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크 튀어도 한전 나몰라라"…10년간 21번 불난 구룡마을
“전기선이 낡아서 종종 전선에서 스파크가 튀어요. 한전에서 주기적으로 관리도 안 해주는 것 같고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약 30년 동안 거주하고 있다는 이모(63) 씨 주장이다.
설 명절 직전인 20일 새벽 대형 화재가 발생한 구룡마을은 화재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재난 취약 지역이다. 서울소방본부·강남소방서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이 마을에서는 21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2017년 이전까지 구룡마을에선 매년 2~5건의 화재가 상습적으로 났다. 2018년 이후 최근엔 그나마 연간 0.5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26만6502㎡(8만617평) 규모인 이 마을에서 한 해 걸러 한 번씩 불이 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소방청 화재통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 화재 건수는 3만6267건이다. 국토 면적(10만412.6㎢)을 고려하면 구룡마을 정도의 면적이면 10년에 한 번 정도 화재가 발생해야 대한민국 평균치에 근접한다.
화재 위험 안고 사는 구룡마을
거주 환경이 열악해 부탄가스가 터진 적도 있다. 구룡마을 7지구 구민이 집안에서 부탄가스 난로를 손질하다가, 가스가 새어 나와 폭발하며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29세대가 다 탔다.
2014년엔 사망사고도 발생했다. 구룡마을 내부에 있던 고물상에서 불이 시작해 900㎡(약 272평)가 불타고 63세대가 사라졌다. 13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70대 주민 1명이 숨지기도 했다.
화재만 문제가 아니다. 매년 여름이면 풍수해로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반복하는 지역이다.
지난해 여름엔 집중호우로 이 마을 판잣집 10여채가 휩쓸려 내려갔다. 당시 주민 80여명은 인근 구룡중학교 대피소에서 숙식하기도 했다.
보상·개발 방식을 두고 재개발 지연
주민들 재개발 원하지만, 주민과 자치단체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2011년·2016년 구룡마을 정비방안을 내놓았지만, 보상·개발 방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구룡마을 4지구에 사는 김모씨는 20일 화재 현장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시장된 지 꽤 지났는데 여전히 (구룡마을을) 그대로 두면서 왜 왔느냐”라며 “임대주택 말고, 우리 같은 노인네가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걸(분양권) 달라”고 말했다. 김씨 집은 이번 불로 다 탔다.
재개발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구룡마을은 여전히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남았다. 화재·수해 등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주민들은 임시 구호소로 대피했다가 열악한 판잣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실정이다.
이종석 강남소방서 소방위는 “전기 또는 기계적이거나 부주의 등 다양한 요인 중에서 화기를 잘못 사용하거나 전자제품이 합선·누전되면서 발생하는 화재가 겨울철에는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이 소방위는 "특히 구룡마을은 건물이 낡은 데다 주택 밀집도가 높고 소방통로 확보가 어려워 작은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옆 건물로 번져 여러 채가 소실될 수 있는 취약 지역”이라며 “이번 화재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노후화된 구룡마을 전기시설에 대해 "한전은 계량기 유지, 보수까지만 담당한다"며 "전기사업법상 민간업체가 집안 내부 전기선 수리를 담당한다"고 밝혔다.
문희철·이찬규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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