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에 버려진 말라뮤트에게 찾아온 ‘기적’ [개st하우스]

이성훈,최민석 2023. 1. 2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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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팔린 집 마당서 생활… 집배원이 물과 사료 챙겨줘
심장사상충 3기 감염 판정… 구독자·시민 도움으로 모금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천진난만한 표정의 말라뮤트 ‘귀요미’와 제보자 김혜선씨가 올 초 경기도 양평의 한 방치된 전원주택 앞에서 함께 앉아 있다. 귀요미는 폐가에 버려진 채 2년째 방치돼 몸무게가 또래 말라뮤트의 절반에 불과했다. 귀요미는 김혜선씨와 시민들의 후원으로 구조됐지만 심장사상충 3기 감염 판정을 받았다. 양평=이성훈 기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몇 달간 외삼촌네 전원주택에 머물 때였어요. 뒷산 중턱에서 밤낮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렸어요. 삼촌한테 여쭤보니까 2년 전에 경매로 팔린 폐가가 있는데 앞마당에 커다란 말라뮤트 한 마리가 묶여있다고 해요. 그럼 개한테 밥은 누가 주나, 봤더니 매일 지나가는 우체국 집배원 아저씨가 물과 사료를 챙겨주더군요.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말라뮤트는 진작 굶어 죽었겠죠.”-제보자 김혜선(26)씨

읍내로 가는 마을버스 도착을 알리는 경적소리가 이따금 울릴 뿐 조용하고 인적 드문 경기도 양평의 한 산골마을. 이곳 외딴 폐가에는 매일같이 집집마다 우편물을 전하는 집배원이 찾아오는데요. 그가 전하는 것은 우편물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폐가에 버려진 채 2년째 방치된 대형견 말라뮤트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짐 없이 물과 사료를 챙겨주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말라뮤트는 굶어죽을 위기 속에서 2년을 버텼고, 제보자 혜선씨에게 발견돼 국민일보 개st하우스 팀과 만나게 됐습니다.

혜선씨는 개st하우스 팀에 구조 요청을 하며 “사료를 주러 갈 때면 말라뮤트가 새하얀 아랫니가 다 드러나도록 반갑게 웃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귀요미’라는 이름을 붙여줬다”며 “귀요미가 구조되고 새 가족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서 만난 말라뮤트의 처참한 몰골
발견 당시 앙상했던 귀요미의 모습.

지난 2일 말라뮤트가 방치된 양평의 전원주택을 방문했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환경개선과 귀요미의 성격파악을 도울 11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죠. 제보자 혜선씨를 따라 눈 덮인 언덕을 넘자 빛바랜 폐가와 그 앞마당에 묶인 말라뮤트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평소 사료를 챙겨주는 혜선씨 모습을 보고 반가운 듯 덩실덩실 몸을 흔드는 녀석. 하지만 2년간의 방치로 인해 귀요미의 몸 상태는 처참했습니다. 배설물이 묻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털뭉치가 몸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미애쌤은 “심각한 피부병을 유발할 수 있어 구조하는 즉시 3㎜ 클리퍼로 빡빡 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웃자란 털을 헤집으니 갈빗대가 드러날 만큼 야윈 몸이 드러나더군요. 나중에 동물병원에서 체중을 재보니 3살 또래 말라뮤트(50~60㎏) 몸무게의 절반(30㎏)에 불과했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문스러울 만큼 생활환경도 열악했습니다. 집배원 아저씨와 혜선씨까지 나서 챙겨줬지만 역부족이었던 거죠. 녀석은 몸집에 비해 작은 개집과 짧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개집이 20㎏급 중형견용이어서 체중 50~60㎏급 대형견인 귀요미는 들어갈 수도 없더군요. 그래서 녀석은 눈 내린 땅바닥 위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목에 걸린 쇠사슬은 길이 1m에 무게도 3㎏에 달해 덩치 큰 귀요미는 허리를 펴기도 어려워했습니다. 아무리 북극 썰매견 출신의 말라뮤트라도 이런 악조건 속에서 겨울을 견디는 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당장 이번 겨울도 걱정스러웠습니다.

