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진행자가 출산 선물로 강추한 것

이유미 2023. 1. 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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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일에 지쳐 힘든 당신에게] 자유를 선물하세요, 지금 당장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유미 기자]

아이 둘을 등원시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통화 중인 한 엄마를 마주쳤다. 

"나 오늘 저녁 자유부인이다, 너무 신나." 

그녀의 달뜬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통화 내용을 듣는 동안 내 마음도 함께 신나게 요동쳤다. 통화 중인 그녀가 내리며 나를 향해 살짝 눈인사를 했다. 나는 놀이터에서 보았던,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아들과 씨름하는 그녀의 지친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밤이 그동안의 힘듦을 한껏 보상해주기를 속으로 바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육아맘에게 자유부인이란, 어린 시절 동물원, 놀이동산 가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주는 단어다. 그날 저녁 자유부인 예정이라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고, 하루 종일 신바람이 날 정도다. 아이의 징징거림도 웃으며 받아칠 수 있고, 쌓여 있는 집안일도 너끈히 해내게 하는 동력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그날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자양강장제다.

얼마 전 설거지를 하다 들은 라디오에서 DJ의 한 마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청취자가 "출산한 아내를 위해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요?"라는 고민을 사연으로 보내온 것. 나는 속으로 "명품백이나 현금이 최고지"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어 들려온 DJ의 대답이 내 마음을 쿵 울렸다.

"자유부인을 선물하는 건 어떠세요? 육아 하다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 간절하거든요, 자유부인 10회권 선물해 보세요. 정말 뜻깊은 선물이 될 겁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대답이었다. 나는 그순간 무릎을 탁하고 쳤다. 아이를 키우느라 어디 쉽게 나가지도 못하고 고이 모셔놓기만 할 명품백보다 중요한 건 바로 혼자만의 시간, 자유였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 남성의 부인이 새삼 부러웠다. 사연을 보낸 건 신의 한수였을 거다. 최고의 출산 선물을 받고 좋아할 그 남성의 부인의 표정을 생각하니 내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자유부인은 왜 이토록 좋은 것일까(물론 여기서 자유부인은 자유남편이라는 말도 포함한다). 우선 하루종일 육아에 매여 있는 부모에게 잠시라도 자유시간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육아의 무게에서 벗어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이런 자유부인을 할 최적의 시간은 바로 금요일 밤이다. 금요일 밤이 주는 묘한 쾌감이있다. 직장인들이 불금을 기다리듯 육아인들에게도 금요일밤은 괜스레 설레는 날이다. 자유부인이라는 날개를 달고 밤거리를 걸으며 '후' 숨을 내쉬면, 그날 하루 매운맛 육아로 쌓인 피로도 밤의 어둠 속으로 홀연히 풀려나간다. 

그리고 자유부인을 허락한 자에겐 하나 꼭 숙지해야 할 점이 있다. 아이가 열이 난다거나, 심하게 보채며 아픈 것이 아닌 이상, 연락을 하지 말 것. 몸과 마음의 온전한 자유를 위해 꼭 필요한 수칙이다.

달콤한 자유부인 후 기분좋은 취기에 몸을 내맡긴 채 집으로 들어가면, 고요한 집분위기가 또 한 번 기분 좋게 만든다. 재워야 할 아이들이 없다는 것, 내 몸만 씻고 잠 들면 된다는 그 홀가분함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렇게 자유부인을 끝내고 돌아오면 내 삶이 이전과 달라진 것 같은 착각이든다. 육아 스트레스로 꽉 막혔던 내 마음에 환풍기가 돌아 부정적인 기운이 나가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들어언 것처럼.
 
 금요일밤, 잔을 부딪히며 잠시나마 시름을 날려본다.
ⓒ 이유미
 
나도 얼마전 자유부인의 기회를 얻었다. 둘째아이가 열감기로 인해 일주일을 가정보육했기 때문에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나의 무기력한 얼굴에 남편이 기회를 준 것.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나는 그 기회를 덥썩 물고 자유부인을 함께 할 상대를 물색했다.

연락처를 열심히 검색하다 내 손가락이 멈춘 곳은 바로 둘째아이와 이틀 차이인 동네 애기 엄마. 약속 당일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 보고 팔짱을 낀 채 동네 와인바로 향했다. 

늘 아이를 데리고 만난 터라 대화가 허공에 뜬 채 잘 이어지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들뜬 얼굴로 마주했다. 둘만 마주한 것이 처음이라 5분여간은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육아 이야기로 우리의 대화는 이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간 있었던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며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유쾌한 웃음도 터트리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힘듦을 품앗이 하듯 말하고 들어주며 깊어진 공감의 연대만큼 금요일 밤도 눅진하게 깊어졌다.

그러다 습관적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건너편 테이블에 우리 또래로 보이는 엄마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에게는 또 어떤 힘든 일이 있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귀 기울여 들으니 7살이 된 아이가 부쩍 말대꾸를 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고민이란다. 귓전으로 흘러든 그 엄마의 사연에 7살 아들이 있는 나는 속으로 맞장구 치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무언의 위로를 받는다. 우리를 포함해 육아의 고됨을 짊어진 모든 이들에 공감하며, 기분 좋게 잔을 부딪히며 시름을 덜어보고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유부인을 이토록 사랑하는 내게 엄마는 늘 말한다. "애들 다 키우고 나면 실컷 할 수 있으니 좀만 참아" 그렇기에 나는 말한다. 그 실컷할 수 있는 걸 나는 지금 해야 겠다고. 인생이란 생각보다 길지 않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고, 또한 지금의 자유부인은 그 나중과는 다를 것이기에.

학창 시절 하고 싶던 게 많은 내게 엄마가 "나중에 다 할 수 있으니 지금은 공부나 해"라는 그 말이 그 시절 얼마나 무력감을 안겨 주었는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유부인이란 시간은 휴식 이상의 것, 앞으로 남은 육아의 터널을 순탄히 헤쳐나갈 환풍구의 역할을 할테니 미루지 않고 지금 해야 하는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문득 내일이 걱정된 우리는 "내일도 씩씩하게 잘 버텨보자"라는 말을 하며 마지막 잔을 부딪히고 헤어진다. 술집을 나온 밤 공기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내 몸을 감싸는 차갑지만 부드러운 공기, 그 공기는 얼마간 내게 힘든 날들을 버틸 젖줄이 되어줄 것이다. 자유부인이 주는 힘은 작지만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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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계정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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