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전염병보다 무서운 건 결국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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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2007년 무렵이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침이 고인다' 김애란 등과 함께 언급되며 문학계에 젊은 여성 작가들이 뜨고 있다는 말이 많던 시절이었다.
세상이 짚어내는 공통점들은 밝은 이야기, 여성적인 섬세한 문체와 같은 그냥 하나 마나 한 얘기들이었다.
2019년 말에 코로나19의 존재가 확인됐고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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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에 팬데믹 상황을 정확히 진단한 예언서
편혜영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2007년 무렵이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침이 고인다’ 김애란 등과 함께 언급되며 문학계에 젊은 여성 작가들이 뜨고 있다는 말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여류작가라는 쿰쿰한 표현도 아직 있었지. 세상이 짚어내는 공통점들은 밝은 이야기, 여성적인 섬세한 문체와 같은 그냥 하나 마나 한 얘기들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냥 젊은 여성 작가들이니까 다 묶은 거겠지. 우리는 5대 XXX, 3대 OOO를 좋아하는 민족이니까. ‘아오이가든’ ‘사육장쪽으로’라는 그중에 약간 결을 달리하는 책을 낸 작가. 편혜영이었다. 그때 구입한 책은 아직도 책꽂이에 잘 보관돼 있다. 아직도 펴보지 않은 채. 그러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작품집들을 건너뛰고 우연히 펴게 된 책이 리마스터링된 ‘재와 빨강’이었다.
이 책도 원래는 나온 지 10년이 넘는 책이다. 정확히 2010년 발표작이다. 하지만 지금 읽게 됐다는 사실이 오히려 좋다. 우리가 3년간 살았던 세상이 13년 전에 발표됐던 이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전염병의 창궐, 격리되는 사람들,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람들. 발표된 그 시점에 읽었다면, 그저 기분 나쁜 이야기였을 것이다.
편혜영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책을 출간하고 십여년이 흐르는 동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가상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 되었다. 소설을 구상하고 쓸 당시만 하더라도 내게 역병은 먼 과거이자 중세의 것이었다. 겪은 적 없는 시간이자 도래하지 않을 미래였다. 팬데믹을 겪은 후였다면 이 소설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삶을 폐허로 만드는 것은 역병과 쓰레기, 끊임없이 출몰하는 쥐 떼가 아니라 적나라한 혐오와 차별, 정교한 자본주의임이 명백해졌으므로 다른 상상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 3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갇혀 있었다. 2019년 말에 코로나19의 존재가 확인됐고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세계가 마비됐고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인류는 재앙에 맞서는 한편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역병의 역사에서 원인을 찾는 행위는 치료나 예방의 방법을 찾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이 고통을 준 죄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찾는 행위기도 하다. 그것이 중국 우한이었고, 박쥐였다. "중국 우한 사람들이 박쥐를 먹었기 때문에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정설이었고 여기에 "중국에서 만든 생화학 무기가 흘러나온 것이다"라는 음모론도 함께 존재했다.
올해는 팬데믹 시대를 벗어나려고 한다. 백신 접종률 70%를 넘기면 집단면역이 생겨 코로나를 이겨낼 것이라는 2020년 여름의 희망처럼 코로나는 극복됐나? 그렇지는 않다. 정점과 비교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하루에도 수만 명씩 이 병에 걸리고 있다. 사망자 한 명 한 명을 카운트하던 시절이 있었냐는 듯 수백 명씩 죽어가는 상황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가 3년간 알게 된 사실은 이 병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누구도 박쥐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쥐를 잘 잡는다는 이유로 타국으로 파견이 되고 바닥까지 인생이 추락한 끝에 다시 쥐를 잡는 직업을 갖는다. 그 자신은 쥐가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주인공을 통해 팬데믹이라는 현상 자체를 잘 짚어냈다.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결국 질병을 퍼트리고, 공포를 확산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남의 희생도 감수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고 시스템이라는 것을.
재와 빨강|편혜영 | 창비 | 238쪽 | 1만5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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