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1년, 기가 막히는 현실에 참담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김미숙 2023. 1. 2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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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산재후진국 현실 그대로... 빠르게 기소하고, 실제 처벌 판례까지 나와야

이 글은 김용균재단 대표이자,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인 김미숙님이 쓰셨습니다. <편집자말>

[김미숙]

 2022년 12월 6일 낮 12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 4주기 현장추모제가 개최됐다. 김미숙 대표가 고 김용균 노동자 흉상에 자신의 목도리를 걸어주고 있다.
ⓒ 신문웅
 
아들 용균이를 못 본 지 벌써 4년이 훌쩍 지났다. 작년 4주기에도 어김없이 아들은 꿈속에 나타났다. 그런데 어둠 속에 있는 탓에 보고 싶었던 아들 얼굴은 볼 수 없었고, 만남의 기쁨보다도 서러움에 북받쳤다. 아들과 서로 붙들고 속이 타들어 가는듯한 울음을 토하다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는 아들 생각에 날을 새웠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 '아들을 못 지킨 죄인'이라고 자책하기 일쑤다. 오늘 오전엔 '우리가 살아있는 자체가 아들한테 미안함이다'란 가시 돋힌 말로 용균이 아빠한테 생채기 내는 싸움을 걸었음에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미안함으로 더 가슴 아픈 아침이다.

평생 벌 받는 기분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둠 속에 갇힌 것 같다. 죽는 그 순간까지, 이런 생지옥이 따로 있을까 싶다.

그런데 유가족이 이렇게 아픈 나날을 견디고 있을 때 가해자들은 발 뻗고 잘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법과 제도가 약자를 위해, 적어도 목숨은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자식을 잃고 이렇게 아픈 설움을 겪지는 않아도 될 텐데... 이렇게 남겨진 삶이 억울하고 분하다.

지난해 이맘때쯤 고인이 되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의 말씀처럼, "이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도 약자를 위해 연대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현실... '산재후진국' 대한민국

유족의 삶은 이토록 아프기에,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려고, 어렵사리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고 시행된 지 만 1년이 되어간다. 사실 법이 시행되면 산재사망 희생자가 줄어들 것이란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전년과 대비해 희생자 수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는 기사를 보니까, 기가 막히다. 심지어는 한동안 산재사망 희생자가 더 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의 통계 기사를 보니 596명이 산재사망 사고를 당했는데(법이 시행된 작년 1월 27일~12월 31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사망자의 약 60%가 발생했다고 한다.

법 적용대상 사건은 229건인데, 현재 177건은 수사 중이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건 34건이다. 그 34건 중 18건은 종결되었고, 11건은 검찰이 기소를 했지만 재판 결과가 나온 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세계 경제 강국 상위권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건만, 산재사망은 개발 후진국 수준이다. 올해 경영계 신년사를 훑어보니, 대기업들에서 이제야 겨우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 경각심이 말에 그쳐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도 경영계는 법의 모호성과 실효성이 없다는 핑계로 최고책임자(CEO) 처벌을 면하게 할 안전관리자를 두고 안전관리체계 입증을 위한 서류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결국 현장 사고 예방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므로, 여전한 일터에서 죽는 노동자들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법 적용을 약화시키면서 기업이 원하는 대로 법을 바꿔주겠다는 기조인 정부의 말들은, 경영계가 더는 안전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게 만들 것이다.

실질적으로 법의 실효성을 보려면 빠른 속도로 기소가 돼야하고, 실제로 처벌받는 판례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 사이에도 '위험한 현장을 개선할 안전 예산과 사람, 체계는 필수'라는 인식이 자리 잡힐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기소를 당해 재판 중인 두성산업이라는 곳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기가 막힌다. 그러나 그래도, 이런 주장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재판관은 없을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산재로 죽은 아들, 비록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지는 못하지만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왼쪽)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차 시민추모제에서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를 위로하며 안아주고 있다.
ⓒ 유성호
 
오는 2월 9일, 아들 사건 관련 항소심 선고가 있다.

아들 사망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지라, 아들은 어이없게도 30년 전에 만든 구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게 되어 가해자들에 대한 그 처벌 수준도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지만 법의 판례를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야 그 여파로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1심에서는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사장에게 무죄 선고가 내려졌지만, 항소심에선 검찰이 원하청업체 대표 김병숙과 백남호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원청 관계자 6명에겐 금고 6개월 징역2년을 구형했고 하청 관리자 5명에겐 벌금 700만원 징역 2년을 선고할 것과 원하청 법인엔 각각 벌금 2천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당시 검찰은 "사건 사고가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전조 증상이 실제로 있었고 이에 대한 책임자들의 무관심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며 "원청과 하청업체가 서로 안전관리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이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권한 행사가 가능한 대표이사가 '현장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다면 앞으로도 현장 출신이 아닌 경우 책임을 피해 갈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터무니없는 수준의 처벌이건만, 지금까지 나온 솜방망이 판결을 볼 때 이 정도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힌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소중한 때다. '친기업 반노동' 정책을 펼치는 이번 정부는 노동과 교육, 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개악해서 노동자와 시민들의 목을 조르려는 조치들을 시행하려고 한다.

지난해 여름엔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겨울 들어선 '더는 도로 위에서, 길 위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치던 화물노동자들을 옥죄더니, 장애인 권리예산과 이동권을 주장하는 장애인단체 시위를 막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국가정보원과 경찰들을 앞세워 노동조합 등을 압수수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마음에 안 드는 모든 것을 탄압하는 이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정부가,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을 잘 이행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것으로 아들에게 할 말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끝이 아닌 것 같다. 이제는 그 법이 잘 시행되고 더 개악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할 것 같다. 당장은 두성산업이라는 기업이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겠다.

또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어떻게 바꿀지 TF를 꾸렸다고 한다. 아마 그 팀의 결과는 오는 6월 이후에나 나오겠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산재가 왜 줄어들지 않는지 그 이유부터 제대로 진단해야 할 것이다. 작년 통계에서도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사고가 60%였다. 내년이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이 확대되니, 그걸 축소할 꼼수를 내기보다는 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할 법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설 명절, 모든 이들의 평안을 바란다. 설을 맞아 아들에게 한 번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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