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서 쉬어라"…홍준표·나경원 악연 시작은 12년전 이 장면
국민의힘 대표 출마의 기로에 선 나경원 전 의원과 홍준표 대구시장의 감정의 골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비토 속에 일정을 취소하고 잠행에 들어간 나 전 의원은 19일 홍 의원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냈다. 나 전 의원은 “홍 시장의 부창부수(夫唱婦隨) 발언은 전혀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이라며 “가족까지 공격하는 무자비함에 상당히 유감이고, 발언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홍 시장은 전날(18일) 페이스북에 “부부가 오로지 출세 욕망으로 부창부수 한다면 그것은 참 곤란하다”며 “부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남들은 한 자리도 벅찬 최고 자리에 가겠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썼다. 나 전 의원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홍 시장이 나 전 의원의 대표 출마 움직임과 남편인 김재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대법관 예정설’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나 전 의원 측은 19일 홍 시장이 언급한 투기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나 전 의원 측은 보도자료에서 “상가 건물 매도로 세금·수수료를 제하고 1600여만 원의 이득을 얻은 것이 무슨 투기 의혹인가”라고 해명했다. 홍 시장은 17일 “들리는 말로는 지난해 검증과정에서 건물 투기 문제가 나왔다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것부터 해명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닌가”라고 나 전 의원을 공격했다.
나 전 의원 측은 또 홍 시장이 나 전 의원을 ‘금수저’에 비유해 비판한 것을 두고는 “진짜 금수저는 실세인 장제원 의원인데, 나 전 의원만 때리는 것은 기회주의적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여권에서는 “나 전 의원이 경쟁자인 김기현 의원보다 홍 시장과 더 거칠게 충돌하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나 전 의원과 홍 시장의 악연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치권에서 정설로 통한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물러난 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던 나 전 의원이 후보로 떠오르자, 당 대표였던 홍 시장은 “이벤트 정치인, 탤런트 정치인은 안 된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나 전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하자 홍 시장은 나 전 의원의 전략이 부재했다는 취지로 불만을 드러냈고, 나 전 의원은 당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며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선거 패배 다음날 당 최고위 회의에서 마주한 홍 시장과 나 전 의원 사이의 불편한 기류는 지금도 정치권에서 종종 회자된다.
당시 나 전 의원이 “홍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당직자 모두 한마음으로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자 홍 시장은 “(선거를 도운) 박근혜 전 대표 얘기도 해야지”라고 말했고, 나 전 의원은 “아, 박 전 대표님도 애 많이 써주시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후 홍 대표는 나 전 의원에게 “집에 가서 푹 쉬세요,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했고, 나 전 의원은 민망한 표정으로 홀로 회의장을 떠났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서울시장 선거 이전에도 최고위 회의에서 홍 시장과 나 전 의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일이 꽤 있었다”고 전했다.
둘의 악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7년 홍 시장이 자유한국당 대표를 맡았을 때 나 전 의원은 당내 ‘반(反)홍준표’ 진영의 중심에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원내대표 도전을 고려하던 나 전 의원이 홍 시장을 향해 “사당화”라고 비판하자 홍 시장이 “소신 없이 수양버들처럼 흔들리던 사람들이 사당화 운운하니 가소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 전 의원은 “보수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홍 대표의 고름, 암 덩어리 같은 막말”이라고 받아쳤다.
2019년 나 전 의원이 원내대표였을 때는 반대로 홍 시장이 저격수로 나섰다. 홍 시장은 그해 9월 12일 페이스북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길을 열어주고, 조국 맹탕 청문회로 민주당에 협조하고, 패스트트랙 전략에 실패하고도 면피하기 급급하다”며 나 전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이후 당내에서 “내부 총질”이라는 반발이 나왔을 때도 홍 시장은 “전투에 실패한 장수는 전쟁 중에도 참(斬)하기도 한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중앙 무대 유력 정치인의 악연이 12년간 이어지는 것도 드문 일”이라며 “둘의 싸움이 자칫 보수 진영 분란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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