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생활 20년 만에, 근로계약서 처음 씁니다"
[김성욱 기자]
▲ 17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서 블라스팅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4대 보험 적용과 '물량제' 폐지,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며 지난 12월 12일부터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
ⓒ 김성욱 |
지난 17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정문 앞. '4대 보험 요구했다고 38명 집단해고'라고 적힌 천막 안에 검게 그을린 노동자 십여 명이 간이 난로 주변에 모여 몸을 녹이고 있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블라스팅' 노동자들이었다.
블라스팅은 고압호스로 쇳가루를 뿌려 선박 철판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고압호스는 30cm 되는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세고, 따라서 위험하다. 원청 정규직이 약 3500명, 하청 비정규직이 약 9700명에 달하는 대기업 현대삼호중공업에서 블라스팅 공정을 맡고 있는 노동자는 단 65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20년 넘게 일하는 동안 근로계약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분을 토했다. 조선소는 원청으로부터 일을 받는 하청, 그 하청업체로부터 또다시 일을 내려 받는 재하청 등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돼있는데 블라스팅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사실상 하청업체로부터 지휘 감독을 받으며 일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하청업체와도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자영업자', '개인 사업자', '프리랜서' 신분처럼 돼있었다.
근로계약서가 없으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주휴수당, 연차수당, 초과근무·휴일수당, 퇴직금, 4대 보험 등도 받지 못했고, 일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가 되지 않았다. 일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받는 성과급, 명절상여금, 자녀학자금조차 받지 못하는 등 차별을 당했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도급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었다. 하청업체가 그저 구두로 '작업 면적 당 얼마'라고 말하면 그것만 믿고 일할 뿐이었다. 소위 '물량제'라고 불린다. 물량이 없으면 언제든 회사 마음대로 자를 수 있고, 정해진 기간 내에 하달 받은 물량을 다 끝내지 못하면 급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야간, 휴일 노동에 시달린다. 이들은 보통 새벽 5시 30분~6시 30분에 출근해 저녁 7~8시, 늦으면 밤 10시까지도 일을 한다고 했다. 평일에 낀 공휴일에는 아예 쉬지 못하고, 한 달에 절반 정도는 주말에도 일한다.
▲ 17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서 블라스팅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4대 보험 적용과 '물량제' 폐지,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며 지난 12월 12일부터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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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38명이 지난 12월 12일, 참다 못해 들고 일어났다. 물량제 폐지와 4대 보험 적용을 요구하면서 집단적으로 블라스팅 작업을 거부한 것이다. 조선소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기존 18명이 한 팀으로 맡던 물량을 10명 정도가 처리하다 보니, 같은 단가에 1인당 나눠가지는 급여는 올라갔지만 그만큼 쌓이는 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력이 늘어날 가망도 안 보였다. 4대 보험도 없는 일자리에 젊은 사람들은 씨가 말랐고, 막내가 14년차 숙련공일 정도다. 이들은 한 달에 500만원 초반 대 받던 기존 급여를 300만원 중반대로 줄여도 좋으니 근로계약서를 쓰고 시급제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측의 응답은 '집단 해고'였다. 하청업체는 작업 거부 사흘만인 지난 12월 15일 블라스팅 노동자 38명을 문자로 한꺼번에 계약 해지했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4대 보험 적용은 이미 20년도 더 된 요구였다. 지난 20년 동안 비슷한 작업거부만 서너번 있었지만, 번번이 3~4일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매번 사측의 해고 압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제 대부분 20년차 이상이 된 현대삼호중공업 블라스팅 노동자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지난해 6월부터 처음으로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전남조선하청지회)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업거부 38일째인 지난 18일, 사측으로부터 물량제 폐지와 4대 보험 적용 약속을 받아내고 현장에 전원 복귀하기로 했다. 해고 상태로 해를 넘기는 사이 8명이 생계를 이유로 중도 이탈했지만, 나머지 30명이 끝까지 버틴 성과였다.
노동자들은 "20년 넘게 일하면서 드디어 처음으로 근로계약서를 쓰게 됐다"고 기뻐했다. 2023년 새해 벽두, 이곳 노동자들이 한 달 넘게 거리에서 싸운 이유가 "근로기준법 준수"였다.
