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곡으로 가슴에 칼 꽂아도 견뎠다…세월호 엄마 끈기의 기적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로 아들을 잃은 정부자씨는 2020년 어느 날 안산 시내를 지나던 중 커다란 장송곡 소리에 놀라 주변을 돌아봤다. 귀를 닫게 할 정도로 소음을 뿜어내는 대형 스피커가 서 있는 걸 확인한 정씨는 바로 눈물이 고였다. 스피커 주변에 함께 놓인 현수막을 보고서다.
'세월호 납골당이 웬 말이냐'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 말아라'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들어설 세월호 참사 추모 시설인 ‘416 생명안전공원’을 반대하는 소음 시위였다. “아직도 그 곡소리를 처음 들은 날을 잊을 수 없어요.”
소음과 현수막 글귀는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인 그의 가슴에 꽂힌 칼이었다. 서울 어딘가에서 열리는 이상한 단체의 집회도 아닌, 같은 안산에 사는 이웃들의 조롱 섞인 반대라는 생각에 더욱 서러웠다고 한다. 정씨는 “추모사업 초반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단원고등학교에 ‘납골당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린 걸 봤을 때는 두 눈을 의심했다”며 “수십 년을 살아온 안산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마저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참고 견뎌내기로 했다. 먼저 떠난 아들과 단원고 친구들을 위해서였다. 그는 안산시에서 추진한 ‘밥한끼합시다’ ‘공감나눔’ 등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몸으로 부딪쳐 이겨내겠다 다짐했다. 안산 시내 25개 동을 돌아가며 몇번이고 찾아가 이웃을 만나고 손을 잡자는 각오였다. 그들이 속으로든 겉으로든 세월호 희생 아이들을 멸시하더라도 직접 만나 소통으로 해결하자는 의지로 참아냈다.
특히 반대가 심한 이웃은 각 지역 상인회와 재건축조합이었다. 내 자식들을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 밥을 먹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들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유가족으로서 사정을 설득했다. 정씨와 함께 활동하는 임병광 416재단 나눔사업팀장은 “우리나라에 선례가 없던 만큼 사업 초반만 해도 시민들은 ‘납골당’이 들어선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며 “오해를 바로잡고 생명안전공원의 방향성을 알리는 데 노력했다”고 했다. 정부자 추모사업부서장은 “봉안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반대가 아직도 있다. 유골함이 직접 드러나지 않고, 예술적·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업체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많은 시민이 마음을 열었다. 정씨는 "어떤 조합장님은 장송곡 스피커 트럭을 마주치면, 스스로 불법 소음 신고를 낼 정도로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주말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추모공간”
공사가 한창인 416생명안전공원이 문을 열면 세월호뿐 아니라 한국의 추모 문화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게 유가족들의 기대다. 완공 예정 시기는 참사 10주기인 2024년이다.
연면적 약 1만㎡의 416생명안전공원에는 봉안시설을 비롯해 버스킹 등이 가능한 광장, 전시와 공연을 위한 공간, 카페와 뮤지엄숍 등이 들어선다. 또한 구조·수사 기록 등을 방문객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된다.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한 시설을 넘어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휴식·문화·교육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정부자씨는 “단순한 추모 장소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함께하자는 취지다. 안산시가 참사의 도시에서 꿈꾸는 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프로젝트에 참여한 김도훈 서울대 조경학 박사는 “추모공간에선 웃거나 즐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생명안전공원은 엄숙하게 추모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았다”며 “주말에 아이들을 데려가고 싶게 만드는 공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19일 화랑유원지에서 만난 박상일(39)씨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아픔이다. 안산시 전체에 알 수 없는 우울감을 퍼져 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안산시와 시민은 나아갈 수 없다. 안산시가 시민이 함께할 수 있는 추모공간의 선례가 됐으면 한다.”
김명희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모시설은 생존자와 유족에게 치유와 회복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더는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하는 사회적 합의의 장치”라고 말했다. 이어 “추모시설은 결과뿐 아니라 그 조성 과정 역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며 “탑다운식 설계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참여해 그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산시에서 만들어지는 추모시설의 경우 4·16 가족협의회와 유가족이 주축이 돼서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비교적 충분히 밟고 있다. 다른 추모공간보다 복합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진도에선 '수학여행' 다크 투어리즘 고심도
전남 진도군에서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올해 개관 예정인 ‘국민해양안전관’을 중심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세월호 기억의숲’과 진도항(팽목항) 빨간 등대 등을 묶는 관광상품을 구상하고 있다.
오귀석 진도군청 홍보팀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관광객이 80% 정도 감소하면서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며 “지난해부터 시작한 제주도 여객선 운항과 국민해양안전관 개관을 계기로 수학여행 패키지 같은 다크 투어리즘 상품 개발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진도여객터미널 건설 문제로 대두된 '팽목기억관'의 이전 문제와 연간 25억원 이상 들어갈 국민해양안전관의 운영비 문제가 풀어야 할 난관이다.
책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를 낸 김명식 건축가는 “416생명안전공원이 계획대로 완공된다면 의미 있는 다크 투어리즘 공간이 될 것”이라며 “팽목항에서 시작해 안산으로 완성되는 다크 투어리즘으로 국내 참사 역사에 긍정적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성공의 관건은 ‘삶과 죽음의 공존’이다. 문헌학자인 김시덕 박사는 “한국 사회에서 추모 시설이 배척되는 이유는 결국 죽은 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며 “추모 시설은 거대하고 엄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일상의 익숙한 공간이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종수 건국대 건축설계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삶과 죽음의 공간을 나눠 놓고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다"며 "추모 시설에 대한 예술적인 접근을 통해 삶과 죽음의 공존이란 화두를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 공유하고 배운다…혐오 테러 이후 노르웨이
「 노르웨이 국민에게 ‘7월 22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살이 자행됐다. 2011년 7월 22일 극우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오슬로 정부청사 입구에서 차량 폭탄을 터뜨린 뒤 약 30 km 떨어진 작은 섬 우퇴위아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선 노동당의 청소년 여름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테러범은 1시간 20분 동안 총기를 난사, 77명을 살해했다.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었다.
노르웨이는 참사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2015년 테러가 일어난 정부청사 단지에 ‘7·22 센터’를 열었다. 희생자들의 사진과 유품뿐 아니라 테러 당일 테러범이 사용한 가짜 경찰 신분증, 차량 잔해 등을 고스란히 전시했다. 이 때문에 ‘테러범을 위한 전시관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마야 구딤 부르하임 7·22 센터 선임고문은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논쟁적인 대화를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며 "논쟁도 추모의 중요한 요소이며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7·22 센터는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테러를 우연한 사건이 아닌 민주주의와 극단주의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결과로 본다. 테러를 겪지 않은 세대가 자라나면서 교육의 중요성이 커졌다. 센터는 민주주의, 인종 차별, 음모론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교재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얀 토레 사너 당시 보수당 부대표는 “지식은 폭력, 증오, 극단주의와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라며 “실제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정확히 보여주는 학습센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우퇴위아 섬에선 테러 이후 4년 만에 노동당 청년 캠프가 재개됐다. 참사 당시 카페로 사용하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보호하는 집’이라 이름 붙였다. 이곳은 추모뿐 아니라 테러 생존자의 강연,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마야 선임 고문은 “7월 22일에 대한 시민들의 논의는 서로를 위로하고 통합할 수도, 분열시키고 싸우게 할 수도 있다“라며 “센터의 목표는 그 논의가 지식에 근거하고 개방적이며 폭넓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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