디자이너에겐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존 갈리아노, 칼 라거펠티, 마크 제이콥스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탄생했고 이는 기업 가치로 이어졌다.

명품에 대한 철학도 뚜렷하다. 그는 “‘럭셔리(luxury ·사치품)’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면서 “우리의 역할은 '진정한 가치'를 지닌 제품과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니스로 건강 관리, 80세로 정년 늘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외동딸인 델핀 아르노가 지난 2019년 6월 20일에 파리에서 열린 패션행사에 참석했다. 델핀은 지난 11일 디올 CEO가 됐다. AFP=연합뉴스

아르노 회장은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슬하에 4남1녀를 뒀다. 자녀들은 모두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11일엔 딸 델핀 아르노에게 주력 브랜드인 디올의 CEO를 맡겼다. 장남 앙투안 아르노는 LVMH 지주회사 CEO, 차남 알렉상드르 아르노는 티파니의 임원, 3남 프레데릭 아르노는 태그호이어 CEO로 일하고 있다. 막내아들 장 아르노는 루이비통에서 근무한다.

후계자 자리를 두고 자녀들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아르노 회장은 FT에 “우리 가족 내에서 승계는 금기 주제”라면서 “각각의 의지와 능력을 보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아르노 회장의 은퇴설이 제기되지만, 현재로썬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대세다. 70대 중반인 아르노 회장은 테니스로 단련해 남다른 체력을 자랑한다. LVMH는 지난해 CEO 정년을 75세에서 80세로 상향 조정했다.

정치적 성향은 보수 자유주의자다. 지난 1981년 중도좌파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당선되자, 기업 운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2012년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집권기엔 부자 증세 정책에 반대하며 벨기에 국적을 신청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르노 회장은 이듬해 벨기에 국적 신청 철회를 철회하며 “어쨌든 나는 프랑스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항변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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