현재 현대삼호중공업에는 블라스팅 외 다른 공정에도 근로계약서나 도급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물량제'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번 블라스팅 노동자들도 스스로 뚫고 나오지 않았다면 세상이 몰랐을 존재들이다. 이들을 협상 타결 전인 지난 17일 천막에서 만났다.
▲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는 한 블라스팅 노동자가 블라스팅 작업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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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2일 작업 거부에 들어간 이유는.
이수근(57) : "우리도 4대 보험 적용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기본 아닌가 기본. 현대삼호중공업 같은 대기업에서 이런 것 갖고 데모해야 된다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여기서만 20년 일했는데 그동안 계약서라는 걸 써본 적이 없다. 이미 20년 동안 비슷한 문제로 3~4차례 작업거부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지역 사람들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 그렇게 아는 인맥들 통해 전화하고 개별적으로 압박하면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잘못하면 영영 짤리고. 한 두 명씩 작업 복귀하기 시작하면 말짱 끝나는 거다. 이번에도 아마 회사는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느그가 버티면 얼마나 버틸 건데?'"
장현진(43) : "아직까지 물량제가 유지되고 있는 곳은 현대삼호중공업이 유일하다. 바로 옆 대불산업단지나 경남 울산, 거제 조선소에도 블라스팅 물량제는 없다. 우리도 원래는 물량제가 아니라 본공으로 일했었는데, 조선업 불황이라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물량제로 바뀌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우리 권리를 뺏어 가더니 급기야 4대 보험까지 빼간 거다. 4대 보험이 안 되니 갑자기 짤려도 실업 급여도 못 받고, 다쳐도 산재도 못 받는다. 4대 보험이 없으면 은행 대출도 안 된다. 우리 급여가 1년 6000만원 정도 되는데, 은행권에서는 4대 보험 없다고 그 중 60%만 인정해주더라.
하청업체가 업무 지시를 하고 근무 일정을 통보하는데도 회사는 우리 보고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 38명이 다 사장이란 말인가. 개인사업자라고 하니 임금이 체불돼도 체당금 신청도 안 된다. 우리가 떼를 쓰거나,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면 이해를 하겠다. 근데 그냥 4대 보험 해달라는 건데 이렇게 힘든가. 임금도 30%씩, 150만원씩 대폭 삭감할 테니 4대 보험 좀 넣어달라는 건데, 그걸 갖고 우리가 거리에 나앉아있어야 되나."
- 다른 조선소에는 블라스팅 물량제가 없다는 건가.
김낙현(48) : "없다. 나는 경남 거제 조선소에서 17년 일하다가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온 지 3년 됐는데, 거긴 이런 거 없다. 다 시급제고, 4대 보험도 다 들어간다. 처음에 여기 와서 정말 깜짝 놀랐다. 결과적으로 하청업체에서 달마다 꽂히는 급여는 거의 비슷하지만, 일하는 물량은 여기가 거제 때보다 적어도 1.5배에서 2배는 많다. 다쳐도 산재는 무슨, 그냥 다들 참고 하더라. 이건 노예다 노예."
장호철(37) : "우리는 정말 묵묵히 일만 했는데 회사는 우리가 돈도 많이 받아가면서 말만 많은 나쁜 사람들처럼 만들고 있다. 우리가 1억을 받아왔다는 거짓말까지 퍼뜨리고 다니더라. 그동안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회사가 시키는 대로 참고 일했는지, 주말에 나오라면 말 없이 나가서 물량 쳐주고 살았는지, 참 회의감이 들었다.
블라스팅 팀장들은 아침 5시 반이면 공장에 나와야 하고 팀원들은 아침 6시~6시 반에는 출근한다.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입고, 면을 쓰고, 산소 호스를 꽂고 들어가서 일을 한다. 한번 들어가면 4시간씩 중간에 한번도 못 쉰다. 쇳가루가 튀기 때문에 깨질까 봐 전등도 못 달아서 어두운 곳에서 후레시 하나에 의지해 일한다. 도중에 산소호스가 잠기거나 후레시가 꺼지기라도 하면 밖에 나가야 하는데 소음이 심해 아무리 소리를 쳐도 옆 동료가 들을 수가 없어 위험하다.
