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차례상엔 메로나가 올라간다
전문가들 “조상 기리는 마음이 가장 중요”
차례상에 마카롱을 올려도 괜찮을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을 두고 뜨거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여전히 ‘홍동백서(紅東白西·제사상에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일)’나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를 지켜가며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다. 반대로 열대과일 망고와 파인애플은 물론 피자, 에그 타르트, 마카롱에 고인이 생전 즐겨 먹던 아이스크림까지 올리는 집도 보인다.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MZ 세대의 제사’라고 희화화하거나 ‘결국 (상을 차리는) 네가 좋아서 올린 게 아니냐’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차례상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은 차례의 본질을 찾아 실제로 ‘이색 차례상’을 차린 이들과 전문가의 조언을 함께 들어보았다.
대전에 사는 정욱진씨(26)는 2년여 전부터 명절 차례상에 메로나 아이스크림과 맛동산 과자를 올린다. 그는 20일 “고인이 평소에 좋아하시던 음식”이라며 “처음엔 유과를 올렸는데 차례가 끝난 후 아무도 먹지 않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집안 어르신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외할머니도 ‘죽은 사람 먹으라고 올리는 게 제삿밥인데 그 사람 좋아하는 거 올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시더라”며 주변에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고 전했다.
‘전통’에서 벗어난 이색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은 비단 젊은 세대뿐만이 아니다.
경기 용인에 사는 김모씨(57)는 차례상에 마카롱과 치즈케이크 등을 올린다. 그는 “시아버지가 생전에 워낙 단 것을 좋아하셨다”며 “시어머니가 먼저 빵 등을 올릴 것을 제안해 15년 넘게 이렇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의 집은 술도 전통주가 아니라 고인이 즐기셨던 양주로 대체해 올리고 있다. 그는 “전통 음식이 아니라고 해서 고인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빼는 게 오히려 정성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며 “전통이라는 형식에 갇히기보다는 모인 사람들이 즐겁게 나눠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화성시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정미씨(44)도 직접 구운 마카롱을 차례상에 올렸다. 그가 구운 마카롱은 특별하다. 애호박전, 표고버섯전, 산적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는 전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단 음식은 좋아하셨다”며 “그래서 전 모양 마카롱을 구워 올렸다”고 말했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을 생전에 즐기던 음식으로 ‘탈바꿈’해 올린 것이다.
가족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가족들은 정씨가 직접 만들어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모두 ‘차례상에 마카롱을 올리는 행위’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봤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차례는 가족들의 모임이기에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두는 것이다. 차례는 세레모니, 즉 의례인데 마카롱을 올리는 것이 의례에 어긋나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마카롱을 일종의 과자로 보면 된다. 옛날에는 (차례상에) 유과를 올렸다. 맛없는 과자를 고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카롱, 케이크, 피자 등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것을 MZ세대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설 교수는 “차례는 MZ세대가 아니라 MZ세대의 부모들이 차리는 것 아니냐”고 했다. 차례 문화의 변화 현상은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가 자연스레 적응하는, 세대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이하 성균관) 또한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따르는 추세다. 지난해 추석에 이어 올해 설에도 성균관은 시대에 따라 바뀐 인식을 고려한 ‘설 차례 간소화 진설도’를 발표했다.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카롱 논쟁’에 대해서도 입장을 전했다. 그는 “차례를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스러운 마음”이라며 “차례와 제사는 추원보본(追遠報本: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갚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음식의 가짓수나 종류에 구애받지 말고 가족과 소통하며 가족이 행복한 차례를 준비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예서’에도 음식 가짓수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시기에 구할 수 있는 ‘시물(時物)’을 차례상에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최 위원장은 부득이한 경우 ‘차례상 상차림’을 통째로 구매해도 된다고 했다. 직접 만든 음식에 정성이 더 깃든 것은 맞지만, 차례 음식이 가족 간 갈등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색 차례상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놨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음식을 선정한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고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을 달궜던 ‘마카롱 논쟁’처럼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차례’ 문화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게 ‘차례’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교수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기념일’이 있을 때 이를 기념하는 ‘의례’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차례와 같은 의례가 사라지면 인적 관계망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의례를 지내며 우리 조상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망을 확인하고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 교수는 “(가족 모두가)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의례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를 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차례의 목적은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것임을 잊지 않기’와 ‘가족 간의 토의를 통해 새로운 차례 과정 만들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차례는 가족들이 같이 음식을 만들고, 차례상에 올리는 과정이 핵심이다. 음식 가짓수가 몇 개인지, 겉보기에 얼마나 번지르르한지는 중요치 않다. 조상을 얼마나 기리고 추억하는지가 차례의 핵심이다. 비싼 음식보다 ‘고인이 즐겨 드셨던 짜장면 한 그릇’이 차례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다가오는 설, 그리운 아버지가 메로나를 즐겨 드셨다면 차례상에 올려보자. 고인을 향한 인사, 차례가 끝났다면 맛있게 나눠 먹자. 이런 작은 행위 하나하나가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고인, 조상을 기리는 과정이 된다.
김은초 박성영 이지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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