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주4일제'와 가까워지는 방법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일을 통해 얻는 가치나 이익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일이란 그 자체로 성가시고 지루하며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됐다. 애덤 스미스는 일 자체를 ‘힘들고 성가신 것’이라고 정의했고, 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 외에 장점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후 종교를 이용한 노동윤리가 등장했다. 돈 이외의 노동 명분을 만들어 일하게 했다. 지상에서 열심히 일하면 무덤 너머에서 좋을 삶을 살 수 있다고 노동을 부추겼지만, 이 역시 일 자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일 자체의 의미가 주목받았다. 잠재력과 잘 맞고 내면 깊숙한 곳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물질적 풍족함을 제공하지 않는 일도 지속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과 관련해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데,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A. 스펜서는 일을 나쁘기만 한 것이나, 좋기만 한 것으로 볼 때의 오류에 집중하며 “일을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노동 시간 단축이다. 저자는 일을 덜어냄으로써 일의 기쁨과 더 많은 자유 시간이 공존하고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며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일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미래 비전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다만 노동 시간 단축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권력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일을 덜 하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노동환경도 꿈틀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과 네덜란드 등의 나라에서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면서 노동 시간 단축을 실현했다. 주4일 근무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기업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주4일 근무제는 실업과 불완전 고용의 감소를 촉진하는 것을 뛰어넘어 성 역할 평등과 생태학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목표를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은 건 코로나19다. 실업률이 상승하고 업무량이 증가했으며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위협 요인이 생겨났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이른바 ‘핵심 노동자’들은 해를 끼치는 환경에서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시대의 논쟁은 자연스럽게 더 낫고 더 굳건한 미래 건설에 초점을 둔 ‘더 나은 복구’를 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덮치기 이전 체제를 복구하자는 것인데, 저자는 이를 “공허한 울림”이라 지적한다. 아울러 질 높은 일을 가능케 하는 구조적 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질 높은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을까. 저자는 권력 불평등을 이유로 꼽는다. 노동자의 발언권이 약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선택보다 강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질 낮은 일을 유지하면 고용주들이 더 많은 이익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집단행동에 나서 사회 내 권력 불평등의 근원을 밝히고, 질 높은 일의 공급을 늘리고 분배를 평등하게 할 필요성을 더 많은 사람이 인식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동화도 일의 양을 줄이는 요인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자동화가 일의 양을 줄이다 못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저자는 일의 양을 줄이기보다 일의 질을 새롭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 저자는 자동화에는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데, 투자 수준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기존 노동집약적 방식을 갑자기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스마트폰의 사례를 들어 과학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요소를 강조하지만 그중에서도 소유권 확보를 핵심으로 꼽는다, 과학기술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불평등 정도가 변화한다는 것. 저자는 노동자에게 회사 지분을 주면 자동화로 인한 위협을 완화할 수 있고, 과학기술 개발과 통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높일 경우 노동 시간 단축은 물론 일의 질 개선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개념적으로 그럴듯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얘기다. 이에 저자는 노동조합과 국가의 역할에 주목한다. 역사적으로 노동 시간 단축에 앞장서 온 노조가 나서 압력을 가하고, 거기에 국가가 힘을 보태면 사측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주식 매수를 돕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이나 저리 대출을 제공하고 금융과 경영에 관한 교육 서비스를 선보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국가가 민간 기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가 노동자들의 이익 공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일하는 시간은 줄어든 반면 일과 삶의 질은 높아지는 미래 일터를 역설한 저자. 옮긴이는 “주 6일 근무제가 과거가 됐듯, 주 5일 근무제도 역사책에서나 보게 될 날을 기다려 본다”고 전했다.
메이킹 라이트 워크 | 데이비드 A. 스펜서 지음 | 박지선 옮김 | 생각의창 | 296쪽 | 1만7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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