지상에서 15미터 높이, 제대로 발판도 설치돼있지 않은 족장에 사다리를 올려놓고 아슬아슬하게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런 데서 일할 땐 호스를 잡고 버티는 것조차 힘들다. 만약 호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내가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설사 미끄러지거나 떨어지더라도 호스를 절대 놓치지 않고 그대로 떨어진다. 그렇게 밤 10시, 11시까지도 일을 한다. 그날 정해진 물량을 끝내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하니까. 돈은 더 많이 받을진 몰라도,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계속 반복돼다 보니 이젠 도저히 지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 17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서 블라스팅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4대 보험 적용과 '물량제' 폐지,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며 지난 12월 12일부터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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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거부에 들어간 지 사흘만인 지난 12월 15일, 사측이 문자로 집단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박대진(45) : "그만큼 물량제가 회사에 돈을 많이 벌어준다는 얘기다. 만 명 넘게 일하는 저 큰 조선소에 블라스팅 작업자가 65명 밖에 안 된다는 게 상상이 되나. 적은 인원을 유지하는데도 물량이 제 때 제 때 나오니 포기를 못하는 거다. 그 사이에 작업자들 죽어나가는 건 모르고. 마치 마른 수건 짜듯이 작업자들을 쥐어짠다. 시간이 돈이니까."
장호철 : "회사는 문자로 해고하면서 '블라스팅 물량팀은 개인사업주이지,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하더라. 다들 사장이라는 건데, 내가 입은 작업복 그 어디에도 '사장'이라고 써있지 않다. 그냥 다른 직원들과 똑같단 말이다. 회사는 작업거부가 계약 위반이고 손해배상 대상이라면서 우리를 협박했다. 작업거부 이후 개인 짐 챙기러 공장 안에 들어간 걸 갖고 무단 침입이라며 고소까지 했다.
작업거부가 길어지자 회사는 외지인들에게 우리들 평소 일당의 두 배가 넘는 50만원씩 줘가면서 대체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은퇴하신 분들한테 전화하고, 외국인 노동자들 마구 당기고. 그런데도 우리가 평소 치던 물량의 절반도 못 나온다고 하더라. 품질도 많이 떨어지고. 아마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해왔었던 건지, 우리가 얼마나 착취당했었는지 이번에 알았을 거다."
- 지난해 후반기부터 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장현진 : "저희 힘으로는 회사에 안 되니까. 우리는 특히 소수이지 않나. 이전에 우리끼리 뭉쳐서 작업거부하며 4대 보험 요구했을 때와 이번이 가장 달랐던 건 노조의 도움을 받았다는 거였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손해배상, 고소 같은 단어만 보고도 또 머리가 하얘졌을 거다. 다들 겁 먹었을 거고. 그 전처럼 일주일도 못 가서 깨졌을 거다. 근데 이번엔 도저히 또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노조를 찾아갔다. 회사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왜 이렇게 곪아 터질 때까지 우리 얘기를 안 들어주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우리 얘기를 들어줬으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다."
김영태 : "우리도 좀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거다. 여기서 27년 일했는데 이대로면 퇴직금도 없다,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니까. 우리가 뭘 모른다고 회사가 너무 무시하는 거다. 그나마 이번에 노조 가입해서 법적으로 우리가 잘못한 게 없고, 내용증명이라고 날아온 것들도 크게 걱정할 게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나마 버틴 거다. 작업거부 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갔으니 생계가 힘들다. 동료들 8명이 빠져 나갔지만, 월급 안 나오니 갈 수밖에 없는 사정을 우리가 왜 모르겠나. 우리한테도 개인적으로 다 그런 회유와 압박들이 온다. 빨리 복귀 안 하면 자리 없어진다고. 여기는 10일이 월급날인데, 작업거부 한 것 때문에 이번 달 급여도 확 줄었더라."
