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까지 배우할 것"…알츠하이머가 앗아간 윤정희의 꿈
“한번도 영화를 떠난 적 없다. 영화는 인생이다.” 16년만의 영화 복귀작 ‘시’(2010)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현지 기자회견에서 말했던 소감이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7)와의 오랜 프랑스 생활로 단련한 유창한 불어로 말했다. 자신의 생애 첫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선 고운 한복으로 외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데뷔작 ‘청춘극장’(1967) 이래 43년간 약 300편에 출연한 은막 대스타는 “아흔까지 활동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지만, 그 꿈을 알츠하이머 병마가 앗아갔다.
1960~8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1세대 여배우 윤정희가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했다. 79세.
남편 백씨는 20일 국내 영화계 인사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제 아내이자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윤정희가 19일 오후 5시 딸 진희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이어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파리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하게 치를 예정"이라면서 "한평생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며 살아온 배우 윤정희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영화계에 따르면 유족들은 평소 고인과 함께 찾던 파리의 한 성당에서 삼일장을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유해는 파리 인근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부산 육남매 장녀…데뷔부터 스타덤
1944년 부산에서 육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윤정희는 한해 200여편 영화가 제작됐던 황금기 충무로에서 문희, 고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문희가 조선 여인의 슬픔과 한을, 남정임이 깜찍한 이미지로 여러 장르 색을 표현했다면, 윤정희는 지적이고 세련되면서도 관능적이고 토속적인 역을 넘나들었다. 고 이만희‧유현목‧신상옥 등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며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등을 두루 수상했다.
대표작은 멜로 ‘강명화’ ‘물망초’, 문예물 ‘안개’ ‘장군의 수염’ ‘석화촌’ ‘독짓는 늙은이’, 액션 ‘그 여자를 쫓아라’ ‘황금70 홍콩작전’, 사극 ‘내시’ ‘궁녀’ ‘이조 여인 잔혹사’ 등이 있다. 신상옥 감독은 “파격적 캐릭터의 여주인공은 윤정희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여배우 연구' 논문, 첫 석사 여배우
윤정희는 배움도 쉬지 않았다. 우석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중앙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해 이월하부터 최은희까지 여배우 변천사를 돌아본 논문
「영화사 측면에서 본 한국 여배우 연구:1903~1946년을 중심으로」
(1971)를 쓰며 최초 석사 여배우가 됐다.
72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무대에도 데뷔했다. 73년 프랑스 파리 유학 이후 틈틈이 귀국해 영화‧연극에 출연했다. 76년 백건우 씨와 결혼 후 잠정 은퇴, 파리 제3대학 대학원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몬트리올‧도빌‧부산 등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출연작으론 94년 ‘만무방’ 이후 오랜 공백을 깨고 복귀한 이창동 감독의 ‘시’가 마지막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생활보조금을 받아 사는 늦깎이 시인 지망생 미자 역을 맡았다. 미자는 엄마 없이 키운 외손자가 연루된 성폭행 사건 피해자가 자살하자, 유가족 입막음 분담비를 위해 간병일에 뛰어든다. 알츠하이머 병까지 덮쳐 기억이 흐릿해져 가는 미자의 고통을, 윤정희는 원숙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16년만의 '시' 9번째 OK에도 즐거웠죠
당시 환갑을 넘겨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첫 촬영날 한 장면을 9번 만에 OK 받고도 기뻐했다. 촬영장을 방문한 취재진에게 “마음은 소녀다. 꽃만 봐도 좋아하는 주인공 감성이 저랑 비슷하다”고도 했다. 극중 이름은 이 감독이 그의 본명을 알고 쓴 것이다. 남편 백씨도 “인간 윤정희를 꿰뚫어 본 듯 원래 성격이 많이 투영됐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이 감독은 “윤정희 선생 캐스팅은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게 있었다”면서 “참 소녀 같은 분이다. 감정이 풍부한 분이라 나중엔 너무 이입하셔서 거리를 두게 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가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자, 여우주연상을 못 받은 걸 아쉬워했다. 미국 시카고트리뷴의 한 영화비평가는 윤정희가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게 안타깝다는 칼럼을 내기도 했다.
이창동 "소녀같은 분"…부부 납북 될뻔도
전성기 시절 윤정희를 남편 백씨와 맺어준 것도 영화다. 신상옥 감독의 ‘효녀 심청’이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 일환으로 상영되면서 현지에 참석한 윤정희는 백씨와 처음 만나 비밀 연애 끝에 76년 결혼했다. 문화계 유명인사였던 두 사람은 77년 북한의 납치 미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윤정희는 남편 연주 여행에 늘 동행할 만큼 좋은 금슬을 과시했다. 윤정희는 “카메라 앞에서는 철저한 배우지만, 그 앞을 벗어나면 평범한 사람이자 한 남자의 아내”라고 말하곤 했다.
말년에는 10여년 간 알츠하이머 병을 앓으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2021년에는 윤정희의 동생이 남편 백씨가 윤정희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지만, 백씨는 이를 부정했다.
윤정희는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섰을 때도 연기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에서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서겠다" "제 직업은 영원하다"라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고인과 함께 많은 작품에 출연했던 원로배우 신영균은 "자기와 마지막 작품을 꼭 하자고 얘기했었는데, 나보다 먼저 가서 가슴이 많이 아프다"며 "카리스마 있는 독특한 연기를 잘했던 배우"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영화 '시'를 제작한 파인하우스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유쾌하신 분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영화 촬영하며 '어린 시절 제게 선배님은 까마득한 별이었다'고 말씀드리니 호쾌하게 웃으셨던 게 기억이 난다"며 고인과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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