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몰아치는 간첩수사, 이유 있었다...신설 방첩센터가 주도

이창훈, 오욱진 입력 2023. 1. 20. 05:01 수정 2023. 1. 2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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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간첩 사건 수사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제주와 창원·전주 등 지방 조직 관계자의 거주지와 사무실 등에 이어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하는 등 규모와 속도 면에서 이전과 다른 모양새다.

이번 수사는 국가정보원 비서실장 직속 조직인 ‘방첩센터’가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 수사로 발전하지 못해 묵혔던 대공 사건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공안정국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지난해 하반기 비서실장 아래 태스크포스(TF) 성격의 방첩센터를 신설했다. 대공 수사는 통상 국정원 2차장이 맡아왔지만 문 정부의 대북 평화 기조에 따른 대공 수사력의 약화, 전 정권 인사들과 현 정권 인사들의 내부 갈등에 따른 보안 문제를 이유로 비서실장 산하에 따로 조직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대공 수사를 이끌었던 추명호 전 국장 라인이 대거 공안 수사에 복귀했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文 정부, 국보법 위반 기소 135명…朴정부 3분의 1


방첩센터 신설에는 전 정권 시절 해외 정보와 산업 보안 등으로 소속을 바꾼 대공 수사 출신 인력 결집과 함께 내년 경찰로 수사권이 이관되기 전에 그동안 가로막혔던 대공 수사를 마무리하려는 의도도 담겼다. 1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52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박근혜 정부(2013~2016년) 4년 동안 388명을 기소했는데 문재인 정부(2017~2021년)에서는 135명에 그쳤다. 전 정부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은 대북 평화를 강조한 문 정부 기조와 국정원 적폐청산 TF 가 맞물리면서 대공역량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2017년 정해구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 산하에 적폐청산 TF를 운영하며 과거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을 대대적으로 조사해 기소하거나 쫓아냈다.

김석규 전 국정원 방첩국장은 최근 국정원 동료들에게 보낸 글에서 “적화 야욕을 거두지 않는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침투 간첩을 상대하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역할을 약화시킨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종북 주사파 정권이 정보전쟁의 전사들을 무장해제 시킨 것을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2021년 강제 수사 유야무야…檢, 다음달 초 구속영장 청구 가닥


경남과 제주, 전북 전주 등 지역을 중심으로 수사가 이뤄지는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 사건은 국정원이 2021년에 광범위하게 내부 조사를 마쳤던 사건으로 알려졌다. 주요 피의자들이 제주와 경남 지역 등 진보 성향 정당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15~2017년 사이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고 ‘ㅎㄱㅎ’, ‘자주통일 민중전위’ 등의 조직을 만들어 반정부 활동을 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후 수사는 큰 진척이 없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지금 문제가 된 경남과 제주는 2021년에도 조사를 벌였고 내사·수사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지만, 윗선에서 유야무야 됐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방첩센터가 만들어지면서 수사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ㅎㄱㅎ’ 사건에 대한 과거 조사 내용을 토대로 압수수색에 나서며 강제수사로 전환했다. 검찰은 다음달 초 국정원으로부터 ‘ㅎㄱㅎ’와 ‘자주통일 민중전위’ 사건 기록을 넘겨받아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정부는 대공수사 공백을 막고자 국정원·경찰 중심의 상설 합동수사단 운영과 국정원법 개정 등을 검토 중이다. 2020년 12월 국정원법 개정으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내년부터 경찰로 이관되기 때문이다. 국정원 출신의 한 고위 간부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바 중 하나”라며 “이런 안보 상황에서 대공수사권 이관은 우리의 손발을 스스로 묶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훈·박현준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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