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추억, 그을린 편지 상자

용인시민신문 김영욱 2023. 1. 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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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애장품] 손편지

[용인시민신문 김영욱]

누군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애장품에는 그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를 반영하는,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애장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망설임 없이 편지들이 담긴 상자가 떠올랐다.

 
 오래된 편지를 보면 언제든 타임머신을 타고 그 행복한 추억의 복판으로 가게된다.
ⓒ 용인시민신문
 
어릴 때부터 무언가 기록을 좋아하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 책에 대한 느낌들을 적은 독서 노트, 친구들이 돌려가며 읽었던 초등학교 시절에 썼던 어설픈 동화들, 배낭여행을 다녀온 기행문 등 여러 권의 노트를 결혼하면서도 친정에 놔두지 않고 소중하게 가져왔다.

또 못 나온 사진은 다 골라내고 괜찮은 사진들만 골라 예쁜 종이에 내용과 장소도 기록하며 열심히 꾸민 앨범도 가져왔다.

그러나 결혼한 이듬해 집에 화재가 발생해 다 타버리고 겨우 남은 것이 그을린 흔적이 그대로 있는 편지 상자이다. 모든 편지가 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편지가 남았다. 그나마 편지 상자는 바깥쪽에 두는 바람에 건질 수 있었다.

화재 이후 처음에는 결혼하면서 새로 마련한 한 번도 안 입은 무스탕이나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그릇들, 텔레비전과 침대 같은 가구, 재 속에 묻혀서 끝까지 찾지 못한 예물들이 아까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지난 기록물이 아깝고 아쉬웠다. 그러니 겨우 건진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편지 상자가 나에게 있어서는 제일 소중한 애장품이 된 것이다.

편지는 보내고 받고 하면서 기다림의 시간까지 함께한 추억이다.
 
ⓒ 용인시민신문
 
요즘에는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나도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낸 기억이 까마득한 옛날이다. 예전에는 가을만 되면 엽서를 잔뜩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보냈었는데 지금이야 바로 연결되는 SNS가 있으니 엽서를 보낼 일이 없다. 갑자기 이번 가을에는 손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지 상자에 담긴 편지 대부분은 8년의 긴 세월을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고, 지금은 한집에서 살게 된 나의 짝꿍이 보낸 것이다. 군대에서 거의 매일 일기처럼 적어서 보내준 편지들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이지만 날씨, 훈련받는 이야기, 소소한 에피소드를 적어서 보냈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글로 시작되는 보고 싶다는 내용, 힘든 행군을 하면서 계속 내 생각만 했다는 내용, 첫눈이 내리는데 눈 치울 걱정보다는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괜찮다고 하는 내용, 내 목소리가 그리워서 전화했는데 통화가 안 되어서 속상하다는 내용, 아침부터 고추 심기에 동원되어서 힘들었다는 내용, 기말고사 기간이니 시험 잘 보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이 편지를 쓸 때의 그 사람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이 편지들은 짝꿍과 가끔 싸워서 속상할 때는 나를 위로해 주고 행복을 생각나게 해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지금 읽으면 조금 쑥스럽지만 '아, 이런 표현도 했구나!'하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남편과 연인 시절 8년 동안 주고받던 편지가 지난 화마에서 살아남았다.
ⓒ 용인시민신문
 
그 외에 아르바이트를 같이한 동생의 엽서도 있고, 수업 시간에 친구가 보낸 쪽지,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면서 휴지에 써 준 글, 학보에 몰래 끼워 보낸 쪽지 편지, 중학교 때 펜팔 친구의 편지, 군대에 간 후배나 동기가 보내준 편지도 있다. 나의 지난 세월의 다양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는 인연도 있고, 이름을 보고도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서 슬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편지 한 장 한 장에 담긴 모든 추억이 소중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편지들을 다시 읽으니 가슴 한쪽이 두근두근하면서 그리운 마음이 가득해진다.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지역문화진흥원)가 지원하고, 느티나무재단이 주관하는 '2022 협력형 생활문화 활성화 사업' 중 <우리동네 생활기록가 프로젝트>로 '라이프로그'가 발행한 '우리동네' 잡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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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지구별도서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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