장호철 : "노조 가입하고 나서 보이는 게 있다.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는 거다. 우리 문제를 알리려고 지난주에 울산 현대중공업 앞에서 선전전을 했을 때다. 노조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 현대삼호중공업의 경우 노조 소식지나 전단지를 들고 정문 앞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한 10미터 전서부터 고개를 푹 숙인다. 근데 울산 노동자들은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소식지를 다 받아 읽어보고, 저에게 곧장 물어보기도 하시더라. 한 날은 비가 왔는데 20대 노동자가 막 뛰어오면서 자기가 피켓 들겠다고 우산도 씌워주고. 다 끝나고 나서, '처음 보는데도 우리들 문제에 연대해주는 모습에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 오려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는 한 블라스팅 노동자가 고압호스를 손에 쥐고 일해 변형된 손가락을 펴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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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측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기재(48) : "우리들 진짜 죽기살기로 일만 했다. 블록에서 떨어져서 엉덩이 뼈가 나가거나 호스에 빨려 들어가서 크게 다치는 정도가 아니면 산재 처리도 못 하고 쉬쉬 하면서 일만 했다. 119는 기록 남으니까 용달차 불러서 병원 가고. 뼈에 금이 가서 치료받고 있는데 겨우 일주일 지나고 일하러 나오라고 해서 출근해서 일하고 그랬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목, 허리, 어깨, 손목 안 아픈 데가 없다. 고압 호스를 쥐고 사니 손가락이 다 휘고 굳은살로 변형이 왔다. 의사가 뼈도 아닌 게 도대체 이게 뭐냐고 묻더라.
우리도 우리지만, 나는 물량제를 계속 유지하면 장기적으로 조선소에 미래가 없다고 본다. 업체 사장님들이나 현대삼호중공업도 제발 그 생각을 좀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20년 이상 굴렀고 은퇴하는 분들이 하나하나 늘어가는데 지금 신규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한번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 4대 보험도 없는 직장에 누가 오겠나. 새 인력이 없는 만큼 남아있는 사람들만 계속 죽어난다. 오죽하면 돈도 줄여가면서까지 4대 보험 넣어달라고 하겠나. 제발 멀리 봐달라."
▲ 17일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서 블라스팅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4대 보험 적용과 '물량제' 폐지,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며 지난 12월 12일부터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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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철 : "그 막내가 저다. 스물셋에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알던 형님들 중에 많은 분들이 벌써 은퇴했다. 얼마나 여기가 심하면 내 밑으로 신입이 없겠나. 툭하면 업체 폐업하고 고용도 불안정하니 한동안 고향을 떠나 충남에 있는 건설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거기서 와이프를 만나서 다시 이곳으로 내려왔는데, 와이프가 처음에 물어본 말이 '거기 4대 보험 들어가?' 였다. 안 들어간다고 했더니 '아니 어떻게 아직도 4대 보험 안 되는 곳이 있냐'고 깜짝 놀라더라. 해고되고 한 달이 지났는데도 와이프는 힘든 내색 없이 '4대 보험 받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응원한다'고 해준다."
조선호(55) : "21세기에 참 웃긴 이야기 아닌가. 하청업체라고 해 봤자 사실상 인력사무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우리를 직원으로 인정을 안 한다. 참, 더 할 말이 없다."
▲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 정문 앞에서 블라스팅 노동자 장현진(43)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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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현 : "똑같은 공장에서 일하는데도 우리는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원청 직원들은 출입 카드에 '사원증'이라고 적혀있는데 하청 직원들은 '출입증'이라고 적혀있다. 그 하청 내에서도 우리는 또 한번 차별을 받는다. 일반 하청업체 직원들은 4대 보험도 되고, 성과급도 받고, 명절이면 상여금도 받고, 자녀 학자금, 휴가비도 받는데 우리는 그것도 일절 못 받았다. 휴일에 일하거나 초과 근무를 한다고 수당도 없었다. 직원이 아니고 '물량제' 사장들이라고. 그렇게 살았다.
우리가 이번에 싸우기로 마음 먹은 건 이런 부당한 건 제발 우리 대에서 끝내자는 거다. 이 지역에 사는 한 우리 아이들도, 후배들도 이런 일 겪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나. 우리들까지 당했으면 됐지, 우리 아이들까지 현대삼호중공업에서 똑같이 차별을 당하며 살게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회사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말하고 싶다. 이걸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매일 같이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에 찾아가서 사태 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꿈쩍도 안 한다. 답답하다."
장현진 : "조선소 밥 하루 이틀 먹어본 게 아니다. 지금은 조선소가 호황이라고 회사에서 우리를 쓰지만, 또 불황이 오면 일순간에 우리부터 내칠 거다. 뻔하다.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할 게. 그럼 우린 또 퇴직금, 실업 급여도 못 받은 채 쫓겨나야 한다. 4대 보험도 없고 근로계약도 없으니까. 그거라도 있어야 다음 호황기가 올 때까지 그래도 버틸 거 아닌가.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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