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만화책의 눈부신 성장…웹툰, K-콘텐츠로 우뚝
영화·드라마 다양한 활용…천만관객 동원도
불법 복제, 작가 노동 환경 등 숙제도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국내 웹툰 산업 매출 규모가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과거 부모님 눈을 피해 골방이나 만화방에서 몰래 보던 시절을 떠올리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여기에 각종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도 웹툰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K-콘텐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만화방은 1960년대에 들어 전국으로 확대됐다. 당시 복면을 쓴 영웅이 악의 화신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만화 '라이파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를 필두로 날마다 새로운 만화책이 쏟아져 나오는 등 그야말로 '만화방 전성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그렇게 동네 곳곳에 생긴 만화방은 당시 정부가 추진한 출판만화에 대한 사전심의로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면서, 판에 찍은 듯한 재미없는 만화책이 나오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0년대 이현세 허영만 이상무 작가 등의 야구 만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아기공룡 둘리'가 등장하면서 만화책은 점차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88년대 들어서는 만화잡지가 생기면서, 다양한 장르와 개성 있는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2003년 10월 다음(카카오)에 연재 중이던 강풀의 가 큰 인기를 끌면서 장편 웹툰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소위 '세로 스크롤 형식'인 웹툰도 이때부터 정형화됐다. 조석의 또한 네이버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웹툰 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을 토대로 하는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웹툰 기반의 영화 드라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IP 활용…인기 장르는 순정·로맨스
이와 관련해 웹툰 산업은 지속해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툰사업체 실태조사' 결과 2022년 국내 웹툰 산업 규모는 1조5660억원으로 전년 대비 48.6% 증가했다. 웹툰 산업 실태조사가 시작된 2017년 매출(3799억원) 대비 네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매출 중 웹툰 관련 비중은 평균 76.5%로 전년 대비 11.6%p 늘어났다. 매출 구분별로는 유료 콘텐츠가 63.2%로 비중이 가장 컸다. 해외 콘텐츠(17.4%), 출판(6.0%), 2차 저작권(2.8%), 광고(1.7%)가 뒤를 이었다. 2021년 신사업 분야는 자사 제작 스튜디오 설립(38.2%), 자사 지식재산(IP) 활용, 2차 저작물 자체 제작(31.4%), 자사 IP 활용 굿즈 제작·판매(20.6%) 등으로 조사됐다.
사업체가 주로 기획·제작·유통하는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가 61.5%로 가장 높았으며 판타지·SF(50%), 순정·로맨스(49%), 액션·무협(48.1%) 등으로 나타났다. 매출·수익성이 좋은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56.7%)에 이어 액션·무협(51.0%), 순정·로맨스(44.2%), 판타지·SF(43.3%) 순이었다.
웹툰 작가 조사 결과 성비는 여성 69%와 남성 31%였다. 연령대는 30대 이하가 80.7%로 가장 많았다. 주력 장르는 순정·로맨스가 45.9%로 가장 높았다. 웹툰 작가 연평균 수입은 최근 1년 내내 연재한 경우 1억1870만원, 최근 1년 이내 연재한 경험이 있는 경우 8573만원으로 조사됐다. 전년 대비 각각 3749만원, 2905만원 증가한 수치다. 웹툰 창작을 통한 주 소득원은 수익배분(RS) 64.8%, 최소보장금(MG) 53.3%, 해외유통(24.3%) 순으로 나타났다. 웹툰 작가 대다수는 플랫폼과 직접 계약(45.3%)하거나 에이전시(43.0%)와 계약하고 있다.
◆ 창작 의지 꺾는 불법복제…정부·네이버·카카오 '적극 대응'
다만 불법 복제 문제와 웹툰 작가 처우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웹툰 데이터 분석업체 코니스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불법 유통된 웹툰의 조회 수는 366억회에 달한다. 이는 2017년 106억회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7월 11일까지 집계된 국내외 불법 복제·유통 사이트 도메인 수는 9588개다. 여기에 제목을 교묘하게 바꿔 집계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1억개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유통은 창작자 수익은 물론 창작 의욕 자체를 꺾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저작권보호원에 저작권 침해 종합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올해부터 웹툰 분야 모니터링을 시작한다. 해외 불법 웹툰 사이트 침해 실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저작권 침해 사이트 접속차단을 주 2회에서 매일 확대하는 '방통위법' 개정안 ▲저작권 침해 사건에 배수 배상제도를 도입하는 저작권법 개정안도 추진키로 했다.
네이버·카카오 등 웹툰·웹소설 플랫폼도 불법유통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네이버웹툰은 2017년 자체 개발한 툰레이더 기술로 불법 유통 웹툰을 차단하고 있다. 웹툰 이미지에 보이지 않는 사용자 식별 정보를 넣어 최초 불법 유출자를 식별하고 차단한다.
서충현 네이버웹툰 저작권보호기술팀장은 "불법 공유 웹툰 근절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잡아내는지보다 불법 공유 시점을 얼마나 늦추는지가 관건"이라며 "툰레이더 기술로 최신 유료 회차가 불법 웹툰 사이트에 공유되는 시점을 만 하루에서 3~4주까지 늘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험 계정에 대한 예측 차단 기술을 고도화해 불법 공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역량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2021년 11월 글로벌 불법 유통 대응 태스크포스(TF) 'P.CoK'을 꾸렸다. P.CoK은 영어권·중화권·인도네시아권에서 불법물 모니터링을 상시 진행한다. 지난해 4월까지 총 224만건을 삭제했다. 이호준 카카오엔터 법무실장은 "국제적 차원에서의 입법 활동, 인터폴과의 공조 수사 등 정부의 불법유통 대응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 웹툰 제작 시스템 자체는 좋지만…작가 노동 환경 개선은 숙제
웹툰 산업 매출 규모가 커지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작가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웹툰협회는 지난해 8월 8일 성명을 내고 "7월 23일 고 장성락 작가의 비보가 전해졌다"며 "슬픔의 시간을 넘어 업계의 여러 문제 중 과중한 노동강도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업계가 형성해 온 살인적인 고강도 업무환경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과도한 작업량을 멈추지 않는 한 이 순간에도 웹툰 작가는 죽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협회가 실시한 자체 심층 인터뷰에 따르면 작가 가운데 90% 이상이 일주일에 60∼70컷 분량을 소화하는 데 버거움을 느끼는 상태라고 한다. 협회는 "플랫폼, CP(콘텐츠 프로바이더), 작가 등 산업의 각 주체가 모여 과중한 노동량에 노출된 작가의 상황을 이해하고 건강권을 보장할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작가가 살아야 업계가 산다. 작가가 소모품이 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장 작가는 지난해 30대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후 작가의 건강 문제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왔다.
관련해 한국노동안전보건소 연구소가 5일 발표한 '웹툰 작가들의 정신건강 및 신체 건강과 불안정 노동 수준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 3명 중 1명은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웹툰 작가의 28.7%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28.2%는 불면증을 경험했다. 연구진은 "댓글을 통해 작가에 대한 비난 경험이 있는 경우 우울, 불안, 수면장애 진단 위험이 크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조사는 최근 1년간 50만원 이상 소득이 있는 웹툰 전업 작가 32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했다.
한편 전문가는 웹툰이 경쟁력과 차별성을 갖게 된 배경으로 제작 시스템을 강조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 웹툰은 이미 글로벌 시장 안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웹툰 제작 시스템이 지금의 K-웹툰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과거에는 도제식 시스템으로 특정 작가 아래 들어가 문하생으로 수년간 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좋은 아이디어가 사라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날 것 그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결국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작가들이 끊임없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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