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지독한 사랑, 완전히 망가진 삶
[김성호 기자]
▲ 단순한 열정 포스터 |
ⓒ 영화사 진진 |
중년의 여성이 있다. 이혼한 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다. 프랑스 어느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자, 여기까진 전혀 설명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 아니 에르노를 아는 이라면, 그녀가 제가 겪은 경험을 적나라하게, 심지어는 실제보다 훨씬 더 실제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명성 높다는 것을 아는 이라면, 공감할 밖에 없는 이야기다.
▲ 단순한 열정 스틸컷 |
ⓒ 영화사 진진 |
매일 밤 집으로 남자를 불러들이는 여자
엘렌(라에티샤 도슈 분)은 한 남자(세르게이 폴루닌 분)를 사랑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파견 나온 대사관 직원이다. 보안팀 소속으로 요인을 경호하는 게 그의 임무다. 엘렌은 그에게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상태다.
그는 매일 업무가 끝나면 엘렌을 찾는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영화는 그가 엘렌을 훑는 손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음란과 외설, 예술과 작품의 경계에서 화면은 위태롭게 오간다. 엘렌과 그녀가 탐하는 사내의 육체가 영상 위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저마다의 탄성을 내뱉고야 만다.
<단순한 열정>은 <로스트 맨> <10일간의 원나잇 스탠드> 등 농익은 작품 여럿을 내놓은 다니엘 아르비드의 신작이다. 슬픔 어린 농익은 문체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영상화한 영화로, 개봉 전부터 예술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일각에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류의 그렇고 그런 중년 여성 판타지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이름은 그러한 평가를 억누르기 충분한 것이었다.
▲ 단순한 열정 스틸컷 |
ⓒ 영화사 진진 |
"잠식될 수밖에 없었다"는 그 영화
한 남자를 만나고, 그에게 정당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 사례가 어디 영화 속 엘렌 뿐이겠는가. 그러나 영화는 그 사랑이 특별하다고 말한다. 엘렌은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경험하고, 끝없는 육체적 탐닉에 빠져든다. 급기야 제 아들을 소홀히 대하며 이혼한 남자에게 아들을 내어줄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열망이 들끓어 엘렌의 삶은 좀처럼 균형을 잡지 못한다.
영화를 본 이들은 둘로 나뉜다. 누군가는 엘렌의 사랑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 아들을 버려두고 오로지 제 사랑에 온 정신을 쏟는 그녀의 모습이 어머니로는 낙제점이란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사랑이 오로지 이 영화 속에만 있는 건 아니다. 엘렌이 러시아 사내를 사랑했듯 세상엔 제 정신마저 놓아버리게 하는 수많은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 같은 사랑 앞에서 정신을 붙들고 이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얼만나 되겠는가.
<단순한 열정>은 제목처럼 단순한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내를 향한 열망을 품은 여성과 그녀를 그저 욕구를 풀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자의 이야기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이 그렇듯 솔직하고 가슴을 울리는 표현이 영화에도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러나 충분하다고 할 수도 없겠다.
원작자 아니 에르노는 이 영화를 보고난 뒤 "영화 속 장면에 잠식될 수밖에 없었다"는 찬사를 남겼다. 전라 연기를 감행한 두 배우, 라에티샤 도슈와 세르게이 폴루닌은 적잖은 부담이 되었을 노출을 기꺼이 감당했다. 평단은 그들의 연기에 대해 '용감하다'는 평을 잊지 않았다. 이 영화에 쓸 만한 구석이 있다면 그 대부분은 두 배우의 용기에 기인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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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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