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BTS 제이홉 어쩌나"…지자체 울린 기재부 황당 실수
윤석열·손흥민·BTS 제이홉도 '고향사랑기부제' 참여
"세액 공제가 안 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기획재정부 실수로 고향사랑기부제 성패 좌우할 세액 공제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강원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관계자는 2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춘천 출신) 손흥민 선수가 고향사랑기부제에 동참하는 등 유명한 분들 기부가 이어지면서 홍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는데…"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향사랑기부제로 재정 확충을 노리던 전국 지자체가 복병을 만났다. 기재부가 올해부터 시행하려던 세액 공제를 2025년까지 미루는 것으로 법안을 개정하면서다. 기재부는 "단순 실수"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15년간 고향사랑기부제 도입을 위해 전방위 노력을 해온 지자체 사이에선 "지방 염원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불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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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금투세 2년 유예하는 과정서 실수"
20일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제58조 시행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개정안은 그대로 통과됐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당초 올해 시행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2년 유예하는 과정에서 법 시행 시기를 규정한 부칙이 일부 맞물리면서 세법상 고향사랑기부제 시행이 2년 밀리는 실수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고향사랑기부제 시행일이 금투세와 같다 보니 2년 유예 대상에 잘못 포함됐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기재부 실수도 황당하지만, 법안 심사를 담당하는 법제처와 최종 권한을 가진 국회 모두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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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못 잡은 법제처·국회도 문제"…기재부 "법 다시 개정"
논란이 일자 기재부는 "법을 다시 개정해 올해 기부자가 모두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방침"이라고 했다. 세액 공제 시기를 다시 2023년으로 환원하는 조특법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법 정비를 마치면 올해 제도 시행엔 문제가 없다"며 "내년 연말 정산 땐 세액 공제를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21년 제정된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1인당 연간 500만원 한도 내에서 본인 주소지 외 고향 또는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 공제 혜택을 받는 제도다. 지자체는 기부 금액 30% 내에서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줄 수 있다.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는 물론 특별시·광역시·도(道) 등 광역자치단체도 기부 대상이다.
지자체들은 답례품 선정에 공을 들이는 등 기부금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인 농어촌 지역 지자체들은 고향사랑기부제를 열악한 지방 재정을 확충하는 데 십분 활용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 축구 선수 손흥민 등 유명 인사 참여도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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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 "정부 책임"…기재부 비판엔 말 아껴
그러나 정작 세액 공제를 받지 못할 수 있게 되자 지자체들은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정부에 대한 원성도 크다. 지자체들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면서도 돈줄을 쥐고 있는 기재부 비판엔 말을 아꼈다.
부산시 관계자는 "올해부터 세액 공제가 안 되면 지자체로선 상당한 부담"이라며 "책임은 행정안전부 등 중앙 부처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행안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며 "(세액 공제 논란과 무관하게) 오는 31일 세종정부청사에서 행안부가 전국 지자체 대상으로 고향사랑기부제 관련 설명회를 여는데 여기서 (세액 공제 여부 등) 관련 의견과 설명이 상세히 나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모든 지자체가 올해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서둘러 답례품도 준비하고 관련 조례 제정도 신경 써서 마무리 지었다"며 "실제 기부도 받는 상황에서 대뜸 (세액 공제는) 올해부터가 아니라고 하니 당혹스럽다"고 했다. 이어 "뒤늦게라도 바로잡는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세액 공제는 내년에 받으니 당장 제도 운용엔 큰 변동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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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있을 수 없는 일"…대구시 "지켜보겠다"
대구시 관계자는 "행안부로부터 조치 사항에 대해 따로 전해 들은 바는 없고 언론을 통해 세액 공제 법안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세액 공제 혜택을 내세우며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보완이 안 되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재부에서 관련 법을 올해 보완한다고 하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며 "하지만 어차피 기재부가 법을 개정해 문제없게 한다고 하고, 국회에서도 시비 걸 일이 없으니 쟁점이 되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지방 시대'를 국정 목표로 삼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고향사랑기부제가 기재부 잘못으로 출발부터 멈추게 생긴 건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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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국현 대선 공약…관련 법 번번이 무산
한 지자체 관계자는 "15년간 국회와 지자체뿐 아니라 많은 단체가 각고의 노력 끝에 성사된 제도가 시작부터 삐끗하게 됐다"며 "중앙에선 단순 실수라고 하지만 지역에서 보면 속 터질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책임자를 반드시 가려내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이 2008년 도입한 '고향납세제'가 원조다. 초기엔 지지부진했지만 2015년 기부액(1653억 엔)이 도입 첫해(81억 엔)의 20배로 늘었다. 지금은 일부 지자체의 경우 자체 수입보다 고향세가 많을 정도다. 기부자에게 답례품으로 쌀·해산물 등 지역 특산품을 보내주면서 농수축산물 소비와 일자리도 덩달아 늘었다.
한국에선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도시민이 내는 주민세의 10%를 고향으로 돌리는 공약을 한 게 고향사랑기부제 구상의 첫 시도였다. 이후 2009년과 2011년 국회에서 관련 법이 발의됐지만 "세수가 준다"는 수도권과 도시권 지자체들 반발로 무산됐다.
전주·춘천·부산·대구·창원=김준희·박진호·김민주·김정석·안대훈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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