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씨암탉

전병선 2023. 1. 2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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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에서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수족을 만지셨다.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 내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다.

얼마 후 어머니가 시골에서 씨암탉 한 마리를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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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에서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수족을 만지셨다.

“몸이 웬일이냐. 이것이 사람 팔뚝이냐.” 내 팔과 손목을 만지시며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어머니는 혼잣말을 했다.

이 몸으로 일을 하다니 새벽부터 밤중까지 네가 병든 것이 다 내 잘못이다. 네 아버지가 미용기술 배우는 것 질색해서 다투기도 많이 했다.

차라리 면사무소 급사가 훨씬 낫다고 반대하던 아버지 만류를 이겨 내고 성공했다며 딸 자랑했던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었구나. 빨리 건강 회복해서 어린 자식들 잘 키워야지. 그것이 어미의 사명이라고 하시며 곁에 있는 남편에게 당부했다.

“사위는 언제쯤이나 해외 좀 덜 나가고 가정을 지키고 살 것인가. 훅 불면 날아갈 몸으로 혼자서 사업과 가정을 끌어가는 것, 저 애의 짐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되네”라고하셨다. “부모가 허리띠 졸라매고 헌신과 희생으로 출세시킨 자식 효자 되는 일은 드물다네” 하시면서 자식들 공부도 적당히 시켜야 부모 곁에서 서로 섬기며 산다고 했다.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 내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다. 동서남북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집안에 크고 작은 문제만 생기면 어머니를 불러 댔다. 동생 호출을 받아 집을 나서면서 내 손을 붙잡고 당부하셨다.

“건강은 주어진 게 아니라 지켜야 하는 것이란다.”나는 태어날 때부터 약질이었으나 당신의 체질을 닮아 다시 건강하게 변할 것이라고 날 위로하셨다. 어머니가 젖은 눈으로 무겁게 발걸음 옮기시던 그 모습이 엊그제 일처럼 떠오른다.

얼마 후 어머니가 시골에서 씨암탉 한 마리를 보내셨다. 두 발이 묶인 채 당신을 위해 내가 왔소라는 듯이 숨죽이고 있는 암탉을 앞에 두고 남동생과 남편은 눈치작전을 하고 있었다. 네가 희생양으로 왔는데 이 거사는 누가 치르느냐는 것이다.

“내가 해 볼게요” 하더니 동생이 덥석 닭 목을 움켜잡았다. 파드득파드득 꼬끼오 꼬끼오, 겁에 질린 동생은 “아이쿠, 이거 난 못해요” 하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할 수 없지. 내가 하는 수밖에”하며, 묶여 있던 발을 풀면서 손에 신문지를 비벼 잡고 닭목을 덥석 잡으니 눈치 빠른 암탉은 죽기 살기로 발악하며 파드득파드득하는 것이었다.

얼이 빠진 남편은 내 목이 뒤틀린다며 나 이런 짓 못 한다고 소리쳤다. 암탉은 그저 알이나 받아먹을 것이지, 통째로 먹어야 하느냐고 했다. “그래, 미안하다. 잔인한 인간들을 원망해라”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노지에서 단련된 잽싼 몸매로 창문 밖으로 후루루 날아가 버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내가 이 남자들 군대 다녀온 사람들 맞느냐 했다.

“여보, 군대서 나더러 닭 목 비틀라 하면 난 예전에 이미 탈영했다. 왜 몸은 약해 가지고 전쟁을 치르게 하느냐”라고 오히려 투덜댔다.

여기저기 털만 뽑힌 암탉은 어디로 갔을까. 어머님께 원망 듣지 않으려면 요놈을 찾아와야지 하며 나갔는데 밖에서 뛰놀던 막내아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쫓아 들어왔다.

“아빠, 할머니가 보내 주신 암탉이 윗도리 벗고 막 도망갔어요.”
“그렇구나, 웃통을 벗었어.”

흩어져 있는 닭털들을 바라보며 “그래,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느라 웃통을 벗고 달아났구나. 씨암탉아, 미안하다.” 나는 이제 평생 삼계탕은 못 먹을 것 같다. 평생 달아난 씨암탉 생각이 날 테니까.

<햇것>
할머니 손잡고
고구마 밭에 가면
밭이랑 뒤덮인 고구마 넝쿨
두툼한 언저리에 균열 일어
후비면 고구마 살갗
엄지손가락만 한 것 툭 따내며
어린것 안쓰럽다고
그 자리 툭툭 다독이는 할머니
파리한 내 손목 만지시며
“햇것이 보약이란다”
고구마 줄기에 달린 할머니 사랑
논두렁 밭이랑에 달린 목숨
낭창낭창하게 뻗어 가는 줄기
날마다 성장촉진제 맞은 듯
싱그럽고 청초하다

햇것은 사랑이다
견실하게 무르익으려면
불볕과 비바람 폭우의
시달림에 달궈야 한다
따가운 햇살과 바람에 살갗 후비고
스며들어야 하는 순리
고난 없이 자란 열매는
일등품이 될 수 없다는 진리
할머니가 알려 준 하늘의 비밀이다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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