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 시대 100일]삼성의 마지막 총수…승계리스크 끊어낸 이재용
삼성 지배구조 알려진 바 없어
오너 체제 장점 담겨야
"시간 지나봐야" 회의론도
[아시아경제 한예주 기자] 과거 재계와 정치권에선 '삼성의 가장 큰 약점은 이재용'이라는 말이 돌았다. 개인 혹은 경영자로서 이재용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핏줄을 따라 경영권이 내려가는 오너 지배구조가 삼성의 발목을 잡는다는 의미다.
이 회장 본인도 경영권 승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지난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준법의무 위반 행위에 대해 사과하면서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승계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며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린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못박았다. 삼성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승계 리스크를 직접 해소한 셈이다.
이로써 이 회장은 재계 1위 삼성그룹의 마지막 총수가 될 예정이다. 물론 삼성은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된 기업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DS부문과 DX부문, 2개 부문을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부회장이 각각 나눠 이끌고 있다. 사업 영역별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임원을 통해 사업 경쟁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총수가 사라지면 어떤 방식으로 최고경영진 선임 같은 주요 인사, 대규모 신규 투자 같은 중대 의사결정을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식을 재단에 증여하고 재단이 주요 의사 결정을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재단을 만들고 전 재산을 증여했다. 해외에선 자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는 대신 재단에 넣은 재벌들이 꽤 있다. 독일 가전업체 밀레 같이 가족 공동 경영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 밀레는 밀레 가문과 진칸 가문이 지반을 절반씩 가지고 120년 이상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회사 대표를 맡고 싶은 가문 구성원들은 먼저 다른 회사에서 수십년간 일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여 마지막 승자가 회사 대표 자리에 앉는다.
향후 삼성 지배구조가 어떻게 변할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과거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한 한 삼성전자 임원은 "외부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새 지배구조를 고민하는 태스크포스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은 "철이 들 무렵 이미 삼성 차기 총수로 경영 수업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40대이던 시절이다. 이재용 회장은 50대 후반이다. 이미 새 지배구조의 골격을 만들기 시작했어야 하는 시점이다.
다만, 새 지배구조에는 오너 경영체제가 가졌던 장점이 담겨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너 경영 체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혈연 경영의 문제점은 굳이 나열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이 대한민국 산업 성장을 이끈 측면도 있다. 한국 대기업 직원들은 오너의 한마디에 한몸처럼 움직여 외국에서 보기에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특히, 삼성은 1990년대 초반 반도체 불황기에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주도로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해 '반도체 신화'를 이뤄냈다. 임형규 삼성전자 전 사장은 당시 상황을 "1차 반도체 치킨게임"이라고 정의했다. 반도체 가격이 폭락해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인 상황이었다. 보통은 감산을 생각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오너가 공포에 무릎 꿇지 말고 더 투자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삼성은 명실상부한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업체 자리를 차지했다.
오너 경영 체제 종식 선언은 이 회장이 중시하는 '인재 경영'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이 회장은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하고,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사업을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며 "그것이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삼성이 한 명의 카리스마형 리더가 이끌어 가는 기업이었다면, 새 삼성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함께 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래의 삼성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이 더 큰 역할을 하는 회사로 변할 것이란 의미다.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변화 문제는 결국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다는 회의론도 있다. 1968년생으로 올해 55세가 되는 이 회장의 나이와 이 부회장 슬하의 자녀들이 이제 막 성인이 됐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4세 승계는 없다고 말했을 당시 삼성의 한 고위임원은 "회장이 70세, 80세일 때도 지금처럼 생각한다는 보장이 있냐"고 되물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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