다행히 개st하우스 유튜브 채널에는 지난해 독자들이 후원한 15만원 상당의 슈퍼챗 기금이 있었습니다. 개st하우스팀은 말라뮤트에게 당장 시급한 월동 장비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취재팀은 후원금을 활용해 기존 것보다 2배 넓은 대형견용 개집과 가볍고 튼튼한 3m 길이의 목줄을 장만했죠.

“철커덕”. 2년을 옥죈 쇠사슬을 풀자 귀요미는 홀가분한 듯 온몸을 털었습니다. 1m 줄에 묶여 산과 들판을 바라봐야 했던 녀석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기자가 대형삽으로 오염된 흙을 퍼내고 새집을 설치하는 동안 귀요미는 미애쌤과 함께 집 주변을 1시간 넘게 산책했습니다.

2년간 사료 전한 집배원 “도와달라”
지난 2년 간 귀요미에게 사료를 챙겨준 우체국 집배원.

귀요미의 새집을 설치하자마자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습니다. 귀요미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이 남성은 우체국 로고가 새겨진 헬멧을 쓰고 양손에는 물병과 사료봉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지난 2년간 귀요미에게 사료를 챙겨준 우체국 집배원 김경수(42·가명)씨입니다.

경수씨는 당시에는 “할일을 했을 뿐”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했으나 거듭된 요청에 그날 저녁 전화로 귀요미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습니다. 경수씨는 우편물 배송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귀요미의 전 견주 A씨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자영업자였던 A씨는 2년 전 사업 실패로 파산했고, 집은 경매로 넘어가 대형견을 키울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A씨는 법정 퇴거일 전날까지 귀요미 입양처를 알아봤지만 실패합니다. 대신 A씨는 경수씨에게 다달이 사료비를 보낼 테니 귀요미를 챙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비록 A씨와는 반년 뒤 연락이 끊겼으나 경수씨는 이후에도 귀요미에게 매일 사료를 챙겨준 겁니다.

경수씨는 지난 2년에 대해 “제가 돌보지 않으면 귀요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추우나 더우나 저 자리를 지켜야 하는 녀석에 비하면 제가 한 건 고생도 아니다”라며 “(임시보호나 입양처를 찾을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래왔던 것처럼 귀요미가 구조되는 날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구조 나섭니다
게티이미지

취재팀은 정확한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귀요미를 인근 동물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앞다리의 돌처럼 굳은 털을 밀고 혈액을 채취한 뒤 유기견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병인 심장사상충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심장사상충은 모기의 체액을 통해 개, 고양이에게 침투하는 기생충으로, 심장과 폐 주변 혈관에 머물며 5㎜~30㎝까지 자라납니다. 기생충 크기에 따라 초기 1, 2기부터 말기 3, 4기로 진행되며 치료를 위해서는 최소 3개월간 독한 주사를 맞고 약을 복용해야 하지요.

안타깝게도 귀요미는 심장사상충 3기 감염 판정을 받았습니다. 귀요미를 진단한 수의사는 “귀요미는 오랜 (심장사상충) 감염으로 체력 저하와 체중 감소를 겪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만한 대형견을 치료하려면 실내에서 안정시킨 뒤 4개월간 독한 약물을 투약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치료비용은 최소 300만원을 예상했습니다. 당장 임시보호처와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마련해야 하므로 구조는 쉽지 않았죠.

하지만 귀요미 사연을 알게 된 구독자와 시민들의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구조에 필요한 비용 및 돌봄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구조 비용의 경우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에서 후원금 50만원과 함께 치료비 마련을 위한 모금계좌를 지난 4일 제공했습니다. 이에 개st하우스 구독자 200여명이 모금에 참여해 불과 2일만에 치료비 270만원 모금을 달성했죠. 절실했던 임시보호공간은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자택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귀요미는 마당이 딸린 40평 전원주택에서 지내며 심장사상충을 치료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국민일보는 10일 귀요미를 구조해 경기도 안성의 임시보호처로 이송했습니다. 이후 구조 및 심장사상충 치료 전과정은 유튜브 개st하우스의 영상과 커뮤니티 공지로 공개됩니다. 위기에서 행복까지 귀요미 사연과 함께하실 분들은 개st하우스 유튜브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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