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전시 코엑스아쿠아리움…“학대 아냐?”
암수 분리 등 조치 없어…‘토끼 생태 아예 모르나’ 비판도
2023년 계묘년 ‘검은 토끼해’를 맞아 서울 도심 한복판에 진짜 검은 토끼들이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쿠아리움(이하 코엑스)이 ‘계묘년을 맞이해 검은 토끼들이 놀러 왔다’며 살아있는 검은 토끼를 활용한 전시 홍보에 나선 것이다.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은 ‘계묘년, 토끼는 과연 행복할까’ 4회 기획 기사를 통해 전시용으로 혹사당하는 토끼들의 실태를 조명했다. 이번 코엑스 전시회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에서 착안한 듯 검은 토끼와 거북이들을 합사해 진행된다. 과연 이 전시회의 토끼들은 안전할까. 직접 찾아가봤다.
지난 18일 오후, 토끼 전시를 확인하기 위해 코엑스에 방문했다. 전체 전시의 절반 정도 지났을 무렵, 검은 토끼를 만날 수 있었다. 해당 전시관의 이름은 ‘토끼와 거북이’. 이솝우화로 유명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착안한 기획인 듯 보였다. 전시장은 가로·세로 각 1m를 조금 넘는 크기로, 내부에는 검은 토끼 다섯 마리와 거북이 예닐곱 마리가 합사된 모습이었다.
토끼와 거북이 전시는 그야말로 ‘하이라이트’였다. 열댓개쯤 되는 전체 전시관 가운데 관람객들의 호응이 가장 큰 것처럼 보였다. 수족관 앞을 무심히 지나치던 이들도 검은 토끼 앞에선 걸음을 멈췄다.
자녀와 함께 관람하러 온 30대 남성 A씨는 “검은 토끼가 있다는 걸 알고 온 건 아니다”면서도 “토끼가 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B씨는 “귀엽기는 하지만 토끼들이 기운이 좀 없어 보인다”며 “좀 더 관리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일부 관람객의 반응처럼 몇몇 토끼들은 다소 무기력해 보였다. 유리벽 쪽으로 몸을 붙인 채 전혀 움직이지 않는 토끼도 있었다. 전시를 찾은 아이 중 몇몇은 토끼가 가만히 누워있자 유리벽을 두드리기도 했다.
전시장 내부 환경은 부실하게 관리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토끼 두어 마리가 구석 한쪽 급수기에 입을 대봤지만 급수통 안에 물은 이미 한 방울도 없었다.
느릿느릿 지나가던 거북이가 웅크리고 있던 토끼의 뒷발을 밟자 토끼가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토끼와 거북이의 합사에 별다른 문제는 없는지, 또 토끼의 사육 환경이 적절히 모니터링되고 있는지 확인해보려 했지만 상주 중인 직원조차 없었다.
전시관에는 검은 토끼가 ‘만물의 번영과 큰 성장’이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안내문이 부착돼있었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코엑스 측이 정작 전시관 속 검은 토끼의 번영에는 무관심한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모습이었다.
특수동물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고운동물병원의 송서영 원장에게 ‘토끼와 거북이를 합사해도 괜찮은지’ 문의해봤다. 송 원장은 “문제가 많다”며 우려를 표했다.
송 원장은 “토끼는 포유류이고 거북이는 파충류라서 서식환경이 아주 다르다”며 “육지거북은 28~30도 정도의 사육 온도가 기본인 반면 토끼는 28도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열사병에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거북이를 사육하는 경우 핫존(Hot Zone)이라고 부르는, 33도 이상의 따뜻한 구역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이 또한 토끼에게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토끼는 종 자체가 예민하기 때문에 (합사로 인한) 직접적인 스트레스도 물론 문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끼와 거북이가 합사된 사육장 내 온도계는 2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송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코엑스 측은 토끼에게도, 거북이에게도 ‘아슬아슬하게 위험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전시장 내부에는 거북이 사육에 필요한 핫존을 조성하기 위한 용도로 적외선 램프가 가동되고 있었다. 사육장이 협소한 만큼 토끼들의 동선에도 강한 열이 내리쬐고 있어 더욱 위험해 보였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는 수족관 측이 보유 생물에 대해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적어도 이날 ‘토끼와 거북이’ 전시에서는 토끼도, 거북이도 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받지 못한 듯했다. 주최 측이 단순히 관람객 눈길을 끌기 위한 흥밋거리로 동물들을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수준이었다.
토보연의 김지수 활동가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암수 분리도 없이 토끼 다섯 마리를 합사하면 개체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것이 뻔하다”며 반발했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토끼 특유의 번식력이다. 토끼는 이르면 태어난 지 5개월부터 임신이 가능할 뿐 아니라 중복임신도 가능한 종이다. 토보연은 토끼 사육에 있어 암수 분리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고 짚었다.
김 활동가는 또 “그 정도 공간에 토끼 다섯 마리를 밀어넣은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토끼들의 외양을 봤을 때 2~3개월령으로 보이는데, 수컷은 대략 3개월령이면 성적 성숙이 되고 싸우기 시작한다. 토끼는 영역동물이기에 곧 서로를 공격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고 우려했다.
토보연은 코엑스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토끼를 조달해온 방식도 문제 삼았다. 토보연이 코엑스 측에 직접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코엑스는 이번 전시가 끝나는 대로 토끼들을 펫숍에 반환한다. 사실상의 ‘임대’ 형식으로 토끼들을 빌려온 상태이며, 추후 펫숍이 토끼들을 재분양할 수 있도록 돌려준다는 것이다.
김 활동가는 “어떻게 보면 구매보다 더 악질적”이라며 “가장 귀여운 시기의 토끼들을 데려와서 전시하고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전시 기간이 끝나면 (상품성이 없는) 이 토끼들은 번식용 토끼로 활용되거나 육용으로 소비될 수 있다”며 코엑스 측의 대응이 매우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코엑스 측에 토끼와 거북이의 합사, 암수 분리 없는 토끼 전시 등이 갖는 위험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했는지 질의했다. 이에 코엑스는 20일 “저희 토끼들은 스트레스받지 않는 환경에서 아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나고 있다”며 “토끼의 동물복지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계묘년을 맞아 검은 토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코엑스가 준비한 전시는 검은 토끼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에 부응하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전시가 토끼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번식을 초래해 여러 위험을 낳는다는 점은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문제다.
토보연은 이번 사안을 공론화하며 현재 보호 중인 검은 토끼 여덟 마리를 소개했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버려져 입양처를 찾고 있는 토끼들이다. 계묘년을 의미 있게 맞이하고 싶다면, ‘버려진 검은 토끼’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돌아온 토끼해, 도심 속 토끼와의 공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류동환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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